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에 친근감 형성하고 우호적 태도 만들어
'기생충'의 선전에 '어랏?' 했다.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에서 신기록을 세우며 전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킬 때만 해도 '한류열풍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지옥' '마이네임' 그리고 '지금 우리 학교는'으로 이어지는 K-드라마의 저력은 그야말고 전세계를 '찢었다'고 표현해도 좋을만큼 선전을 이어가고 있다.
도대체 우리 콘텐츠의 무엇이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정길화 원장(63)을 만나 직접 들어봤다.
1959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한 정길화 원장은 1984년 MBC에 입사한 이후 <인간시대>
[대담=윤미경 편집국장]
◇ 요즘 K-콘텐츠, 과거와 달라졌다
'한류'라는 말이 처음 나온 시점은 1999년 즈음이다. 1997년 중국 CCTV를 통해 방영된 우리나라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자, 1999년에 중국 청년보에서 이를 보도하면서 '한류'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일본에서 '겨울연가' 그리고 중동에서 '대장금' 등이 인기를 끌면서 중동과 아시아지역을 중심으로 한류가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드라마를 수출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글로벌' 시장을 크게 의식하지 않은 채 제작했다. "국내에서 인기를 끌면 해외서도 이런 결과가 나오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류 역사가 20년이 넘었다. 국내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를 수출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기획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시청권이 국내에서 세계로 확 넓어진 것이다. 기생충과 오징어게임 등의 계보가 이어지면서 '한류'는 이제 하나의 장르가 돼 버렸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펀딩하고 플랫폼 전략을 짤 때부터 해외 팬덤을 겨냥하고 만들고 있다. 그래서 확실한 차이가 있다. 거기에 '코로나' 팬데믹도 도왔다.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넷플릭스같은 OTT를 통해 드라마를 많이 보게 되고, 이것이 K-드라마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조사한 '2022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한국콘텐츠 소비가 대폭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한류 콘텐츠 소비가 증가했다는 응답이 드라마는 53.5%, 영화는 51.8%, 예능은 51.5%로 영상콘텐츠 분야에서 높게 나타났다. 한국과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는 질문에 여전히 'K팝'이 14%로 5년 연속 1위를 기록했지만, '드라마'는 전년도 5위에서 3위로 뛰어올랐다. 아마 '오징어게임'의 영향이 큰 것같다.
◇ '한류' 한국문화와 韓브랜드 소비로 이어져
넷플릭스에서 '킹덤'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 때 아마존에서 난데없이 '갓'과 '호미'같은 물건들이 불티나게 팔린 적이 있다. 호미는 정원을 가꿀 때 아주 유용하기 때문에 입소문을 타고 판매가 늘었다고 치지만, '갓'은 웬말인가 싶었다. 평소 쓰고 다닐 수 있는 모자도 아닌데. 이런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결국 한국에 대한 관심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K-드라마를 통해 한국문화에 친근감이 형성됐고, 이런 우호적인 태도들이 갓을 구매하는 행위로 이어지는 것같다.
이번 한류 실태조사에서도 이런 경향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응답자의 61.8%가 한류콘텐츠가 제품 구매로 이어진다고 답했다. 심지어 잘 모르는 브랜드라도 한국산이라면 구매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도 40%나 됐다. 한류로 높아진 국가이미지가 한국산 제품과 서비스의 신뢰로 이어져 연관산업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하면 떠오르는 연상효과에서도 한국음식과 IT제품·브랜드가 2위와 5위를 차지했다.
◇한류는 문화의 힘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10년전만 해도 헐리우드 콘텐츠가 전세계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프랑스와 일본 등이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듯이 한국도 처음에는 그 틈을 파고 들었다. '헐리우드 콘텐츠에 물리지 않느냐, 가끔 별식도 필요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어필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콘텐츠가 '장르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장르화되면 하나의 문화코드로 분류된다. 이같은 결과는 결코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누적된 학습과 경험의 결과치다.
무엇보다 한국문화와 한국콘텐츠의 힘은 전세계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올라간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물론 문화의 힘만으로 관심을 가지는 한류 팬들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경제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국가의 문화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곳은 별로 없다. MBC 재직시절 중남미 특파원으로 갔는데 당시 중남미 지역 사람들은 한국문화에 상당한 관심을 드러냈다. 중남미 국가들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정치와 경제적 위상은 선망의 대상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코리아 브랜드 가치가 높을수록 한국문화에 대한 수용성은 높을 것으로 본다. 우리가 흔히 '소프트 파워'라고 하지 않나.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고 그 나라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만들고 그 나라의 의도를 관찰하게 하는 힘이 바로 소프트 파워다. 대표적인 소프트 파워가 바로 문화콘텐츠다. K팝이나 K드라마 등의 팬이 되면서 한국문화에 대해 호의를 가지게 되는. 결국 국가의 위상과 문화콘텐츠 파워는 상호작용을 하는 거다.
◇ 한류 못지않게 상호 문화교류도 중요해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국제문화전담 기구로, 교류를 진흥하는 기관이다. 한국문화축제나 수교행사 등을 통해 한류를 활성화하는데도 힘을 쏟고 있지만 다른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고 상호교류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또 해외에서 한류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해외 한류실태조사를 11년째 하고 있고, 한류백서도 계속 발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는 태국축제, 몽골축제도 열었다. 올해는 수교 60주년인 멕시코와 문화교류를 가질 예정이다. 멕시코에서는 '코리아 시즌'이라고 연중 내내 한국과 관련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올 10월에는 멕시코의 세르반티노 축제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대됐다. 수교 140주년의 미국, 130주년의 오스트리아, 수교 30주년의 중국과 베트남 및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도 올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류를 일방적으로 공급하는데만 치우친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이런 행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 지난해는 베트남에서 보이밴드 그리고 걸그룹 한팀씩 초대해서 연예기획사에서 연수를 받도록 하는 기회도 줬다. 이렇게 연수받은 팀들은 아시아송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한류는 문화이기도 하지만 산업이기도 하다. 지금의 한류 양상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어, 앞으로 착한 한류로 이어지게끔 하는 것이 진흥원의 역할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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