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이 자연의 일부가 된 섬뜩한 모습"
"작품을 본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작업실 한 켠에 잔뜩 쌓여있는 돌멩이들을 살펴보던 장한나 작가가 제법 큰 돌덩이 하나를 짚더니 공중에 휙 던지고선 가볍게 받아낸다. 자세히보니 돌이 아니라 스티로폼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덩어리였다. 일부러 돌처럼 칠하고 꾸민 것이냐는 질문에 장 작가는 "제가 만든 게 아니라 자연이 만든 것"이라 답했다. 바로 이것이 버려진 스티로폼이 만들어낸 새로운 돌 '뉴락'(New Rock)이었다.
올 3월 브라질의 화산섬 '트린다지'(Trindade)에서 플라스틱이 녹아 자연물에 눌러붙은 '플라스틱 암석'이 발견돼 전세계가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플라스틱 암석이 브라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발견됐다. 이를 몇 년 전부터 수집해온 장한나 작가를 직접 만나봤다.
◇ 플라스틱이 암석화된 '뉴락'
'뉴락'은 암석화된 플라스틱 쓰레기를 일컫는 말이다. 버려진 플라스틱이 비바람에 깎이거나 지열과 태양열에 녹아 돌에 눌어붙으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돌이다. 때로는 스티로폼이 풍화되면서 딱딱하게 변한 것도 있다. 장한나 작가(36)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New) 돌(Rock)이라는 의미에서 '뉴락'으로 이름 붙였다.
장 작가가 뉴락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2017년부터다. 당시 제주도 해변에서 바위에 들러붙어 돌처럼 된 플라스틱을 발견하면서부터다. 강변과 해안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풍화작용을 거쳐 마치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변한 플라스틱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장 작가는 "이전에도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 활동 경험이 있어 플라스틱 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그 플라스틱의 말로가 이런 형태로 나타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후부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뉴락을 수집하고 주변에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장 작가의 이같은 모습을 눈여겨보던 큐레이터가 전시회를 제안하면서 본격적인 '뉴락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 자연물과 뒤섞여 버린 플라스틱
장한나 작가가 지난 6년간 전국에 있는 해안을 비롯해 한강 유역과 작은 섬에서 수집한 뉴락은 대략 2000여점에 달한다. 이렇게 많은 표본을 수집했지만 모양이 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장 작가는 "뉴락의 놀라운 점은 인공물이 자연에 녹아들고 있는 것"이라며 "몇몇 뉴락은 천연석과 구별이 불가할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표본을 집중해서 쳐다봐도 자연석과 뉴락을 구별할 수 없었다.
그는 전라남도 신안군 바닷가에 뉴락을 수집하러 갔을 때를 회상하며 "쓰레기가 많이 쌓여있다는 제보를 받아 갔는데 공교롭게도 지자체가 이미 쓰레기를 깨끗이 수거한 뒤였다"며 "그런데 해안가에는 여전히 뉴락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청소하러 온 사람들이 뉴락을 자연석인줄 알고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뉴락을 자연석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해안을 떠다니는 부표와 비닐에는 홍합과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있고 모래밭에 파묻힌 세제통에는 물풀이 자라난다. 심지어 뉴락에 집을 짓고 사는 개미들도 있다.
장한나 작가는 "올초 인천에서 커다란 바위처럼 생긴 스티로폼 뉴락을 작업실로 가져왔는데 이상하게 자꾸 하얀가루가 주변에 떨어졌다"며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자세히 관찰해봤더니 스티로폼 곳곳에 있는 구멍마다 개미들이 드나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전에도 뉴락에서 종종 곤충을 발견했지만 서식지를 형성한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장 작가는 "이처럼 자연물이 된 플라스틱은 결국 인간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플라스틱은 제조할 때 다양한 종류의 첨가물도 함께 들어가는데 이런 첨가물들은 대부분 유해한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플라스틱에 다양한 생물들이 생태공간을 만들고 살아가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생태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플라스틱은 더 잘게 쪼개져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하고, 이는 먹이사슬을 통해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다.
◇ 백마디 말보다 한 점의 '뉴락'
장한나 작가는 '뉴락' 전시에 대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생각했다. 플라스틱 쓰레기의 심각성을 주변에 아무리 말해도 귓등으로 듣던 사람들이 '뉴락'을 한번 보게 되면 '이게 맞나? 뭔가 불편하다'고 느끼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장 작가는 "저 역시 뉴락을 보고 나서 플라스틱 오염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면서 "앞으로 뉴락이라는 것이 지구에 생겨나고 있음을 알리고 이를 통해 어떤 미래가 오게 될까 고민하게 만들기 위해 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뉴락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도 스티로폼 속 개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각종 전자기기, 생활용품, 일회용품 심지어 옷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 소재가 사용되지 않은 제품이 없을 정도로 우리는 플라스틱에 둘러싸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뉴락'은 플라스틱의 역습인 셈이다.
한편 장한나 작가의 '뉴락 New Rock' 전시회는 오는 5월 4일부터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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