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의 '위험성'과 '비용'에 대해 경고하는 가운데 세계경제포럼(WEF)이 기후위기 '완화'와 '경제성'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혁신기술들을 소개했다.
WEF는 지난 8일 전세계 학자와 연구원들이 필진으로 참여하는 비영리 매체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의 기고문을 통해 '기후위기를 완화하면서 돈도 아끼는 5가지 혁신기술'을 제시했다. 이미 사용되고 있는 청정에너지 기술을 단순 에너지 생산 용도 외에 다른 기술과 접목시켜 잠재력을 극대화시킨 사례들이 주를 이뤘다.
◇ 물 증발 막고 전력효율 높이는 '태양광 운하'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6437km 길이의 운하를 태양광 패널로 덮는 '태양광 운하'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캘리포니아는 강우량이 빈약해 식수와 생활용수를 북쪽에서 흘려보내는 운하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기후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캘리포니아주는 1200년만에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는 등 물 수급에 점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태양광 운하'는 이같은 물 수급 문제를 해결하고,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기후변화를 완화할 전망이다. 태양광 패널로 운하를 덮으면 햇빛으로 증발되는 물의 양을 82%까지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간으로 따지면 약 650억갤런(2460억리터)의 물을 절약하면서 추가로 5만에이커(약 202㎢) 면적의 농경지에 물을 대거나 200만명의 생활용수를 해결할 수 있다.
게다가 태양광 패널 아래로 운하가 지나가면서 전력수급효율이 늘어난다. 운하를 타고 흐르는 물이 태양광 패널의 온도를 5.5℃가량 낮춰주면서 과열을 방지하고 효율을 높이기 때문이다. 관련 연구자들은 캘리포니아주의 모든 운하가 패널로 덮일 경우 2030년까지 캘리포니아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재생에너지 전력의 절반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열발전과 친환경 배터리 원료 생산을 함께
지열발전의 부산물인 '지열염수'에서 광물을 걸러내 배터리 원료를 확보하는 방식이 친환경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솔턴호에서는 저열염수를 통해 리튬을 확보하는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솔턴호의 저열염수는 30%의 농도가 리튬, 망간, 아연, 붕소 등 광물질로 이뤄져있다. 이 가운데 리튬은 배터리 생산에 필수적인 주요 광물이다.
건물이나 자동차 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저감하기 위해서는 친환경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은 대부분 중국, 러시아, 칠레, 아르헨티나가 생산하고 있고, 최근 공급망 문제로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 이에 지난달 3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리튬·니켈·흑연·코발트·망간 등 전기자동차 배터리 생산에 필수적인 주요 광물을 증산하기 위해 '국방물자생산법'(Defence Production Act·DPA)을 발동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열염수로부터 리튬을 추출하는 과정이 상업적 규모로 확대 가능해지면 미국은 전세계 리튬 생산량을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현재 솔턴호 주변 11개 지열발전소에서 확보할 수 있는 리튬은 연간 2만미터톤으로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50억달러(약 6조1650억원)에 달한다. 이는 미국 전체 리튬 수요의 10배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이다.
◇공급망 문제서 자유로운 '액체연료'
연구자들은 공급망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전력 저장 장치를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한 측정치에 의하면 2050년 전세계 리튬 매장량의 10%, 코발트 매장량의 100%가 소진될 전망이다. 이에 테슬라는 수년내 배터리 양극재 원료로 니켈만을 사용한 '100% 니켈, 코발트 프리' 배터리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광물을 활용한 고체 배터리가 아닌 액체 형태로 에너지를 저장하는 재생에너지 연료들도 등장하고 있다. 일례로 암모니아 연료는 태워도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는다. 대개 풍력·태양광발전소의 초과 전력생산량을 활용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제조과정에서도 친환경 전력을 사용한다. 또 에너지 밀도가 리튬 전지에 비해 10배 높아, 높은 출력을 필요로 하는 대규모 선박이나 로켓 연료를 암모니아 연료로 대체하는 움직임이 추진중이다.
비슷한 예로 수소를 연료로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생성하는 수소연료전지가 있다. 일반 화학전지와 달리 공해물질을 내뿜지 않고, 고갈될 일이 없어 '꿈의 에너지'로도 불리지만, 대부분 생산과정에서 천연가스를 이용한다.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기분해로 얻어지는 '녹색수소'의 경우 비용 문제로 효율과 경제성을 갖춘 최적화가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찾아가는 충전소 '비히클 투 홈'
전기자동차에 장착된 배터리의 용량과 효율이 증대되면서 '비히클 투 홈'(Vehicle to Home·V2H) 시장도 활성화되고 있다. V2H는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충전해 가정용 전력으로 공급하는 개념이다.
V2H는 정전 등 재난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앞으로 재생에너지 그리드망이 확대될 경우 효용성이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기후조건에 따라 변동성이 있고, 잉여 전력이 남게 된다. V2H 개념을 적극 활용하면 전기 가격이 쌀 때 전력을 비축하거나 잉여 전력을 비축해 전력수급효율을 높일 수 있다.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전기자동차는 포드 라이트닝, 미쓰비시 아웃랜더 등 대형차종에 한해 V2H 서비스가 호환될 수 있다. 최근 포드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포드 라이트닝 모델의 경우 한번의 충전으로 미국의 평균적인 가정집에 3일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해상풍력으로 탄소포집하고 바다 밑에 묻는다
지난 4일 발간된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는 지구 기온 상승폭을 1.5℃ 이내로 제한하려면 100~1000기가톤의 대기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에 직접공기포집(DAC) 기술을 활용한 CCUS(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이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DAC 기술은 해상풍력발전소와 연동됐을 때 서로의 단점을 상쇄할 수 있다. 그간 DAC 기술은 전력소모가 커 효율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따랐다. 해상풍력발전소의 경우 간헐적인 전력 생산방식 때문에 잉여전력이 낭비된다는 문제가 거론돼 왔다.
DAC 시설을 해상풍력발전소 가까이 위치시킬 경우 잉여전력을 활용해 전력을 공급할 수 있고,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고체화시켜 해저에 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 동부해안 해저 매장지는 포집된 탄소 500기가톤을 가둬둘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국내의 경우 가스 생산 수명을 다한 '동해가스전'은 연간 4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해 향후 30년간 총 1200만톤 규모의 온실가스를 매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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