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굳이 이념적 경향성을 따지자면 ESG는 진보 이슈에 더 가깝다. 환경보호와 사람존중 등이 핵심 주제여서 그렇다. 실제로 각 정파가 ESG에 접근하는 움직임을 보면 이 점이 뚜렷해진다. 미국에서든 유럽연합(EU)에서든 보수 정당은 ESG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는 반면 진보 정당은 친ESG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ESG에 대해 이념적 편가르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극성 면에서 정파간에 편차가 있다. 우리나라 역시 ESG에 대해 진보 정당은 적극적, 보수 정당은 소극적인 편이다. 먼저 문재인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의지가 상대적으로 더 강했고, ESG 인프라 고도화 방안과 공공기관의 솔선 방침 등 굵직굵직한 정책이 나왔다. 반면 윤석열 정부에서는 ESG를 규제로 보는 시선이 강해서인지 별다른 정책이 발표된 게 없다.
각 정파가 이런 입장차를 보이지만, ESG는 이념 이슈로 매몰될 수 없는 기업경영의 핵심적인 틀이다.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이해관계자를 존중하는 투명하고 윤리적인 기업경영을 뜻하는 ESG는 이젠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기 때문이다. 글로벌 동향을 보면 정파간 다툼에 관계없이 기업들은 ESG 경영을 전략과 기업 운영 등에 내재화, 체질화해가고 있다. 해외 설문조사를 보면, 글로벌 경영진의 85%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하겠다는 기존 계획을 추진해가고 있으며 60.1%의 기업은 탄소감축 등 기후행동에 대한 다짐을 공표한 상태이다. 또 10년 안에 에너지원을 재생에너지로 바꾸겠다고 응답한 기업인 비중은 97%에 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가 막 출범했다. 진보 정부인 만큼 ESG에 대해 전향적인 접근을 할 것이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재명 정부는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ESG 정책을 추진해나가야 할까? 큰 틀에서 '현실 수용형'보다는 '현실 개혁형' 정책을 펼쳐나갔으면 한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높은 제조업 비중, 준비 부족 등의 이유로 ESG 정책의 속도 조절을 요구해왔다. 문제는 기업들의 기후변화 대응과 ESG 경영의 수준이 글로벌 흐름에 크게 뒤쳐져 있다는 데 있다. '기후 악당'이라는 국가적 오명(汚名)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다 ESG는 국제 무역규범화하는 추세여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입장에서는 잘 대응하는 게 불가피해졌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재명 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ESG 경영이 글로벌 수준으로 올라가도록 이를 재촉하고 유도하는 데 역점을 뒀으면 한다.
구체적으로 이재명 정부가 고려했으면 하는 ESG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해본다. 첫째 그린 성장 전략의 재가동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은 이제 단순히 규제 차원을 넘어 경제 성장을 위한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탄소중립의 글로벌 리더십을 추구하는 EU의 친그린 성장전략이 대표적 예이다. 국내에서도 대한상의의 조사 자료를 보면, 70%의 기업들이 탄소중립 대응이 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하고 있다. 결국 녹색 성장을 저성장의 새로운 돌파구로 삼아야 한다.
다음으로 ESG를 국가 전략적 과제로 실행해나가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ESG 기본법'이 제정돼야 한다. 현재 ESG와 관련해서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과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이 제정돼있다. 여기에 발맞춰 ESG 추진에 대한 국가, 지방자치단체, 기업, 금융기관의 책무를 정하고 정책 추진 체계 등을 구체화한 ESG 기본법이 추가돼야 한다. 이 법은 21대 국회 때 의원입법인 '기업 등의 지속가능경영 지원을 위한 환경·사회·거버넌스 기본법안'으로 발의된 적이 있지만 임기 종료로 폐기됐는데 정부 주도로 입법이 재추진되길 기대해본다.
셋째 ESG 정책이 현실의 속도보다는 한 발자국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국 기업의 부진한 ESG 경영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안이다. 예컨대 지속가능공시의 경우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되 기업의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 의지가 반영돼야 한다. 당초 정부는 2025년부터 공시를 시작한다는 계획이었다가 이를 미뤄 2029년을 고려하고 있는데 최근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좀 더 이른 시기에 공시를 개시하는 방안을 제안한 점을 적극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넷째 ESG 정책의 효율적 시행을 위해 각 부처가 산발적으로 내놓은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정해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중소벤처기업부가 나름대로 정책을 발표해왔는데 기획재정부가 총괄 조정 기능을 함으로써 일관성과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앞으로 정부는 조율된 정책을 시행하는 가운데 중소·중견기업의 ESG 경영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공공부문이 ESG를 선도하는 데 방점을 둬야 한다.
끝으로 ESG의 본질적 지향점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정책이 가시화되기를 바란다. ESG를 규제로만 보는 시각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기본적으로 ESG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통해 경영혁신을 이룸으로써 기업 가치를 제고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많은 글로벌 기업이 이같은 ESG 경영의 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볼 때 ESG는 기업의 ‘밸류업’은 물론 새로운 경제 성장의 지평을 여는 '거시적 전략'이 될 수 있다.
막 깃발을 올린 이재명 정부가 '발은 땅에 딛되 별을 보고 가는' 통찰력 있는 ESG 리더십으로 강하고 건강한 기업과 대한민국 경제를 만들어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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