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빙하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녹은 물이 2배 이상 많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얼음과 물의 중간형태인 '슬러시'를 간과한 탓이다.
28일(현지시간) 영국 케임브리지대 스콧극지연구소(SPRI) 레베카 델 교수가 이끄는 국제연구팀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남극 빙붕의 슬러시 지도를 작성해보니, 녹은 물의 57%가 슬러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파악했다.
기존에는 인공위성에서 관측한 연못이나 호수 면적을 중심으로 남극에서 얼음이 녹은 양을 추정했다. 그런데 실제로 녹은 물은 지금까지 인공위성을 통해 관측한 것보다 2.8배 많다는 것이다.
남극에서 얼음이 녹은 물은 통상 여름철인 11~2월에 바다와 맞닿은 빙붕 표면에서 연못이나 호수 형태로 발견된다. 빙붕은 남극 대륙을 뒤덮은 빙하가 바다로 흘러 내려와 평평한 형태로 얼어붙은 부분으로, 남극 해안선의 44%가량이 빙붕으로 둘러싸여 있다. 빙붕은 내륙 빙하가 바다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방파제 구실을 한다. 녹은 물이 많아질수록 빙붕이 무너지면서 남극 빙하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연구팀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지구관측위성의 남극대륙 관측 데이터에 머신러닝 기법을 적용해 2013년~2021년까지 면적 700㎢ 이상의 남극 빙붕 57개에 나타난 슬러시와 호수 면적을 월별로 분석했다. 그 결과, 가장 더운 1월에 남극 빙붕의 녹은 물 가운데 57%가 '슬러시' 형태로 존재했으며, 나머지 43%만이 지금까지 관측돼온 호수 형태인 것을 확인했다.
델 교수는 "호수는 인공위성 관측으로 쉽게 파악되지만, 슬러시는 구름 그림자처럼 보여 파악이 어렵다"며 "AI 머신러닝을 활용해 남극 대륙 전체의 슬러시를 빠르게 식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남극 연구의 대부분은 슬러시를 제외하고 이뤄졌기 때문에 기후변화로 인한 남극의 변화에 관한 연구를 다시 해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슬러시 형태가 태양열을 더 많이 흡수한다는 점이다. 호수와 슬러시는 빛 반사율이 눈이나 얼음보다 낮기 때문에 동일 면적일 때 태양열을 더 많이 흡수한다.
연구팀은 "슬러시까지 고려했을 때 남극 내 얼음은 표준 기후모델 예측보다 2.8배 더 녹았고, 빙붕 안정성과 해수면 상승에 영향을 미쳐 기후모델의 예측치를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델 교수는 "슬러시는 지금까지 남극 대륙의 모든 대형 빙붕에서 전체적으로 파악된 적이 없어 그 영향이 무시돼 왔다"며 "이런 녹은 물의 영향이 기후모델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데 놀랐다"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구과학(Nature Geoscience)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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