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러운 날씨에 무더기 고사
"온난화 대응 못하면 피해 커질것"
도로변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가로수는 도시에서 없어선 안될 존재다. 여름철엔 시원한 그늘을 선사하고, 가을이면 알록달록한 경관을 만들어주는 이 가로수들은 단지 도시미관뿐 아니라 도심의 온도를 조절하고 대기오염 물질을 줄여주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이 가로수들이 기후변화로 병들어가고 있다.
24년동안 '나무의사'로 일하면서 가로수들의 변화를 지켜본 월송나무병원 김철응 원장은 뉴스트리와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가 심해지면서 가로수는 점점 견뎌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가로수협회 이사 겸 신구대학교 환경조경과 겸임교수인 김 원장은 "나무의사로 일하면서 매년 지구기온이 올라갔고 이로 인해 가로수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봤다"며 "결국 기후변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가로수가 죽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올해도 온도변화로 고사해 잘려나간 가로수들이 부지기수였다. 전라도 등지에서는 배롱나무 가로수들이 지난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고사했다. 서울 및 경기도에서는 메타세콰이어가 동해를 입었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까지 식재된 배롱나무는 전국에 걸쳐 40만5300그루에 이르는데, 대부분 남쪽지역인 전남에 14만7800그루, 경남에 6만8500그루가 식재됐다.
기온이 올라가는 것도 가로수에게 치명적이지만, 같은 계절에 기온이 들쭉날쭉 변하는 것도 가로수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원장은 "지난 겨울의 경우, 전년보다 매우 따뜻한 날들과 매우 추운 날들이 연속해서 나타났고 변덕스러운 날씨에 가로수들이 적응하지 못해 고사했다"고 말했다.
날씨가 따뜻했다가 갑자기 혹한으로 변해버리면 가로수들은 그대로 얼어죽는다. 동해를 입은 가로수를 살릴 치료법은 없다고 김 원장은 말한다. 결국 얼어죽은 가로수들은 되살릴 방법이 없으니 그대로 잘라버리고 그곳에 새로운 가로수를 심는다. 하지만 새로 심은 가로수들 역시 기온변화로 몇 년후에 다시 고사해버린다.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역에 심어져 있는 가로수는 약 1040만 그루에 이른다. 벚나무류와 은행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양버즘나무가 전체의 52.8%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과 부산, 대구의 가로수 80%가 이 수종이 식재돼 있다. 수종이 너무 획일적이고, 단순 나열식으로 식재된 것도 문제로 꼽힌다.
김 원장은 가로수를 식재할 때 생장환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 9월 제주시는 도심 곳곳에 식재된 먼나무 40그루를 베어냈다. 강한 바람을 동반한 초강력 태풍 힌남노가 제주도에 상륙하기전에 나무 쓰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먼나무를 미리 제거한 것이다. 바람이 많은 제주도는 바람에 약한 먼나무가 가로수로 적합하지 않음에도 제주시는 계속해서 이 나무를 가로수로 심고 베는 것을 반복하면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같은 시기, 서울 강북구에서도 속이 비어버린 가로수가 강한 바람에 넘어지면서 시민을 다치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 김 원장은 "생육공간이 적절하지 않은 곳에 나무를 심어 뿌리썩음병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가로수들이 전선에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해 줄기를 잘라내는 가지치기를 하는 경우에도 이 상처로 물이 들어가 나무 기둥이 약해져 뿌리썩음병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통상 지방자치단체들은 가로수 관리사업의 일환으로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전선과 시설물에 닿지 않기 위해 가지치기도 하지만 간판가림으로 인한 민원으로 가지치기를 하는 사례가 전체의 33.3%에 이른다. 이같은 가지치기는 최근 3년동안 꾸준히 증가했다. 2018년 전국에 걸쳐 817건이던 가지치기는 2019년 1034건, 2020년 1174건으로 늘었다. 2020년 가치치기를 가장 많이 시행한 지자체는 전라남도로 244건이었고, 경상북도가 210건, 전라북도가 150건으로 많았다. 가로수 특성을 파악하지 않고 잘못된 가지치기를 하면서 가로수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겨울이 따뜻한 일수가 늘어나면서 병충해도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나라 가로수 해충은 △잎을 갉아먹는 미국흰불나방 △줄기를 파고드는 소나무 좀 △영양분을 빼앗는 진딧물 △열매를 파먹는 복숭아명나방 등이 대표적이다. 겨울에 이상고온이 늘어나면 봄까지 살아남은 해충의 알들이 많아지면서 가로수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올해 가장 기승을 부린 해충은 미국흰불나방이다. 미국흰불나방은 9~10월 애벌레 상태로 나무의 잎맥만 남길 정도로 잎을 모조리 갉아먹는다. 올해 특히 미국흰불나방이 극성을 부렸던 이유는 35도 안팎까지 기온이 오른 다음 비까지 많이 내리면서 병해충이 살기좋은 고온다습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유충이 급격히 늘어난 때문이다. 병해충방제는 가로수 관리사업의 44.3%를 차지할만큼 비중이 크다. 김 원장은 "이런 해충을 잡겠다고 농약을 뿌려대면 결국 이로운 벌레까지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지구온난화로 해충들의 습성과 식성도 변하고 있다. 김 원장은 "올해는 미국흰불나방이 가장 많이 발견됐지만 내년에는 어떤 해충이 기승을 부릴지 알 수 없다"며 "빠르게 변하는 지구온도를 억제하지 못한다면 가로수 피해를 예방하거나 낮추는 일은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로수 1그루가 1년동안 흡수하는 이산화탄소 양은 200kg다. 가로수 조성사업은 탄소중립과 미세먼지 저감 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서울시를 비롯해 각 지자체들도 도시숲을 조성하기 위해 저마다 녹지생태 공간을 넓히고 가로수를 정비하고 있지만 기후변화로 한반도의 수종이 바뀌면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
김 원장은 "기후위기로 가로수들이 위협받기 시작한 것은 몇 십년전부터 있어온 일"이라며 "이제 시민들이 이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고 대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육류 대신 채식위주로 식단을 바꾸는 등의 실천을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김 원장은 당부했다.
한편 김철응 원장은 2001년 국내 1호 나무병원인 '강전유 나무종합병원'에서 가로수와 첫 인연을 맺은 뒤, 이곳에서 6년을 일한 후 지금의 월송나무병원을 세워 지금까지 18년째 가로수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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