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큰 변화는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12-07 0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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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상태에서 살짝만 건드려도 큰 파도 일어나
매순간 한계를 넘어설때 마침내 자신을 넘어서


2010년 12월 17일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한 노점상이 분신을 했다. 그 노점상은 모하메드 부아지지. 그는 몇 년간 지방 관리로부터 수모를 당해왔다. 그러던 어느날 그 관리가 부아지지의 저울을 몰수해 버렸다. 부아지지는 큰 모욕감을 느꼈다. 그는 관리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자신의 저울을 되돌려 받으려 했지만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그 노점상은 마침내 죽음으로 자신의 절망과 억울함을 표현했다.

이 사건은 2011년 '아랍의 봄'이라는 엄청난 불길을 일으켰다. 튀니지에서 촉발된 작은 사건이 알제리, 레바논, 요르단, 수단,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예만, 모리타나, 바레인, 리비아, 쿠웨이크, 모로코, 서부 사하라, 시리아, 이스라엘 경계도시에 이르기까지 반정부 시위와 사회적 변화를 촉구하는 혁명적 분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아랍의 봄을 일컬어 '아랍의 각성'(Arab Awakening), '아랍의 봉기'(Arab Uprising), '아랍 혁명'(Arab Revolution)이라고도 한다.

한 노점상의 죽음이 왜 이렇게 큰 봉기와 변화를 초래했을까? 먼저 한 시민이 너무 억울해 극단적인 방식으로 항의할 때 주변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되고 함께 항의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아랍 국가들의 억압성이 지나쳐 그 시스템은 임계상태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임계상태에 이르면 하찮아 보이는 국소적인 일 하나가 판 전체를 흔드는 대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

아주 살짝만 건드려도 큰 파도가 일어난다. 미세한 힘이 작용하면 견고한 돌덩이가 쪼개질 수 있다. 그 상태가 임계점(Critical point)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물에 열을 가하면 99.9도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에 미열만 가해도 100도에 이르게 되고 그 순간 액체는 기화되어 수증기로 변하기 시작한다. 평면 위에 모래를 조금씩 뿌리면 모래가 쌓이면서 모래산을 만든다. 모래산은 일정한 높이를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면 모래알 몇 알만 올려도 산사태가 일어난다. 그 몇 개의 모래알이 다른 모래알의 불균형을 초래해 연쇄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임계상태의 원리는 우리 삶에 두 가지 지혜를 가르쳐준다.

첫째 오류와 실패를 민첩하게 고치는 지혜다.

오류가 반복되면 그 시스템 작동이 어느 순간 멈춰버린다. 실패가 누적되면 건강한 흐름이 끊어지고 새로운 동력을 얻기까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게 된다. 문제는 임계상태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임계상태에 가까이 이르기까지 가시적인 격동이나 파국의 조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임계점에 임박하면 그 조짐은 두드러진다. 누구든 그 전조를 포착할 수 있다.

관계가 깨어지기 전에는 어떤 조짐이 있다. 사소한 말투나 단어 하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표정 등에서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사회가 임계상태에 가까이 가면 갈등과 대결이 빈발하고 극단화된다. 우리는 임계점에 이르러 표출되는 수많은 격동의 한 가운데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남성 중심주의적 질서도 지금 임계상태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회적 불평등이나 권력의 폭주 역시 임계점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정치학자들은 입을 모아 대의제 정치가 사실상 권력엘리트들에 의해 독점되어 민주주의의 근간에 균열이 일어나는 임계상태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기후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간 지구의 자원을 마구 채취한 인류의 탐욕과 성장주의가 기후환경의 균형을 급격하게 깨뜨리고 있다.

우리에게는 모든 변화를 미리 예측하는 감각이 없다. 하지만 임계상태에 이른 조짐이 보일 때는 신속하게 그간의 태도나 방법을 수정할 수는 있다. 아니 그것만이 답이자 살 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짙은 비극의 분위기를 느낀다. 사방으로 둘러보아도 스스로 깨닫고 신속하게 자신을 변화시키는 개인이나 집단이나 사회를 발견하기 힘든 것은 왜일까.

둘째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기 않는 굳센 의지다.

임계상태의 원리를 창조적으로도 적용할 수 있다. 당장에는 눈앞에 보이는 성과나 열매가 없을지라도 마침내 도달하게 될 도약을 바라보는 자는 절망하지 않는다. 조금만 더 에너지를 투입하고 변화의 포인트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모든 예술적 문학적 성취들은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 터득한 숙련의 결과다. 학업 실력의 도약이나 그 어떤 기술이나 지식의 습득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마주하고 넘어서야 할 어떤 극점들이 있다.

카타르 월드컵이 한창이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뛰고 있는 메시(Lionel Messi, 1987~)를 잘 알 것이다. 그는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를 거쳐 현재 파리 생제르맹에서 뛰고 있다.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선수 중의 하나로 '축구의 신'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그의 현란한 드리볼과 발재간, 정교한 슈팅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그는 남다른 역량을 보여 유소년 축구 유망주로 떠올랐다. 하지만 열한 살 때 성장 호르몬 결핍증(GHD)이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매달 100달러의 돈이 필요했다.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의 부모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큰 금액이었다. 부모가 빚을 내서라도 장애를 치료하고 그가 축구 선수가 될 수 있게 지원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2000년 7월, 메시의 가족은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FC 바르셀로나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여 스페인으로 이주했다. 조건은 메시의 치료비 전액을 지원해준다는 것이었다. 치료를 했지만 그를 큰 체구의 선수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는 지금 프로 선수로서는 가장 키가 작은 단신이자 빈약해 보이는 신체로 뛰고 있다.

메시는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기술과 속도와 정확성으로 메꾸었다. 그가 내보이는 스피드와 민첩성, 완벽한 드리볼, 정확한 슈팅과 수비수와의 몸싸움에 밀리지 않는 맷집, 수비수의 허를 찌르는 수읽기, 문전 앞에서의 차분함 등은 관전하는 이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피 말리는 연습과 숱한 시합 경험을 통해 신체 감각이 고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축구 기술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한계점을 뛰어넘는 시도를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도약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자는 그 지점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로 만들 수 있다.

나는 메시라는 한 소년이 자신의 삶의 위기와 신체적 한계를 극복한 이 이야기를 사랑한다. 니체는 말한다. '초인'(위버멘쉬)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이라고. 마지막 내딛는 한 걸음으로 능선을 넘게 된다. 그러므로 걸음을 멈출 수 없다. 조금만 더 열을 가하면 모래가 투명한 유리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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