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돈의 횡포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11-29 13: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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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필요성과 위력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아
돈을 숭배하지 않고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아이들을 키우면서 돈의 위력을 절감했던 적이 있다. 애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용돈을 주는 작은 기쁨이 있었다. 한 번은 1만원을 주었더니 두 아이의 입이 찢어진다. 얼굴에 희색이 만연해진다. "아빠 왜 이래요?" "아빠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 즉각적이고 격렬한 반응에 나도 놀랐다. 아이를 포옹하거나 칭찬할 때도 받아보지 못한 반응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아, 돈이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구나!

영국인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가 말했다. "나는 못생긴 사람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못생긴 사람이 아니다." 아주 그럴 듯한 말이다. 일종의 풍자다. 돈만 있으면 사람의 생김새나 인격에 상관없이 모두 손에 넣을 수 있는 '돈의 횡포'를 비꼰 말이다. 나아가 그는 돈을 물신(物神, 맘몬)에 비유했다. 돈은 전능한 힘을 지닌 신이 되어 사람 위에 군림하고, 사람들은 돈을 숭배하고 거기에 속박되어 살아간다는 것이다.

혹자는 무소유의 이상을 말하고, 어떤 이들은 청빈한 삶을 선택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야 하고 가족들을 부양하며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반짝이는 보물이면서 동시에 무서운 괴물이기도 한 '돈'이란 요물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 우리는 선택해야 할 것이다. 돈이냐, 사람이냐? 필요냐, 축척이냐? 나눔이냐, 독점이냐? 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 돈은 냉혹한 현실

매일 우리는 돈을 지불하며 살아간다. '화폐'없이는 일상의 모든 것이 정지된다. 아니 곧 죽음에 이르게 된다. 프랑스의 사상가 자끄 엘룰(Jacques Ellul)은 이런 말을 했다. "돈은 어느 누구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 돈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자는 고통을 겪게 된다. 돈이 있으면 기본적인 생계와 생존이 보장된다. 반면 절대 빈곤의 상황에서 행복을 향유하기란 불가능하다.

돈만 있으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그것보다 돈으로 그 사람의 인격과 가치가 평가받는다는 엄연한 현실 때문에 사람들은 기를 쓰고 돈을 모으려 한다. 가장 혹은 부모들은 자식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돈을 모은다. 파업이 일어나는 이유도 공정 논쟁이 첨예하게 촉발되는 것도 돈과 관련된 사회 계층적 차별과 현격한 삶의 질의 차이와 무관하지 않다. 돈 때문에 경쟁과 전쟁이 벌어지고 경제 현장은 이미 전쟁터다. 이 전쟁에서 패자가 되어 돈이 결핍되면 우리는 절로 불안해 지고 이윽고 삶의 토대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스스로 실패자로 여기게 된다. 이처럼 돈은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돈을 소유하려는 끊임없는 욕망 속으로 빠져들어간다는 것이다. 돈만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이요, 힘을 과시하는 권세의 깃발이자 모든 것을 보장해주는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돈에 대한 욕망이 이글거리고 있다. 돈을 목적으로 하면 사람을 수단으로 삼게 된다. 나에게 유익한 사람만 고르게 되고 타인을 이익창출 도구로 대하게 된다.

◇ 돈이 지배하는 거대한 신전 체계

사람들로 하여금 돈이라는 절대 신을 숭배하며 은총을 구하는 맘몬의 신전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이 신전은 돈이라는 추상적인 신상 아래 이 진리를 가르치는 무수한 사제들과 다수의 숭배자들로 구성돼 있다. 부유한 귀족들은 특별석에 앉은 채로 가난한 신도들은 맨 바닥에 엎드려 그 신을 예배한다. 이 제의를 마치면 가난한 신도들은 일터로 가서 금싸라기를 캐는 부단한 노동을 한다. 이 신전의 구조는 강력하고 영원해 보인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최상층부에 높은 피라미드가 세워져 있다.

우리는 탐욕을 벗어나라는 교훈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탐욕'이라는 모호한 심리적 종교적 언어로 사람들을 싸잡아 단죄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본다. 돈은 마음을 바꿈으로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든 전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고상한 해법은 돈을 둘러싼 힘의 흐름과 신전 중심의 사회 구조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이 신전은 은총의 배분이 불평등하고 불균등하게 이뤄지는 현장이다. 무한 축척의 구조다.

사회적 불평등이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되는 세 가지 해법이 있다. 그 첫째는 구호 혹은 구체(relief)다. 이는 개인적으로 실천하는 전통적인 윤리이자 해법이다. 하지만 가난은 여전히 재생산되고 언제나 사람들을 구제의 대상으로 영구화하는 단점이 있다. 둘째는 개발(development)이다. 자립적 기반을 마련하도록 인프라와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는 일이다. 지역 개발이나 국제 개발이 이에 해당된다. 셋째는 사회적 변화(social change)다. 법적 제도적 장치를 바꾸어 불평등 구조를 근원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사회 개혁이나 근원적 변혁의 노선들이 이에 속한다. 이 세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그것은 돈을 숭배하고 축척하려는 태도를 버리는 유목민의 길일 것이다. 돈의 제국을 벗어난 사람은 제국의 변방에서 유목한다. 이들은 함께 어울려 산다. 신전이나 성을 쌓지 않는다. 삶의 '필요'를 소중히 여기고 축척의 문화를 거부한다.

◇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태국 동부 시사켓에 '아속'이라는 공동체가 있다. 수행자들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이다. 아속은 농촌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아속공동체는 마트를 하나 운영한다. 함석으로 지붕을 한 낡고 넓은 가게다. 이 가게에는 주기적으로 농산물을 저렴하게 판매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아주 싼 가격에 농산물을 주민들에게 공급한다. 주민들이나 방문자들은 공동체에서 생산한 곡식과 야채와 과일을 아주 적은 돈으로 구입하고 누린다. 판매의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사실 나눔이자 공유이다[참고, 조현,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이를 인문학 용어로 '선물의 경제'라고 한다. 아속의 실험 아니 자연스런 나눔은 시장 경제와 자본의 지배를 벗어나 유목하는 공동체의 작은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주 뜻깊은 행사 두 군데에 참여했다. 하나는 학교밖 청소년들과 느린 학습자를 위한 대안교육기관에서 여는 행사였다. 다른 하나는 노동인권을 위해 일하는 재단에서 개최한 평화음악회였다. 두 행사는 티켓을 판매해 기금을 모았다. 수많은 지역 주민들과 단체들과 개인들이 티켓을 구입하고 돈을 기부했다. 두 장의 봉투를 준비하여 참석했다. 행복했다.

두 행사 현장에는 생기가 넘쳤고 만연한 웃음과 만남의 즐거움이 넘실대었다. 청소년들은 커피 바리스타가 되어 커피와 음료를 만들어 제공했고 떡과 다과를 선물로 나눠줬다. 자신들이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기도 했다. 동네 가수들과 주민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함께 흥겨워했다. 돈의 질서를 살짝 비껴나 함께 행복을 향유하면서도 '필요한 돈'을 함께 공유하는 살아있는 현장이었다. 우리는 왜 딱딱한 거래와 계약이라는 틀에만 매여 돈 거래를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요즘 서구 경제학에서는 탈성장과 공유의 경제가 주요 화두가 되고 있다. 무한 성장이나 축척이 아니라 탈성장 노선과 선물의 경제학이 인류를 위기에서 구하고 함께 공존하는 대안이 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구촌 곳곳에서 이를 실험하는 공동체들과 마을들과 도시들이 생겨나고 있고, 기업의 소유 및 지배구조를 노동자와 공유하는 국가들과 기업들도 많아지고 있다. 기후환경 및 공유의 경제에 참여하는 사업가들도 점증하고 있다.

돈,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 현실은 영원한 실체가 아니다. 그것이 신처럼 군림하지 않도록 이 허위의 신전과 피라미드를 해체하는 일도, 전혀 새로운 돈의 흐름을 만드는 일도 우리에게 달려있다. 먼저 내가 돈에 대해 가치 선택을 명료하게 하고 다르게 할 일이다. 아울러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마음들이 이어져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아울러 공존 공생하는 평면으로 바꾸는 일에 힘을 쏟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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