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 재질 너무 많아 선별장에서 대부분 소각처리
생산자가 폐기와 재활용 책임지는 제도마련 시급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A씨는 평소 플라스틱 분리수거를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일례로 A씨는 항상 배달음식 용기의 라벨을 떼어내 물로 헹군 후 분리배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플라스틱 재활용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내가 아무리 열심히 분리수거를 해도 헛수고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우리나라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얼마나 될까.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국내 플라스틱 폐기물은 744만톤이다. 이 중 재활용되는 비율은 69.2%로 꽤 높은 편이다. 그런데 왜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낮다고 하는 것일까.
이유는 환경부가 집계하고 있는 재활용 비율이 정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환경부는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중심으로 집계하고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 담당하고 있는 가정 등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이 통계에서 모두 누락되고 있다.
이에 관련업계나 전문가들은 실제 재활용률이 환경부 통계보다 현저히 낮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게다가 폐플라스틱 추적시스템이 없어서 수거된 플라스틱이 실제로 재활용됐는지 그대로 소각됐는지도 파악할 수 없다. 환경부가 집계하는 재활용률은 실제 재활용 여부를 떠나 선별장에서 재활용 가능한 폐플라스틱로 분류된 양을 합산한 것에 불과하다. 재활용되지 못하고 그대로 소각된 폐플라스틱도 이 통계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장기화로 플라스틱 쓰레기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집콕생활로 배달음식과 온라인 상품구매가 증가하면서 일회용품과 포장재 사용이 급격히 늘어난 때문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0년 플라스틱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853만여톤으로 전년보다 14.6% 증가했다. 같은 시기 배달 이용은 전년보다 무려 75.1% 늘었다.
지난 18일 세계경제포럼(WEF)이 경험데이터 분석기업 퀄트릭스(Qualitrics), 독일 소프트웨어 기업 SAP와 함께 실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자들의 84%가 재활용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59%가 저조한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답했다.
◇일손 부족한 선별장···"작은 것은 다 버려요"
국내 산업폐기물의 경우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폐기물 처리방법과 통계 자료를 온라인 폐기물적법시스템인 '올바로시스템'에 모두 올려야 한다. 하지만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생활폐기물의 경우는 이런 의무사항이 없다. 환경부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민간 재활용업체들은 재활용 양을 환경부나 지자체에 보고하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생활폐기물을 수거하는 업체도 지자체별로 제각각이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경우는 대부분 관리사무소와 계약한 민간업체들이 수거하고 있고, 일반주택가에서 배출되는 생활폐기물들은 지자체로부터 위탁받은 업체들이 수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민간업체들이 수거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전혀 집계되지 않고 있다. 지자체가 민간업체들의 업무에 개입할 수 없는 탓이다. 폐기물 재활용 역시 민간업체들이 맡고 있기 때문에 재활용 여부도 추적되지 않고 있다.
경기도 김포시의 경우는 수거한 생활폐기물을 김포시 재활용수집소로 모아서 선별과정을 거친다. 선별된 재활용 폐기물들은 민간 재활용업체에게 보낸다. 그러나 이 선별과정에서 꼼꼼하게 분류되지 않고 있다. 충분히 재활용 가능한 재질이지만 시간과 일손 부족으로 그냥 쓰레기로 처리돼 버린다는 것이다.
김포시 폐기물 수거업체 관계자는 "선별장으로 반입되는 폐기물이 하루 50~80톤에 이른다"면서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들을 꼼꼼하게 골라내면 하루안에 일을 끝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부피가 큰 폐기물을 중심으로 우선 골라내고, 일회용 커피컵같은 작은 플라스틱 폐기물들은 그냥 버린다고 했다. 이렇게 버려진 폐플라스틱은 그대로 소각된다.
김포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실제 재활용업체로 보내지는 생활 플라스틱 폐기물의 양에 대해 "자료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며 "김포시는 생활폐기물의 일부만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김포시의 폐기물 통계는 실제량보다 적다"고 말했다.
서울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도 생활폐기물 처리량이 누락되는 문제에 대해 "정부에서 생활폐기물의 처리방법도 '올바로시스템'에 입력할 수 있도록 법을 개선하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 무늬만 재활용···사실상 다 태워버린다
문제는 소각되는 플라스틱도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으로 통계에 잡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플라스틱은 크게 두가지 방식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하나는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을 선별해 세척·파쇄 등의 과정을 거쳐 다시 제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물리적 재활용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 환경오염이 가장 적다. 다른 하나는 열분해나 화학분해를 하는 화학적 재활용 방식이다.
화학적 재활용은 열을 이용하는 방식과 화학물질을 이용하는 방식이 있다. 열을 이용한 방식은 열분해나 가스화 기술 등이고, 화학물질 분해의 경우 유기용제로 불순물을 걸러내거나 촉매를 이용해 폐플라스틱을 원재료로 되돌리는 기술이 있다.
이외에 플라스틱 폐기물을 발전시설이나 시멘트공장, 보일러 등의 대체연료로 활용하는 '에너지 재활용'이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플라스틱 폐기물을 단순히 소각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사실상 재활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으로 소각된 폐플라스틱도 모두 재활용률에 포함시키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는 에너지 회수를 재활용 범주 안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교보증권 리서치센터 통계에 의하면 2017년 국내 플라스틱의 생산량은 1만4424톤에 달했다. 그해 발생한 플라스틱 폐기물은 796만톤인데, 이 가운데 62%가 재활용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22.7%만 물리적 재활용 방식으로 처리됐다. 나머지는 '에너지 회수'라는 명목으로 대부분 소각됐지만 재활용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교보증권 리서치센터 보고서는 "폐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재활용하거나 에너지로 재활용하는 방식은 환경에 긍정적 영향보다 부정적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현재는 물리적 재활용이 환경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폐플라스틱을 그대로 태워버리는 에너지 재활용 방식은 소각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다량 배출된다.
◇ 재활용률 높이기 위해 제도마련 '절실'
가정에서 플라스틱을 세세하게 분리배출한 것이 헛수고가 되지 않으려면 플라스틱 재활용을 높이기 위한 정책마련이 절실하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플라스틱 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 재활용 통계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게다가 플라스틱 생산이나 재질에 대한 규제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용되고 있는 플라스틱 재질의 종류가 너무 많다. 이는 분리배출을 가로막는 요소이기도 하다. 제품 바닥이나 귀퉁이에 깨알처럼 새겨진 영문약자를 봐도 재활용 가능한 것인지 불가능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분리배출된 플라스틱 대부분은 선별장에서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그대로 버려진다. 이럴 거면 굳이 분리배출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폐기물의 재활용 비율을 높이려면 플라스틱 재질을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가지 이상의 플라스틱 재질로 생산된 복합플라스틱이나 재활용되지 않고 버려지는 폴리스틸렌(PS) 재질의 폐플라스틱은 화학분해 등을 거치면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경제성이 떨어져 대부분 버려지는데도 정부는 이를 그냥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플라스틱 순환경제를 구축하려면 생산자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보다 면밀한 조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독일의 경우, 플라스틱 포장재 제조 및 유통업체들이 폐기부터 재활용까지 의무적으로 책임지도록 하고 있고, 이를 모두 공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EPR'이라는 생산자책임 재활용 제도가 있다. 이는 생산자에게 폐기물에 대한 일정량의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재활용에 드는 비용 이상의 분담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생산자가 제품을 직접 회수해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량에 따른 분담금으로 재활용 업체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또 재활용 업체들은 지자체에만 실적을 보고하고 있어 정보가 파편화돼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렵다. 따라서 생산자들은 회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며 실적관리 또한 불투명하다.
게다가 EPR 제도가 적용되는 플라스틱 포장재는 전체 30%로 매우 한정적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EPR 품목에 도입되지 않은 플라스틱 제품군이 많아 그에 대한 자료는 없다"며 "앞으로는 더 많은 품목을 관리할 수 있도록 개선하려고 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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