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숙의 토닥토닥] 꿀샘이 책 읽어줄까?

김향숙 작가, 교육자, 前 혁신학교 교장 / 기사승인 : 2024-08-05 06:38:25
  • -
  • +
  • 인쇄
▲동네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읽어주는 김향숙씨 (사진=김향숙)

동네 도서관에 왔다. 방학이어서 그런지 어린이 열람실에도 아이들이 많다. 여름 도서관은 책 읽기에 최적의 장소다. 아이들 읽는 책을 고르는 나를 아이들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서로 웃었다. 학교에 근무했을 때, 방학이면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이 생각났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나를 '꿀샘'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꿀벌 옷을 자주 입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이 참 마음에 든다. '꿀벌 선생님'이라는 이미지도 있지만 '꿀이 흘러나오는 옹달샘'이라는 의미가 더 좋기 때문이다. 그 이름대로 아이들에게 한껏 꿀을 나누어 주고 싶다.

방학이 되면 나는 '책 읽어주는 꿀샘'이 된다. 학교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때문이다. 기다리던 방학이지만 그것도 며칠, 학교에 정적이 흐른다. 그럴 즈음 어디선가 아이들 소리가 들리는 곳이 있다. 그 숨소리를 쫓아서 살금살금 가본다. 바로 학교도서관이다.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여름철의 싱싱한 잎새 같다. 나는 그 초록빛에 물들고 싶다. 그래서 나는 고민한다.

'어떻게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까?' 도서관 가운데 앉은 한 아이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예온아, 지금 읽고 있는 책 제목이 뭐야?"
"네, 꿀샘. 『삐약이 엄마』예요."
"고양이 그림인데 왜 삐약이 엄마야?"
"네, 고양이가 병아리를 낳았어요."
"우와, 재밌겠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지?"
"그럼 꿀샘, 우리 같이 읽어요."
"그래. 그럼 꿀샘이 읽어줄까?"

나의 책 읽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도서관에 있는 아이들이 내 주변으로 모여든다. 마치 꿀을 먹고 싶은 아이들처럼 말이다. 나와 아이들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동화를 읽는 내내 도서관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꿀샘의 목소리만이 도서관을 채운다. 아이들 가슴에 꿀이 채워진다.

교장선생님이 책을 읽어준다는 소문이 번졌나 보다. 아침이면 도서관에 아이들이 찾아온다. 혼자서 오는 아이도 있고, 부모님과 함께 오는 아이도 있다. 집에 혼자 남을 동생을 데리고 오는 아이도 있다. 방학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아이도 있다. 나의 책동무들이다.

"꿀샘, 이 책 좀 읽어주세요!"
"저는 이 책을 가지고 왔어요!"

나는 아이들에게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가져오라고 한다. 먼저 아이들이 직접 골라온 책을 10분 정도 읽는다. 아이들에게 방금 읽은 책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해 달라고 부탁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이해한 책의 줄거리나 각자의 느낌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책 설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날 꿀샘이 읽어줄 책이 정해진다. 그래서 아이들은 신중하게 책을 선택한다. 아이들이 직접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제대로 읽고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아이들은 꿀샘이 읽어주기를 원하는 책을 직접 정한다. 책 읽어주는 시간은 30분 정도다. 어떤 경우에는 같은 책을 며칠간 이어서 읽기도 한다. 책을 읽어준 후에는 한두 명의 아이에게 소감을 듣는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낀다. 그 소리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소리다. 책을 매개로 아이들과 나는 하나가 된다. 책을 함께 읽으면서 나와 아이들은 꿀벌이 되어

함께 꿀을 긷는다. 꿀샘이 되어 행복하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 김향숙작가, 교육자, 前 혁신학교 교장 hanqqi321@naver.com  다른기사보기

핫이슈

+

Video

+

ESG

+

전북도, 다회용기 민간사업자 모집

전북특별자치도가 '2026 다회용기 사용 촉진 지원사업'을 수행할 민간 사업자를 오는 12월 24일까지 모집한다고 18일 밝혔다.이는 자원 순환을 목표로 도

삼성중공업, 선박 폐열회수 발전시스템 해상실증 나선다

삼성중공업이 선박 폐열회수 발전시스템 해상실증 나선다.삼성중공업은 독자 개발한 '유기랭킨사이클(ORC:Organic Rankine Cycle) 기반 폐열회수 발전시스템(

쿠팡 '못난이 채소' 새벽배송 3년...직매입 물량 8000톤 돌파

쿠팡은 최근 3년간 전국 농가에서 직매입해 새벽배송으로 선보인 '못난이 채소' 누적 규모가 8000톤을 돌파했다고 18일 밝혔다. 쿠팡은 지난 2023년부터

[ESG;스코어] 韓 해운사 탄소효율…벌크선사 팬오션이 '꼴찌'

팬오션, 현대글로비스가 우리나라 해운사 가운데 '탄소집약도지수'(CII) 위험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현대LNG와 코리아LNG, KSS해운은 CII 위

카카오 '장시간 노동' 의혹...노동부, 근로감독 착수

카카오가 최근 불거진 장시간 노동 문제를 두고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을 받게 됐다.고용노동부 관할지청인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은 이달초

사고발생한 기업들 ESG 순위도 추락...산재로 감점 2배 증가

자산 2조원 이상의 대기업 가운데 현대홈쇼핑과 현대백화점, 유한양행, 풀무원,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올 하반기 서스틴베스트 ESG 평가에서 상위에 랭크

기후/환경

+

전기차 충전시설, 28일부터 지자체 신고·책임보험 의무화

이달 28일부터 건축물 주차장에 전기자동차 충전시설을 설치하려면 지자체에 신고하고 책임보험도 가입해야 한다.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같은 내용을

[COP30] 교황의 묵직한 경고..."기후위기 대응, 더는 미룰 수 없다"

교황 레오 14세가 세계를 향해 "기후위기 대응을 즉각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묵직한 경고를 날렸다.교황 레오 14세는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는 제30차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앞으로 '1000년' 이어진다

탄소중립을 달성해도 산업화 이후 오른 지구의 평균기온이 최소 1000년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17일(현지시간) 21세기 호주 연방산업연구기구(CSIRO)

[COP30] "이건 생존이다!"…기후 취약국들 COP30에서 '절규'

기후취약국들이 "기후위기는 생존 문제"라며 선진국의 실질적 감축과 재정지원 확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17일(현지시간)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

지역마다 제각각 풍력·태양광 '이격거리'...기후부, 규제 합리화 추진

지역마다 제각각인 태양광과 풍력의 이격거리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규제 합리화를 추진한다.기후에너지환경부는 서울 영등포구 한국에너지공단 서울

'대기의 강' 때문?...美 LA에 역대급 폭우로 '물난리'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남부지역에 폭우가 나흘 넘게 이어지면서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17일(현지시간) 미 기상청(NWS)에 따르면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