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 필요한 '투자자금' 어디서 조달?
순환경제 달성에 필요한 자금줄 역할을 하는 '순환금융' 시장이 전세계적으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는 첫발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11일 뉴스트리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 등 국내 4대 금융지주는 '순환금융' 관련 금융상품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앞으로 출시할 계획이 있는 상품조차 없다. 이는 기업이 순환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전무하다는 의미다. 신한금융이 유일하게 자원순환 기업을 대상으로 친환경 대출·펀드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는 폐기물 저감이 아닌 탄소저감 성과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순환금융'은 폐기물을 자원화하기 위한 기술의 연구개발(R&D)을 비롯해 폐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공급망 구축, 폐자원을 재활용 가능 자원으로 가공하기 위한 공정설비 등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금융상품을 말한다.
전세계 순환금융 시장은 기후금융, 자연금융과 더불어 관련 금융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앨런맥아더재단에 따르면 2019년 3억달러 규모였던 '순환경제 주식투자형 펀드' 상품은 2021년 95억달러로 3년 사이에 28배 증가했다.
영국 테스코는 폐기물 저감성과를 이자율과 연동하는 방식으로 프랑스의 BNP파리바로부터 2020년 25억파운드의 지속가능연계대출(SLL)을 받았다. 블랙록은 자원순환 주식형 펀드를 출시해 100% 재활용 폴리에스터 사용을 약속한 아디다스 등 순환경제 전환에 성공한 기업 위주로 투자했고, 로레알은 2025년까지 플라스틱 포장의 50%를 재생원료로 사용할 것을 전제로 지속가능연계채권(SLB)을 발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전세계 금융시장이 '순환경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것은 탄소중립과 자원순환이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탄소배출량의 45%가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의 탄소배출량을 줄이려면 폐자원 활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게다가 플라스틱 국제규제를 비롯해 각 나라별 재생원료 의무화 등 전세계적으로 자원순환과 관련된 규제가 많아지고 있는 것도 기업들이 자원순환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제 기업은 자원 재순환율을 높이지 않으면 제품의 수출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을 뿐더러, 글로벌 무대에서 설자리를 잃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국내 금융지주들은 '순환금융' 관련상품을 전혀 출시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금융권 한 관계자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가 아직 완전하게 자리잡은 것이 아니다보니 순환경제 관련 상품을 출시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녹색분류체계는 친환경 산업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금융, 세제 지원을 통해 투자를 활성화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편성된 틀로, 아직 채권에만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여신이나 펀드 등 다른 금융상품에 적용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게 금융권의 얘기다.
순환경제 관련규제가 미비한 것도 순환금융 상품출시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환경부는 페트(PET) 원료를 1만톤 이상 생산하는 업체에게 재생페트 원료를 3% 이상 생산하도록 하는 '재활용 지침'을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침은 원료기업에게만 부과되는 '권고'일 뿐 강제성이 전혀 없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KB금융 관계자는 "순환금융 수요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상품을 기획해서 내놓는 것은 쉽지않다"면서 "현재로선 중심현안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K-택소노미나 규제 미비를 핑계로 순환금융 시장조성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국내 금융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종대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순환경제 시장이 열리지 않아 기회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글로벌 순환금융 시장을 활용하면 된다"면서 "자원순환 실적과 연계된 펀드에 투자하거나, 플라스틱 크레딧 거래시장에 들어가면 순환금융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올해말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맺어지면 우리나라도 플라스틱 재활용·재사용 비율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면서 "그러면 규제가 강화돼 기업들은 순환경제 기술과 설비투자에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내 금융권도 이 수요에 대응해 빨리 순환금융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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