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3년간 美에너지 1000조원 구매...애초부터 뻥카로 딜?

송상민 기자 / 기사승인 : 2025-07-29 15:38:32
  • -
  • +
  • 인쇄
▲27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에서 회동한 EU-미국 정상 (사진=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미국의 고율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산 에너지 3년간 7500억달러(약 1000조원)를 구매하기로 약속했지만, 실제로 이를 이행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EU는 미국에 6000억달러(약 830조원)를 투자하고, 반도체·항공 부문 일부 품목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받는 조건으로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또 EU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 내에 EU는 7500억달러(약 1000조)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를 수입하겠다고 약정했다.

그러나 3년 안에 EU가 1000조원에 이르는 미국산 에너지를 수입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선 미국이 한해 330조원에 달하는 에너지를 유럽에 공급할 여력이 있는가다. 에너지 시장조사업체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석유와 가스를 모두 합쳐서 우리 돈으로 222조원 어치를 수출했다. 한해 수출액을 몽땅 합쳐도 EU에 한해 330조원에 달하는 물량을 수출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미국이 자국의 에너지 수출물량을 EU에 몽땅 몰아준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 EU에서 미국산 원유를 정제할 수 있는 시설과 기술이 있느냐다. 미국이 주로 수출하는 원유는 '경질·저유황(light sweet)' 원유다. 반면, EU 정유업체들은 대부분 러시아산이나 중동산 '중질유'를 정제하는데 맞춰져 있다. 

미국산 경질유가 대량으로 수입되면 현재 정유 설비로는 정제 효율이 떨어져 원하는 연료를 생산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유업체들은 미국산 원유의 수입 비중을 전체 물량의 14% 이상 높이면 오히려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현재 EU 정유업체들이 수입하는 미국산 원유의 비중은 전체 물량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설비 구조상 이 비중을 더 늘리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또 있다. EU는 에너지 수입을 전적으로 민간기업에게 맡기고 있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수입을 강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EU는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미국산 에너지 수입 목표를 약정했지만 실제로 이를 수입해야 하는 주체는 민간기업들이다. EU 행정부가 "수입하겠다"고 발표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수입할 수 있는 시장구조가 아니라는 얘기다.

EU집행위의 한 고위관계자도 이같은 한계를 인정하며 "이번 목표는 EU같은 공공기관이 직접 보장하거나 강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며 "EU는 기업들에 방향성을 제시하는 정도의 역할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EU와 미국이 합의한 '3년 반동안 1000조원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가 현실화되기 힘들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U는 미국산 에너지 구매 확대 의향을 밝힌 것이지, 실제 물량 확보나 구매를 통제할 권한은 없기 때문이다. 유럽의 한 에너지 무역상은 "기업들이 이윤을 따지지 않고 움직일 이유는 없다"며 "현실적으로는 아무 영향이 없는 발표"라고 일갈했다.

그럼에도 EU가 이 수치를 공개한 배경은 정치적 압박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 앤소피 코르보 연구원은 "EU는 30% 관세를 피하기 위해 어떤 숫자든 제시할 준비가 돼 있었던 것같다"고 말했다.

결국 75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수입 목표는 아무런 권한과 기술도 없는 EU 행정부가 미국에게 공수표를 던진 셈이다. 실행 가능성이 거의 없는 '뻥카'로 EU는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핵심카드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협상조건은 EU가 정치적 계산 아래 제시한 '명목상의 약속'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서울시 기후대응 '엉망'...'생태·사회' 지표 대부분 '낙제점'

서울의 대기질과 생물다양성 자원, 재생가능한 깨끗한 물, 에너지 생산, 폐기물 현황 등 렌즈를 분석한 결과 총 41개 지표 가운데 33개가 기준치에 미달

용기 디자인 살짝 바꿨더니...동원F&B, 플라스틱 사용 14톤 절감 기대

동원F&B 동원식품과학연구원은 플라스틱 사용량 저감을 위해 지난 50여년간 사용해왔던 식용유 용기의 서포트링 디자인을 '12각 돌출 구조'로 개선했

[최남수의 ESG풍향계] ESG와 AI의 충돌

인공지능(AI) 시대가 개막했다. 이제 인류의 시간은 인공지능 이전(Before AI)과 이후(After AI)로 구분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AI 기술의 발

전세계 18개 철강사 탈탄소 평가...포스코·현대제철 '최하위'

포스코·현대제철의 탈탄소 전환도가 전세계 주요 철강사 가운데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지난달 31일(현지시간) 국제환경단체 스틸워치는 전세계

올해부터 5월 1일 쉰다…'노동절 공휴일법' 본회의 통과

올해부터 5월 1일 노동절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됐다.국회는 31일 오후 본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의 '공휴일에 관한 법률(공휴일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KT '박윤영號' 출범...취임하자 곧바로 대규모 조직개편

KT의 새로운 수장으로 박윤영 대표이사가 31일 취임하면서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단행됐다. 박윤영 대표이사는 이날 서울 서초구 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

기후/환경

+

'기후소송'에 족쇄 채우는 美정부...'석유기업 면책법' 추진

미국의 각 주와 도시들이 석유 등 화석연료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확대되자, 공화당과 일부 주정부가 이같은 소송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입

[기후테크] 탄소로 돈을 만든다고?...뉴톤의 AI 평가솔루션

탄소감축 프로젝트가 돈이 될까? 탄소감축 프로젝트를 예측하고 분석해서 '탄소크레딧'이라는 자산을 만들어주는 기업이 있다. 바로 기후테크 스타트

녹고있는 북극 영구동토층...'수천년' 묵은 탄소 '세상밖으로'

북극 영구동토층이 빠르게 녹으면서 수천년간 땅 밑에 얼어있던 탄소가 대규모로 방출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애머스트캠퍼스 연구진은 알래

[이번주 날씨] 변덕스런 봄날씨...9~10일 또 비온다

이번주는 비가 내린 뒤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다가 다시 회복하는 변덕스러운 날씨를 보이겠다.6일 전국에 비가 내린 뒤 7~8일 대체로 맑겠다. 그러나

7300년 전 대폭발한 日 해저화산…마그마 다시 '부글부글'

7300년전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던 일본 남부 해저의 '키카이 칼데라' 화산이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제기됐다.일본 고베대학교 연구진이 최근 국제학술

개화시기 올해 더 빨라져...'거짓 봄'에 농업·생태계 큰 피해 예상

전세계 곳곳에서 식물이 꽃을 피우고 잎이 싹트는 시기가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물의 잎이 트는 시기가 빨라지면 작물 피해와 생태계 교란으로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