[황산칼럼] 명문대 학위 언제까지 보증수표일까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4-08-09 08: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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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사회 저물고 학습사회가 도래해
학습력 키울 때 자기 삶을 열어 젖혀

"책을 읽고 토론하면 그냥 행복해요. 다른 분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들으며 텍스트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도 즐거워요."


대안연구공동체에서 함께 공부하는 참여자가 자신의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이 짧은 말 속에 좋은 학습의 주요 키워드들이 다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 행복, 다양성, 함께 하는 학습' 등이 그것이다. 1996년 유네스코는 '교육은 평생(lifelong)에 걸쳐 진행되어야 과정'임을 밝히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육은 평생에 걸쳐 네 가지 기둥을 기반으로 한다 : 알기 위한 학습, 행동하기 위한 학습, 함께 살기 위한 학습, 존재하기 위한 학습." "Education throughout life is based on four pillars: learning to know, learning to do, learning to live together, and learning to be." UNESCO, Learning: The Treasure Within.

◇ 학습사회, 공부에 대한 생각부터 바꿔야

지금 우리는 학력사회(Credential Society)에서 학습사회(Learning Society)로의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 아니 학력사회는 거의 종언을 고하고 평생 배우는 사회, 학습력(learning ability)이 보다 중요한 세상이 도래했다. 과거 학력사회는 졸업장이나 자격증이 중요했고, 명문대학 학위는 미래를 보장하는 보증수표와 같았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오늘날 일자리 및 직업 환경은 급변하고 있고 학력이 더 이상 안정적인 삶이나 성공을 보장하는 보증수표가 되지 못한다. 올드(old) 엘리트 시대는 황혼을 지나 짙은 밤의 어둠 속으로 돌입하고 있다.

더구나 지식 정보의 폭발과 인공지능(AI)의 발달은 사회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2017년 유엔 미래보고서는 2045년이면 현재 일자리의 80%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65%가 지금 존재하지 않는 직업에 종사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렇게 격변하는 흐름 속에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고정된 지식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창조적으로 응용하고 습득하는 학습력이다.

영국정부의 보고서 'The Learning Age'는 미래의 학습사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습시대(The Learning Age)를 맞아 우리는 상상력과 자신감을 가진 인력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며 다양한 기술이 요구될 것이다. 모든 직업은 각기 다른 지식과 이해, 그리고 이를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필요로 한다." (DfEE, The Learning Age: a renaissance for a new Britain. 1998.)

이 보고서는 지금은 학습사회이자 학습력 사회이며, 이러한 시대에는 상상력과 창조성, 자기 확신을 가진 인재가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과 기술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지니고 이를 습득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다가오는 시대에는 생애의 모든 단계에서 평생교육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는 일과 고용 및 삶의 질 향상, 민주주의 실현과 사회적 통합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학습사회에서의 지식은 더 이상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다. 변화의 폭이 크고 그 속도가 빠르다. 과거처럼 교과서적 지식이 통용되는 시대가 아니라 교과서조차도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된다. 지식의 진화 속도가 가속화되어 새로운 지식이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되므로 단순한 배움과 암기로는 습득할 수 없고, 적절한 때에 떠올리고 응용하여 사용하는 창의적인 감각이 요구된다. 이런 흐름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항상 배우고, 학습하는 방법(how to learn) 자체를 익혀야 한다.

◇학습력, 학습하는 방법부터 배우라

그러면 어떻게 학습하는 방법을 배우고 학습력을 키울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방법을 요약할 순 없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윌리엄 로스웰(William Rothwell)은 그 길을 제법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학습사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진행된다고 분석한다.

먼저, 비형식적이고 부수적인 학습이 증가한다. 즉 제도 교육의 바깥에서 진행되는 교육이 보다 소중해지고, 교과서 중심의 공부가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학습하게 되고, 교수자의 가르침이나 지도가 없이 진행되는 학습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둘째, 감정, 가치, 윤리, 문화와 관련된 학습이 증가한다. 지식 습득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교육과 달리 미래의 교육은 인지적 학습 이외의 내면의 감정, 다양한 가치, 창의성, 윤리적 태도, 자기결정 및 표현, 소통, 문화 이해 및 적응과 같은 요소들이 보다 중요해진다.

셋째, 노년층의 욕구와 필요에 더 큰 관심을 갖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세계적으로 급속한 고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이에 따라 확대된 노년층의 요구와 관심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교육의 축이 형성될 것이다.

넷째, 다양한 배경을 지닌 학습자에 대한 배려가 확대된다. 여기에서 학습자의 다양성은 단지 인종(race)나 성별의 차이만이 아니라 연령과 세대, 종교, 언어, 사회경제적 지위,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 성적 지향성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다섯째, 새로운 테크놀로지(technology)가 교육방법을 혁신하게 된다. 최근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보다 뛰어난 학습능력을 지닌 AI기술과 쳇GPT, 다양한 혁신적 정보기술, 고도화된 영상매체와 원거리 온라인 학습 네트워크 등은 교육-학습의 맥락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여섯째, 학습하는 법을 배우는 학습(learn how to learn)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미래의 교육은 학교교육이든 평생교육이든 학습자의 주도성을 더욱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최근 널리 시행되고 있는 자기주도 학습은 그런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학습자의 참여와 주도성을 높이는 학습 방법과 전략이 중요해진다. 단순 강의에서 토론학습으로, 인지적 학습에서 경험적 학습으로, 교재 중심에서 다양한 텍스트와 콘텐츠로, 일방적 방식에서 공동 작업으로, 기억 및 암기식에서 원리 이해와 응용력으로, 문자와 책 중심에서 체험학습과 스토리두잉(story-doing)으로 변화하고 있다.

일곱째, 학습이 일어나는 맥락(context)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심화되는 세계화와 소통 매체의 발달로 크게 변화되는 환경이 학습자와 학습에 대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고, 다양한 형태의 학습조직 형성과 새로운 학습 문화 형성을 위한 시도들이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예측은 빗나가지 않고 현재 거의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 서구나 영국 사회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도, 평생교육만이 아니라 학교교육과 학교밖 교육과 학습에서도 로스웰이 예견한 일들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기업조차도 크게 변화하고 다른 방식의 교육과 학습으로 전환하고자 부심하고 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학습력을 지닌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생존과 변화 대응과 행복의 결정적 열쇠가 될 것이다.

◇ '학습하는 자' 되기, 다르게 살기

공부는 단지 직업이나 취업을 위한 자격증 취득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기술이자 태도가 되어야 한다. 학습은 평생 지속되는 과정이어야 한다. 따라서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업데이트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배움의 기쁨은 삶의 질을 크게 높이고 행복감을 안겨다 준다. 게다가 함께 공부하는 이들과 삶을 나누고 교우하는 기쁨은 그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향취가 있다.

과거는 성찰하고, 현재는 향유하며, 미래는 예견하고 준비하는 것이 지혜다. 미래를 위한 준비는 단지 경제적 준비에 국한되지 않는다. 학습하는 방법을 알고, 이를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 성장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최선의 준비일 갓이다. 단지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다. 소극적으로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지금은 학습력이 생존 기술이자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성인과 시니어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새로운 경험을 환영하고 학습의 여정을 떠나보자. 여행이나 인문학학습, 미디어 기술, 예술, 도서모임 책모임, 마을의 여러 활동과 모임, 도서관과 평생교육 기관 프로그램들을 추천하고 싶다. 가만히 있으면 조금 정체되는 것이 아니라 뒤로 후퇴하게 된다. 배운 후에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학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아니 산 자는 늘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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