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상쇄 크레딧 발급용으로 심은 나무가 기후위기로 인한 산불에 잿더미로 변하는 일이 벌어졌다.
9일 미국 비영리 기후단체 카본플랜은 지난달 24일 캘리포니아주 북부에서 발생해 지금까지 서울 면적(605㎢)의 3배가량인 45만에이커(약 1821㎢)를 태우고 있는 '파크 파이어'가 탄소상쇄 크레딧 프로젝트에 등록된 숲 4만5000에이커(약 182㎢)를 태운 것으로 추산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파크 파이어'는 진화하는데 최소 3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가뭄으로 바싹 말라버린 초목이 불소시개 역할을 하면서 산불 진화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장 더웠던 여름 톱10 가운데 9번이 2006년 이후에 발생한 것이다. 올해도 데스밸리는 53.9℃까지 올라갔다.
문제는 이번 산불이 탄소상쇄 크레딧 발급용으로 심은 산림까지 모조리 태웠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산림을 보존하는 산림소유주에게 탄소포집 및 저장에 대한 대가로 탄소상쇄 크레딧을 발급해주고 있다. 산림소유주는 이 탄소상쇄 크레딧을 탄소저감 실적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에 판매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탄소상쇄 크래딧을 구매한 기업들이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전력거래업체인 레인보우에너지, 유화제나 도료 등 원유정제 제품을 유통하는 트라이코 리파이닝 등이 대표적인 피해 기업들이다.
뉴멕시코주와 워싱턴주에서도 유사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도 올들어 산불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2만9000에이커(약 117㎢)의 탄소상쇄 크레딧 발급용 숲이 소실됐다. 뉴멕시코주 정부로 발급됐던 탄소상쇄 크레딧 177만주를 구매했던 석유 대기업 셰브론도 피해를 봤다. 이 크레딧을 위해 식재된 나무의 6%가 불타버렸다. 또 정확한 피해규모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다국적 석유기업인 셸과 BP 역시 워싱턴주 산불 피해지역에서 탄소상쇄 크레딧을 각각 14만5000주와 140만주를 구매했다.
이에 산림 예치계정(buffer pool)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산림 기반 탄소상쇄 프로젝트들은 화재, 가뭄, 병충해를 대비해 10~20%를 충격 완화용으로 떼어두고, 예기치 못한 산림훼손이 벌어졌을 경우 해당분만큼의 탄소크레딧을 예치계정에서 제거한다.
캘리포니아주는 산림 예치계정에 2800만주의 탄소상쇄 크레딧을 확보해놓은 상황이어서 아직까지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지난 10년간 이미 1100만주의 탄소상쇄 크레딧이 산불로 예치계정에서 소진됐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부족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카본플랜의 그레이슨 배질리 연구원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산불의 빈도와 강도에 비해 완충장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주정부가 탄소상쇄 크레딧 사업을 산불 위험지역에 인가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캘리포니아주 산림·소방당국은 "올여름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화재 건수는 5년 평균과 일치했지만, 불에 탄 면적은 5년 평균을 상회한다"며 "캘리포니아 전역의 평균기온이 예년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돼 올해 화재위험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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