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는 ESG 정책에 대해 전향적인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 가운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둘 것으로 보이는 정책은 지속가능성 공시다. 윤석열 정부 하의 금융위원회가 지속가능성 공시 방안의 발표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중요한 점은 정책의 전환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는 그동안 공시를 부담스러워하는 기업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입장을 취해왔다. 지난 4월 24일 금융위원회는 공시 의무화 시기를 정할 때 제조업이 높은 한국 산업의 특징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럽연합(EU)의 역외기업에 대한 공시 의무화 시기가 2029년으로 잡혀있는 점을 감안해 최초 시행 시기를 검토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사실상 2029년 이후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당초 2026년 이후로 늦춰놓은 일정을 더 연기하는 수순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런 정책적 입장이 이재명 정부에서 어떻게 바뀔지 주목된다. 핵심은 가급적 늦게 공시 의무화에 들어갈지 아니면 기업의 ESG 경영을 가속화하기 위해 일정을 앞당길지이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지속가능 공시에 대해 수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를 창구로 모인 기업의 의견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한 만큼 도입 시기를 2028년이나 2029년 이후로 미뤄달라. 둘째, 가치사슬에서의 탄소배출량인 스코프3는 공시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유예해야 한다. 셋째, 부담이 큰 법적 의무공시보다는 자율공시로 추진해야 한다.
문제는 국내 기업의 이런 입장이 글로벌 기업의 흐름과 거리가 있다는 데 있다. 워키바(Workiva)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과거보다 ESG 공시를 더 중요시하고 있다고 응답한 글로벌 기업이 89%에 달했다. 또 경영진 85%가 기후 공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SEC(증권거래위원회)의 기후 공시안에 제동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영진의 81%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스코프1과 2의 탄소배출 공시를 그대로 진행하겠다고 응답했다. PwC 조사에서는 기후 관련 지표를 공시한 기업 가운데 스코프1과 2 배출량을 공시한 기업이 88% 그리고 스코프3 배출량을 공시한 기업이 63%에 달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지속가능 공시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EU에서도 주목할 만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U는 최근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ESG 제도의 규제를 크게 완화한 '옴니버스 패키지'를 발표했다. CSRD(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와 관련해서는 대상 기업 중 무려 80%를 지속가능 공시 의무화 대상에서 배제시켜줬다. 기업들이 양손을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인데도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오히려 61% 기업이 당초 CSRD안에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공시 대상에서 제외된 중견·중소기업들 중 '당초 CSRD안이 불만족스럽다'고 응답한 비율은 25%(종업원 250명~499명 기업) 또는 17%(500명~999명 기업)에 불과했다. 이들 기업은 CSRD가 기업의 투명성을 개선하고 ESG 전략을 강화하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EU 기업들의 이런 관점은 지속가능 공시와 관련해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공시가 기업을 옥죄는 규제가 아니라 기업 경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양약(良藥)'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앞에서 소개한 워키바의 조사에서 거의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 경영진(97%)이 지속가능 공시가 향후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관투자자의 96%도 지속가능 공시는 기업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게 도움으로써 재무성과를 개선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지지하는 연구결과도 적지 않다.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전기범과 장몽택의 연구(2024년)에서는 ESG 공시가 기업가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속가능 공시가 기업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제고해 투자 매력을 증가시킴으로써 기업가치 상승에 기여한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시를 잘하는 기업은 리스크가 작다는 인식에 따라 자본조달 비용이 낮아짐과 함께 브랜드가 강화되고 고객 충성도도 높아져 경쟁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비슷한 결론을 도출한 해외 연구도 있다. 중국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한 후이 안 등의 연구(2023년)는 ESG 공시의 품질이 재무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결과를 내놨다. 공시의 품질이 높으면 투자자의 신뢰도가 높아져 자금조달 비용이 하락하고 이에 따라 경제적 효과가 커진다는 진단이다.
결국 지속가능 공시는 ESG 경영의 본질과 그대로 맥이 닿아 있다. ESG 경영이 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을 내재화하는 혁신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것을 '목적지'로 삼고 있듯이 지속가능 공시도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 지속가능 공시는 단순히 비재무적 데이터를 한 데 모아서 이해관계자들에게 공표하라는 규제가 아니다. ESG가 경영의 핵심 축으로 뿌리내리는 체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전환점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든 기업이든 한 발 빠른 능동적 대응으로 지속가능 공시 시대를 열어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