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우리 문제잖아요"...중학교 '환경수업' 현장을 가다

조인준 기자 / 기사승인 : 2023-06-15 07:30:02
  • -
  • +
  • 인쇄
▲환경교육을 받고 있는 서울숭문중학교 학생들 ⓒnewstree

"생분해 플라스틱은 분해되려면 60℃ 이상 고온에서 6개월 이상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전문설비가 없기 때문에 친환경이 아닙니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플라스틱 오염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당차게 대답하는 중학생. 서울 마포구 숭문중학교에서 진행된 환경수업 참가학생들의 눈빛은 자못 진지했다. 이 학교는 1, 2학년을 대상으로 1주일에 1번씩 환경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서울시의 플라스틱 쓰레기 처리법과 문제점'이었다.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양이 얼마나 되고, 이 가운데 매립·소각되는 양은 얼마인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직접 탐색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들은 수업을 위해 지급받은 단말기로 내용을 검색하고 정리했다. 이를 토대로 문제해결을 위한 실천방안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도 가졌다.

학생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제각각이었다.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비닐 대신 장바구니를 이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비롯해서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는 리필스테이션과 제로웨이스트샵 이용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물론 플라스틱없는 세상을 위해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이미 많지만, 중학생들이 입에서 실천 방식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적지않다는 게 수업을 진행한 신경준 교사의 말이다. 

신경준 숭문중학교 환경교사는 "환경수업 특성상 교과서 위주의 교육만으로는 효과가 별로 없다"며 "시시각각 변하는 정보를 학생들에게 직접 찾아보도록 하고, 찾아낸 정보를 통해 문제의식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탐색을 통해 본인이 인지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또 환경교육이 수업에서만 그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생활속 실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경수업이 끝나도 생활속에서 교육이 이어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일례로 칠판 한 구석에 이날 배운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으로 다음 수업시간까지 한 주동안 페트병 생수를 줄이고 폐안경을 기부해보는 활동 숙제가 적혀있었다. 학생들은 페트병 생수를 줄인 양을 포인트로 계산해 동아프리카 식수 위기 지원단체에 후원할 계획이다.

▲신경준 숭문중학교 환경교사 ⓒnewstree

환경수업은 다른 교과목과 다르게 시험도 수행평가도 없다. 신 교사는 "정답이 없는 과목인 만큼 시험 점수로 등수를 매기면 오히려 교육 취지가 퇴색된다"며 "수업을 받으면서 플로깅, 환경단체봉사 등 직접 참여하는 활동이 생활기록부에 남는 정도"라고 말했다.

시험점수에 반영되지 않는 교과목이어서 자칫 홀대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생겼다. 이에 대해 신 교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흥미로운 수업을 짜는 것이 환경교사의 숙제"라고 했다. 교사의 설명을 일방적으로 듣는 수업에 비해 지루하지 않아서일까. 실제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태도는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시험도 없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수업을 듣느냐는 질문에 한 학생은 "환경문제는 결국 우리가 직면할 문제"라며 "몰랐으면 관심도 없었겠지만 배우고 나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라고 답했다.

3학년 박시우 학생은 지난해 환경수업을 받은 이후 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에 참여하고, 여기서 수거한 쓰레기를 팔아 모은 수익금을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박시우 학생은 "환경교육을 받은 다음부터 환경에 관심이 생겨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지난해까지 혼자 활동했는데 올해는 환경수업을 받은 친구들과 함께 교내 플로깅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학교에서도 환경교육이 이뤄져 함께 환경문제를 해결할 친구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라는 바람도 드러냈다.

선진 각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환경교육을 하고 있다. 프랑스는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주당 2시간씩 의무교육을 하고 있고, 이탈리아는 모든 공립학교에서 매주 1시간씩 기후변화 관련 수업을 한다. 학생 10명당 환경전문교사 1명을 배치한 핀란드는 초·중학교에서 환경교과가 의무화돼 있고,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2차 교육에서 생물·지리·물리·화학 등 고등과학을 배우려면 환경교과를 9학점 이수해야 한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환경교육은 걸음마 단계다. 환경교과목을 채택한 중·고등학교는 전국 5631개교 가운데 875개교로 15.5%에 불과하고, 환경전문교사는 고작 49명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고등학교 환경수업의 70%는 3학년 수업으로 배정해놓고 사실상 자습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환경부와 교육부는 환경교과목을 늘리기보다 다른 교과에 환경교육 내용을 접목시킨 '교과 연계형 환경교육(융합교육)'을 지원하는데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교육환경이 대학입시를 최우선으로 간주하다보니 시험과 무관한 환경교과목이 찬밥신세로 내몰리는 것이다.

그러나 융합교육은 환경교과목을 대체하기엔 부족한 게 사실이다. 교과와 연계하는 융합교육 자체가 일선 학교와 교사들의 재량에 맡기고 있어서, 교육의 질이 제각각일 우려도 있다. 교육계 한 관계자는 "아무리 역량있는 교사라도 환경전문가가 아닌이상 콘텐츠 개발에 한계가 있다"라고 꼬집었다. 한 과학 교사는 교과 내용 가운데 '생태와 환경'이 있어 이를 교육하는 것으로 환경교육을 한 셈으로 치기도 했다. 또 교과 진도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매 수업마다 융합교육을 진행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외부강사 초빙도 쉽지않다. 울산 성신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환경을 가르쳐줄 외부강사 수가 부족해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점이 많다"면서 "어렵게 환경전문가를 모셔와서 강의를 진행해도 지식을 전달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교육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라고 털어놨다.

신경준 환경교사는 "융합교육을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지만 환경 전반을 교육하기엔 역부족"이라며 "매주 환경수업을 진행하는 나조차 환경의 모든 것을 가르쳤다고 보기 어려운데 정기적인 수업도 없이 가르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환경교육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선진국의 기후행동에 무임승차할 게 아니라면 이제는 누구나 학교에서 환경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낡은 옷, 포인트로 바꾸세요"...현대百 '바이백' 서비스 시행

현대백화점이 중고패션 보상프로그램 '바이백(buy back)' 서비스를 도입한다. 가지고 있는 의류를 되팔면 해당 상품 중고시세에 해당하는 금액을 현대백

SK이노베이션, 2030년까지 베트남 맹그로브숲 복원 나선다

SK이노베이션이 베트남에서 '아시아의 허파'로 불리는 맹그로브숲 복원사업에 나선다.SK이노베이션은 7일 베트남 짜빈(Tra Vinh)성 정부 및 현지 사회적기

KCC글라스 '2024-25 ESG보고서' 발간...KPI와 연계

KCC글라스가 지속가능경영 성과와 성장전략을 담은 '2024/25 ESG보고서'를 발간했다고 7일 밝혔다.올해 다섯번째로 발간된 이번 보고서는 △ESG 전략목표와

[최남수의 ESG풍향계] 글로벌 기업들 '지속가능 공시' 적극적인 이유

이재명 정부는 ESG 정책에 대해 전향적인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 가운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둘 것으로 보이는 정책은 지속가능성 공시다. 윤석

SK케미칼 '2024 지속가능 경영보고서' 발간..."5대 과제 평가 담아"

SK케미칼이 1년간의 ESG성과와 향후 전략을 담은 '2024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글로벌 공시 기준으로 통용되는 △

정부 '위약금 면제' 수용한 SKT..."정보보호에 7000억 투자" 결정

SK텔레콤이 해킹 사고로 번호이동한 가입자에 대해 위약금을 면제해야 한다는 정부의 요청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SKT는 침해사고 발생전인 4월 18일 기

기후/환경

+

또 물에 잠긴 파키스탄...폭우에 빙하 녹은 물까지 덮쳤다

몬순(우기)를 맞은 파키스탄에 이상고온으로 빙하까지 녹아내리면서 홍수가 발생해 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파키스탄 국가재난관리청(NDMA)은 1

40℃로 치솟는 英..."이 추세면 2070년대 폭염 사망자 3만명" 경고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2070년대에 연간 3만명 넘는 사람들이 폭염에 의해 사망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10일(현지시간)

李대통령 한마디에 지자체들 발빠르게 폭염대책 마련

폭염에 취약계층과 농민들의 피해가 없도록 해달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지방자치단체들이 발빠르게 대응하고 나섰다.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

서울 지역에 따라 지표면 온도 4.2℃까지 차이...이유는?

서울지역 한낮 최고기온이 35℃를 넘나들고 있는 가운데 서울도 지역에 따라 지표면 온도가 최대 4.2℃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숲의 면

[주말날씨] 백두대간 서쪽은 '찜통더위'...동쪽은 '더위' 꺾여

이번 주말에도 백두대간 서쪽과 내륙은 체감온도가 35℃를 넘나드는 '극한폭염'이 이어지겠다. 곳곳에서 낮동안의 폭염의 영향으로 밤에도 기온이 내

'참치' 늘고 '오징어' 줄고...뜨거워진 동해안 어종 바뀌고 있다

동해안은 전세계 연안에 비해 수온이 3배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탓에 어종도 바뀌고 있다.연일 35℃가 넘는 폭염이 한창인 10일 오후 3시 동해안의 수온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