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도 고통을 느끼고, 심지어 꿈까지 꾸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년 넘게 꿀벌을 연구한 수분생태학자 스티븐 부흐만(Stephen Buchmann)은 지난 3월 발표한 저서 '벌이 아는 것: 벌의 생각, 기억, 성격 탐구'(What a Bee Knows: Exploring the Thoughts, Memories and Personalities of Bees)를 통해 벌이 복잡한 감정을 지녔다고 주장했다.
부흐만은 자신의 연구와 수십 개의 다른 연구를 바탕으로 꿀벌이 낙관주의, 좌절, 장난기, 두려움 등 정교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다고 저서에서 밝혔다. 여러 실험에 따르면 꿀벌은 정교한 감정과 지각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고, 잠자는동안 장기기억을 처리한다. 심지어 꿈도 꿀 수도 있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을 수 있다는 연구들도 있다.
부흐만 박사는 "꿀벌은 자의식이 있고 지각이 있으며 원시적인 형태의 의식 또한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문제를 해결하고 생각할 수 있으며 심지어 원시적 형태의 주관적 경험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흐만 박사는 벌통 전체가 한 계절 안에 죽는 '군집붕괴현상'(CCD)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군집붕괴현상은 벌집에 있던 애벌레와 여왕벌이 폐사하는 것으로, 전세계 꿀벌 개체수가 지난 20년간 급감한 원인이기도 하다. 부흐만 박사를 비롯한 일부 전문가들은 산업화된 농업의 잔인한 관행으로 인해 벌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군집붕괴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꿀벌의 뇌는 양귀비 씨앗만큼이나 작아 이를 분석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10년 정도다. 이전의 곤충학자 대부분은 작고 뉴런이 적은 뇌에서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곤충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과 같은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1987년부터 꿀벌을 연구해온 라스 치트카(Lars Chittka) 영국 퀸메리대학 감각행동생태학 교수가 꿀벌이 정보를 배우고 처리하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꿀벌에 대한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16년전 연구에서 그는 벌의 적응 반응을 확인하고자 꽃 속에 숨어있는 모형 게거미(crab spider)로 벌을 잡았다가 무사히 풀어주는 실험을 했다.
실험결과, 꿀벌은 부정적인 경험 후 꽃에 내려앉기전 거미가 없는지부터 확인하기 시작했으며 일부는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치트카 교수는 2022년 저서 '벌의 마음(The Mind of a Bee)'을 통해 "벌들이 포식자를 피해다닐 뿐만 아니라 허위 경보행동도 보였다"며 "꽃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해도 꽃을 거부하는가 하면 없는 위협을 보고선 도망갔다"고 설명했다.
최근 연구에서는 꿀벌이 자당으로 보상을 받자 인간이 달콤한 간식을 즐길 때와 마찬가지로 신경전달물질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보상을 받은 벌은 받지 못한 벌들보다 더 열성적으로 먹이활동을 했다. 반대로 꿀벌이 앉아있는 튜브가 흔들리는 등 불안 상황에 놓이면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감소했다.
치트카 교수는 벌이 이렇게 정교한 지각력을 갖게 된 데에는 수분매개자로서의 역할 때문이라고 봤다. 벌들은 군체를 지탱하기 위해 많은 양의 꽃가루와 꿀을 수확해야 한다. 이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풍경을 기억하고 꽃을 평가해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교한 지각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치트카 교수는 이를 식료품점에서 쇼핑하는 것에 비유했다.
이같은 발견은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실험실 환경에서 벌들이 어떻게 대우받는지를 재고하게 만들었지만 특히 농업 및 살충제 관련 연구에서는 꿀벌의 대우를 따로 고려하는 일이 없다. 더욱이 생쥐를 비롯한 포유류와 달리 실험실 환경에서 곤충이나 무척추동물을 보호하는 동물복지법도 없다.
치트카 교수는 오늘날 게거미 실험과 같은 실험은 하지 않고 "윤리적으로 허용가능한" 실험만 수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동료들이 꿀벌에게 아무 마취도 하지 않고 여러 신체 부위에 전극을 이식하는 침습적 신경과학 실험을 수행한다"며 "법적 틀없는 실험이 공공연한 현 상황은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마저도 대량생산용 작물, 특히 아몬드를 수분하는동안 죽는 꿀벌 수에 비하면 연구 과정에서 죽는 숫자는 미미하다. 매년 2월 200만개 이상의 꿀벌 군체(미국 내 상업용 꿀벌 군체의 약 70%)가 캘리포니아의 아몬드 과수원으로 운반되고 농약·질병 등 산업화된 농업의 위험에 노출돼 매년 수십억 마리씩 죽는다.
비영리단체 '비인폼드 파트너십(Bee Informed Partnership)'에 따르면 꿀벌 군체는 2021-2022년도에 39%가 사라졌다. 이는 전년도에 폐사율 39.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미국 기준 과일, 채소, 견과류를 포함한 식단의 약 3분의1이 꿀벌 수분에 의존한다. 이에 미국 농무부(USDA)는 꿀벌의 질병 및 스트레스 관리방법 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일부 농업 사업장에서는 살충제 사용을 줄이고 재배작물을 늘려 꿀벌의 생존율 향상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그 원인이 꿀벌의 스트레스에 있다고 보았다. 양봉가의 개입만큼이나 벌의 기분이 벌과 꽃 사이의 균형을 크게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꿀벌 연구는 농작물 수분에서의 역할에 초점을 맞췄지만 최근에는 꿀벌을 윤리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꿀벌의 고통을 줄이면서 작물을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찾는 일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윤리적 이유로 동물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와 비건이 벌이 수분하는 음식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접시에 담을 음식이 거의 없을 것이다. 농작물 수분용 기계식 드론 및 자가수분 식물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자연 본연의 기술보다 효율적인 기술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가운데 등장한 미국 스타트업 비히어로(BeeHero)는 동물복지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최초의 수분서비스 중 하나다.
비히어로는 벌통에 전자센서를 설치해 벌떼의 소리와 진동을 모니터링하는데, 이것이 벌떼의 감정상태를 반영한다고 밝혔다. 센서는 주변 환경으로 인한 피해 데이터를 수집 및 분석하며 이 정보는 양봉가가 벌통의 상태를 실시간 추적하는 데 이용된다. 이 업체는 캘리포니아 아몬드 농장 약 400만㎢를 수분시키고 있다.
다만 부흐만 박사는 산업식 농업관행을 바꿔 전자센서가 필요없게끔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무척추동물, 특히 꿀벌의 감정을 대중이 이해해 윤리적 변화가 일어나기를 희망했다.
부흐만 박사는 "엄청난 양의 농약으로 벌들이 죽고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다"며 "벌도 지각이 있고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면 태도가 바뀔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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