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각본이 없다.'
에리카 종이 쓴 화제의 소설 <비행공포>에 거듭 언급되는 말이다. 각본이 없기 때문에 미래는 모호하고 불안하다. 반대로 미답의 길로 나아가는 모험의 가능성이 열려있다.
소설 속 화자 이사도라는 비행공포증이 있다. 그녀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삶과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서도 격심한 불안감이 엄습하곤 한다. 그 '비행공포'는 삶이라는 비행에서 경험하는 공포이기도 한 것이다. 그녀의 성장과정, 결혼과 이혼, 두 번째 결혼 이후 남편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이 불안하고 아찔한 비행으로 그려진다.
◇ 각본이 없는 인생 서사
이사도라는 정신분석의 남편 베넷과 함께 독일에서 열린 정신분석학회에 참석해 영국인 정신분석의 에이드리언에게 크게 끌린다. 그녀는 위태로운 비행을 시작하며 스릴을 동시에 느낀다. 두 사람은 농담으로 가득한 대화를 즐기고 베넷의 눈을 피해 밀회를 한다. 이사도라는 프랑스에 남아 자신과 놀며 여행하자고 말하는 에이드리언의 제안에 갈팡질팡 고심한다. 여가시간에 글을 쓰는 가정주부로 예술성을 망가뜨리는 생활을 계속하느냐? 모험을 하며 살아가는 작가로 살 것인가? 아내라는 현실과 작가의 꿈 사이에서 심리적 갈등을 겪다가 마침내 베넷에게 "나 떠날 거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난 떠나고 싶지 않아!'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좋건 싫건 나는 이미 모험을 시작했고, 그 모험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는 알 수 없었다."
이사도라는 남편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에이드리언과 함께 유럽 전역을 질주하며 여행하고 애정 행위를 탐닉한다. 그러다가 에이드리언이 처자식과 함께 다른 여행 일정을 보낼 것이란 것을 알고서 큰 배신감을 느낀다. 이사도라는 이를 통해 그에게 매달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마침내 에이드리언과도 결별한다. 그녀는 글을 쓰며 자기 자신을 발견해 나간다. 그간의 여정과 자신이 겪은 심리적 격동에 대해 찬찬히 성찰하면서 자기 결정력을 지닌 주체로 전환된다.
"19세기 소설은 결혼으로 끝난다. 20세기 소설은 이혼으로 끝난다. 그외에 다른 결말도 가능할까? 나는 고지식한 나 자신을 비웃었다. '인생에는 각본이 없다.'"
소설의 종결은 독자들의 예상을 빗나간다. 이혼도 아니고 싱글의 삶도 아닌 어떤 길을 암시한다. 소설을 종결하지 않고 각본 없는 미래를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듯하다.
◇ 생리혈로 쓴 서사
<비행공포>는 서구에서 핫한 페미니즘 소설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7000만부 이상 판매됐다. 페미니즘 고전의 고전이라는 찬사도 받고 있다. 소설 속 화자(이사도라)는 '나는 페미니즘을 추구한다'고 말할 뿐 아니라 여성주의적 이슈를 다루는 테마들이 소설 도처에 깔려있다; 결혼, 출산, 육아, 여성의 심리와 신체 묘사, 자유연애, 여성에게 강요되는 것들, 가정과 일 사이의 갈등, 생리, 성적 모험 등등. '여성들이여 스스로를 해방시켜라!'는 글귀도 도드라진다.
'역사를 통틀어 모든 책들은 정액으로 쓰여졌다. 생리혈이 아니고'
상큼하고 자극적이며 은유적이면서도 도발적인 표현이다. 이 소설에는 비속어가 여과없이 그대로 사용된다. 하지만 그리 외설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에리카 종의 문체가 매우 경쾌하고 날 것의 생생함과 솔직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읽는 이들은 온 몸으로 느낀다. 에리카 종이 머리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숨김이 없다. 다 까발리려고 작정한 듯 자신의 마음과 감정과 생각과 경험을 죄다 노출한다. 문학적 쓰기에 동원되는 적당한 감춤, 은유, 숨김의 미학도 배제된다. 마치 오토 픽션을 읽는 느낌을 준다. <비행공포>는 홀랑 벗고 독자들 앞에서 다 말하는 한 여성이 생리혈로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여성적 글쓰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페미니즘 사상을 전파하려거나, 페미니즘적 아이디어를 담으려 애쓴다고 페미니즘 작품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여성 작가가 글을 쓰면, 여성이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페미니즘 문학작품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몸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무엇(what)을 쓰느냐 보다 누가(who) 말하고 있는가가 열쇠다. 그렇다고 여성작가가 썼지만 남성 중심주의 질서에 속박되거나 기존의 가치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걸 여성주의적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말을 빌리자면 여성도 여성-되기를 실행해야 한다.
<비행공포>가 모든 페미니즘을 대변한다고 말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비행공포>에서 말하는 페미니즘은 '서구, 백인 여성, 지식인, 중산층의 페미니즘'으로 보인다. 작가 에리카 종도 그렇고, 소설 속 화자의 부유한 가정환경이나 학업, 여러 등장인물의 사회적 위상 등 모든 것이 미국과 유럽 백인 지식인 중산층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페미니즘이 아니고 하나의 페미니즘 혹은 어떤 페미니즘을 다루는 작품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1970년대 페미니즘의 특성과 이슈를 잘 드러내고 있는 소설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다른 인종·문화권·지역·계층 및 소수성을 지닌 여성들의 이야기와는 결이 다를 수 있다. 20세기의 담론의 흐름과 실존주의 철학 및 여성주의 전개라는 맥락에서 읽을 때 <비행공포>의 조감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공포를 수반하는 모험 서사
왜 비행공포일까? '비행공포'는 이사도라 개인의 심리적 증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삶이라는 여정에서 동일한 증상을 겪으며 여행하고 있다. 기차나 승용차로 홈이 파인 공간 안에서 정해진 경로만을 오간다면 공포증을 겪지 않을 것이다. 날아오를 때, 다르게 살고자 할 때, 길 없는 길을 갈 때면 전율스럽게 공포가 엄습한다. 공포는 각본없는 인생의 흔적이자 모험의 증표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은 혼자서는 불안을 느끼는 여성 주체, 자유를 갈망하는 실존적 주체, 욕망을 맘껏 추구하는 섹슈얼리티 주체, 기존의 규범과 질서에 저항하고 해체하는 분열적 주체, 자기 찾기를 감행하는 구도적 주체다. 우리는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평범함 속에, 무리 안에, 강자의 힘 안에서, 주어진 질서 안에 자발적으로 포획된다. 이는 어디 여성에게만 해당될까? 이사도라를 특정 젠더를 넘어서는 어떤 기호나 은유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을 솔직히 들여다보는 이라면 자기 안에도 이사도라가 살고 있음을 감지할지도 모른다.
<비행공포>의 서사와 이사도라의 몸짓은 어떤 출발 신호를 던지고 있는 것같다. 자신을 옥죄는 공포를 껴안은 채 자기 삶을 찾아 모험을 나서라고, 나를 완성시켜 줄 이상적인 사람을 찾아 의존하며 그 팔루스에 속박되기보다 스스로 찾고 스스로 결정하라고, 비행공포를 자기 인식의 재료로 삼으라고, 삶을 해방하는 해방을 꿈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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