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단상] 나는 구토한다...고로 존재한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4-04-16 1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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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을 느끼고 있다. 고약한 그 '구토'를. 그리고 이번에는 새롭다."


구토는 그리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이다. 전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속이 뒤집어지고 존재가 뒤틀린다는 기분을 주기 때문이다. 구토를 느끼고 구역감이 몰려오는 경험은 어떤 대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혐오스런 사물이나 물건, 이미지를 접할 때 우리 속이 거북하고 구토감이 찾아온다. 사르트르가 쓴 <구토>는 현대문학에서 고전으로 읽히고 있는 그의 대표적인 소설이다. 소설 속 화자는 구토를 느낀다. 독자들은 그가 느끼는 구토는 우리가 경험하는 구토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쉬 알게 된다. 사르트르는 '구토'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 '구토' 모든 것들에서

소설 속 화자 로캉텡은 어느 날 갑자기 구토를 느낀다. 그가 물수제비뜨기 놀이를 하며 조약돌을 만질 때 메스꺼움을 느낀다. 갑자기 죽은 돌이 살아있는 듯 낯설음으로 다가오며 구토가 시작되었다. "죽은 돌이 나를 만지는 느낌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어느 카페에서도 갑자기 구토를 느낀다. 그가 웨이트리스 마들렌에게 수작을 걸다가 거절당한 직후의 일이다. 예기치 않게 구토가 올라왔고 그는 구토감에 점령당한다.

" … 그때 '구토'가 치밀었었다. … 나는 토하고 싶었다." p.42 (방곤 역, 문예출판사)
" '구토'는 나의 내부에 있지 않다. 나는 '거기에서', 벽 위에나 빵에서, 그리고 온갖 내 주위에서 그 '구토'를 느낀다. 그것은 카페와 일체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그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p.44

이유를 알 수 없는 구토, 이것이 로캉텡이 경험하는 구토다. 혐오스럽거나 흉측한 사물이 아니라 조약돌과 빵처럼 예쁘고 친근하고 달콤한 사물을 접하며 구토감을 느낀다. 과거의 기억을 자극하는 어떤 사물을 접하며 메슥거림을 느끼기도 한다. 게다가 그는 모든 것에서 구토를 느낀다. 문손잡이를 잡으면서, 다른 이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맥주잔을 쥐면서, 종이조각을 집어려고 할 때,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보면서, 다른 이의 보라색 멜빵을 보면서, 자기 손을 쳐다보면서, 디저트용 작은 나이프를 잡으면서 등등 예기치 않게 구토를 느낀다.

그에게 어떤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고 어울리는 카페라는 그 공간 전체가 구토로 차 있다고 느끼는 것을 보아 그의 거북함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친숙했던 공간과 분위기, 일상의 사물들, 아니 모든 것에서 구토를 느낀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는 모든 것에서 구토를 느끼고, 세계 전체가 그에게 구토를 일으킨다.

로캉텡의 구토는 사물에서 사람으로 향한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쓴다.

"인간들, 인간들을 사랑해야 한다. 인간들은 훌륭하다. 나는 토하고 싶다 – 갑자기 왔다. '구토'이다." p.229
"더이상 그것(구토)에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어떤 병이 아니고 지나가는(일시적인) 발작도 아니다. 나 자신인 것이다." p.237

로캉텡의 이러한 증상은 인간의 실존 상황에 대한 사르트르의 진단이라는 것을 우리는 쉬 짐작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 주체는 구토하는 주체로 바뀐다. '나는 구토한다 -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재즈' 구토 안에서의 소소한 행복

그 카페에서 로캉텡은 재즈음악을 들으며 잠시 행복을 느낀다. 구토를 잊게 하는 재즈의 선율은 마법처럼 주문처럼 그를 어루만지고 진정시킨다. "그것은 '구토' 속의 조그마한 행복인 것이다." 이후 로캉텡은 또다시 그 카페를 방문했는데 구토를 선명하게 느낀다. 그러자 그는 마들렌에게 스텐더드의 재즈곡 '머지않아서'(some of these days)를 청한다. 레코드판을 통해 들려오는 재즈음악을 들으며 그의 구토는 진정되기 시작한다. 점차 그는 훈훈함을 느끼기 시작하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 이윽고 '구토'가 사라진다. "일어난 일, 그것은 '구토'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에는 이처럼 구토와 관련된 음악체험 혹은 재즈음악을 듣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마치 음악이 구원인 듯이.

"음악은 벽에다 우리들의 비참한 시간을 짓누르고, 금속적인 투명한 빛으로 방 안으로 채웠다. 나는 음악 '속에' 있다."
"흑인 여자가 노래를 부를 때,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그녀가 노래한다. 그래서 두 사람이 구원됐다. 유대인과 흑인 여자다."

일상적인 환경과 사물들 뿐 아니라 인간들과 자기 자신에게서도 구토를 느끼던 주인공은 '음악의 진동' 속에서 구토를 멈추고 행복을 느낀다.

◇ '쓰기' 구토를 넘어 구원으로

"나는 구토를 느낄 것 같다. 나는 글을 씀으로써 그것을 지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에서 재즈 음악 이외에 또 하나의 진정제가 등장한다. 그것은 쓰기다. 로캉탱은 서른 살에 이미 30만프랑의 재산을 상속받고 매년 1만4400프랑의 연금을 받으며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세계 여러 곳을 수년 간 여행하고 프랑스로 돌아와 부빌에서 프랑스 혁명기의 드 로르봉 후작에 관한 역사책을 쓰며 관련 자료가 있는 도서관을 일과처럼 드나들고 있다.

그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은 일기다. 일기 쓰기를 통해 구토가 진정되고 지연됨을 알게 된 그는 '다른 쓰기'를 꿈꾼다. 알다시피 일기는 가장 솔직담백한 쓰기다. 일기 쓰기 안에서 스스로에게 솔직했으며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가장 진실하게 조우했는지도 모른다. 그간 그는 드 로르봉 후작을 연구하며 그의 역사를 분석하고 해석하고 정리하려고 애썼다. 그 글은 다른 사람, 과거의 사람에 대한 것이다. 부빌 시를 떠나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잘못은, 드 로르봉 씨를 재생하려고 한 점이다. … 절대로 나는 그런 종류의 것을, 역사에 대한 논문을 쓰지 않았다. 그렇다. 앞으로도 안 쓰겠다."

그리고 앞으로 '한 권의 책, 한 권의 소설'을 쓰겠다고 암시한다. 그 책이 완성되면 "그 책을 통해서, 나의 생활을 아무 혐오감 없이 회상할 수 있으리라"라고 말한다. 여기 한권의 책, 소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문학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자기 자신의 서사를 담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일 것이다. 네러티브(narrative)로서의 자기 삶, 바로 그것이다.

로캉텡의 구토는 자기 자신을 찾는 고민의 과정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고독한 방식으로 살아가던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며 너무 늦기 전에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바라보기를 갈망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는 의미를 찾지만 나 자신의 얼굴에서는 찾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되찾고 싶어한다. "생생하고 강한 감각이 있으면 해방될 텐데."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러한 실존론적 고민의 과정에서 구토를 경험한 것이다. 그의 존재 감각이 이전과 달라지자 많은 것들이 불편하다. 모든 것들이 거북하다. 모든 것에서 구토가 찾아온다.

우리가 경험하는 구토는 대개 생리적인 것일 게다. 특히 오늘날에는 사회적 혐오와 심리감정적 구토가 만연하다. 그래서 곧잘 엉뚱하게 구토와 혐오를 쏟아낸다. 혐오 언어가 매체마다 난무하고 충돌한다. 이는 문화적으로 형성되기도 하지만 대개 사회적인 정치적인 적의와 경계선 긋기의 산물로 생산된다는 것이 문제다. 여성혐오, 난민혐오, 인종혐오, 이념적 혐오, 섹슈얼리티 지향 혐오, 약자 혐오, 정치혐오 등등. 이런 혐오와 구토는 제거되거나 함께 넘어서야 한다는 공감이 확산되고 있다. 아, 참으로 우리는 구토할 줄 모른다. 그것이 우리를 구출하는 증상이자 체험임을 깨닫기를.  

진정 필요한 구토가 있다. 독자는 사르트르가 우리의 구토를 자극하고 구토하는 경험으로 초대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소설 <구토>에서 말하는 그런 구토의 과정을 깊이 경험한 이는 더이상 과거처럼 살아갈 수 없이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 속에서 역겨운 부조리와 거짓을 발견하고 다른 책 쓰기와 다른 삶 살아가기를 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써지는 그 이야기에는 미리 짜인 결말이나 구성이 없다. 로캉텡의 구토를 멎게 한 재즈와 같은 리듬과 스타일로 그 서사가 전개되면 가장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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