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 제거 안하면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퇴색'
절취선이 있어도 쉽게 뜯기지 않던 '투명 페트병 라벨'이 2년전 재활용 등급이 세분화되면서 개선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제품들이 수두룩했다.
18일 본지가 국내 시판중인 투명 페트병 음료수 10종을 구입해 직접 라벨을 뜯어본 결과, 밀키스(롯데칠성음료) 1종을 제외한 9종이 옆으로 뜯기거나 접착제 때문에 라벨 속지가 페트병에 그대로 달라붙어 있었다.
코카콜라가 생산·판매하는 코카콜라와 환타, 스프라이트 등은 탄산음료에 붙은 접착식 라벨이 한번에 뜯어지지 않을 뿐더러 자국이 하얗게 남았다. 이에 대해 음료업계 한 관계자는 "탄산음료의 경우 순간적으로 음료를 주입해야 하다보니 압력에 민감해서 라벨을 압착하기보다 접착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델몬트 오렌지주스(롯데칠성음료)와 태양의 마테차(코카콜라) 등은 비접착식 라벨로 절취선이 있지만 사과껍질처럼 가로로 빙빙 돌면서 벗겨졌다. 토레타(코카콜라)는 라벨 크기를 줄인 덕분인지 옆으로 뜯기는 문제는 개선됐지만 절취선 밑으로 압력을 가해 손가락을 밀어넣어야만 뜯어졌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본인이 주부라고 밝힌 누리꾼이 "손 쓰는 작업을 많이 하는 주부들은 종종 방아쇠수지 증후군을 진단받는다"며 "이 때문에 며칠전 병원에서 처방을 받았는데 분리수거 하려는데 손가락이 아파서 도무지 페트 라벨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국소비자원이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0.6%가 '라벨 제거가 가장 불편하다'고 했다.
환경부는 지난 2021년 1월 페트병의 재활용율을 높이기 위해 '재활용 용이성 등급'을 기존 3단계에서 4단계(최우수-우수-보통-어려움)로 세분화했다. 라벨이 잘 떼어지는 제품은 '최우수' 등급을 부여한다. 최우수 등급은 재활용 분담금을 50% 감면받는다. 반면 '어려움' 등급을 받으면 분담금을 20% 할증받는다.
'최우수' 등급은 라벨이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거나, 접착제를 사용하더라도 라벨 면적의 0.5% 미만으로 도포한 경우나 절취선을 표시한 경우에 부여된다. 또 최우수 등급의 페트병 라벨은 물에 잘 떠올라야 한다. 이에 비해 '어려움' 등급의 라벨은 물에 떠오르지 않고, 절취선이 없는 경우다. 또 고온 세척수로도 접착제가 분리되지 않으면 '어려움' 등급이 부여된다. 페트(PET)는 밀도가 낮아서 가라앉고, 폴리프로필렌(PP) 재질의 라벨은 밀도가 낮아서 뜬다.
하지만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음료 투명 페트병들은 접착돼 있는 라벨이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았고, 절취선이 있어도 제대로 뜯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소비자들은 분리배출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음료업계 관계자들은 "절취선의 경우 사람마다 뜯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보니 그렇다"면서 "상품정보 때문에 라벨이 있는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도 있다"고 했다.
재활용 수거업체들도 접착제로 인해 라벨이 제대로 뜯기지 않은 페트병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경기도 김포시의 한 재활용업체 관계자는 "환경부가 재활용 등급을 세분화한지 2년이 지났는데도 페트병에 라벨이 그대로 붙어서 오는 게 대부분"이라며 "접착제가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 고온의 양잿물을 끼얹어 벗겨내야 하기 때문에 양질의 재생원료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전문설비를 동원해 압착된 라벨을 벗겨내야 하기 때문에 비용도 3배가량 더 든다는 것이다.
2021년 '최우수' 등급을 받은 페트병은 전체의 2.2%에 그쳤다. 이마저도 대부분 영양성분을 표시할 필요가 없는 무라벨 생수였다. 음료 페트병의 86%가 절취선을 박아넣고 우수나 보통 등급을 받아 재활용 할증 부담을 피해갔다. 그럼에도 해당 음료를 판매하는 기업들은 페트병 재활용이나 플라스틱 줄이기에 앞장서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같은 폐해를 막기 위해 현행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의 경우 '페트병 라벨은 반드시 손으로 쉽게 제거되어야 하고, 라벨 조각이나 접착제가 페트병 표면에 남아있지 않아야 한다'고 페트병재활용추진협의회 규정에 명시돼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일본 지자체들은 소비자가 라벨을 떼지 않으면 수거를 아예 하지 않는다.
정부는 페트병으로 만드는 재생원료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을 시행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 30만원을 부과한다. 하지만 이 제도가 무색하게 투명 페트병의 라벨은 제대로 제거되지 않고 있지만 이에 대한 후속조치는 없는 상태다. 재활용업체 한 관계자는 "재생원료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분리배출 단계에서 라벨 제거는 필수"라며 "QR코드나 레이저마킹 등을 이용해 무라벨로 제품을 생산하거나 쉽게 제거되는 라벨을 개발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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