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목표를 더 높이지 않으면 RE100에 가입한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들은 재생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해외로 사업장을 줄줄이 이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총괄위원회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전체 전력수요 641.4TWh의 21.6%인 138.4테라와트시(TWh)로, RE100 10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재생에너지 용량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현대자동차, 삼성바이오로직스, 기아, KB금융, 네이버, 삼성SDI, LG화학 등 10대 기업은 2040~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으로 모두 전환하겠다는 RE100을 선언했다. 이 기업들은 국제적으로 RE100을 선언했기 때문에 자사가 목표한 연도에 재생에너지 100%를 실현해야만 한다.
그러나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2022년 8.2%에서 2023년 약 9% 수준으로 찔끔 늘었다. 전세계 평균 30.3%에 한참 못미친다. 10대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통해 밝힌 2022년 전력사용량을 모두 합치면 총 72.5TWh로, 2022년 국가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용량 50.4TWh보다 많다.
정부가 올해부터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증설해 138.4TWh까지 확충하더라도 10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재생에너지 용량을 충족시키지 못할 공산이 크다. 대기업들은 앞으로 인공지능(AI)과 전기자동차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공장증설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이 늘어나면 전력사용량도 그만큼 증가하게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26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입주할 예정이고, 10대 완성차업체 자국 생산비중이 1위인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수요를 반영해 2025년까지 전기차 공장을 국내에 증설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2030년 삼성전자의 전력사용량은 55TWh, SK하이닉스는 36TWh에 달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현재보다 2배, SK하이닉스는 3배 늘어난다. 두 기업을 합친 전력사용량만 91TWh에 달한다. 여기에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배터리 업체들도 전기차 수요가 증가하면 덩달아 증설할 수 있으니, 2030년에 이르면 10대 기업의 전력사용량은 현재보다 최소 0.5~2배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10대 기업들이 2030년 전력사용량이 2022년보다 2배 늘어난 145TWh라고 가정한다면, 이는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138.4TWh를 넘어선다. RE100을 실현해야 하는 입장인데 국내에서 재생에너지로 모든 전력을 충당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더구나 RE100을 선언한 국내 기업은 이 10곳 외에도 26곳이 더 있다.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기업이 236곳에 달한다. 기업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CoREi)와 플랜1.5가 공동으로 발간한 '2030 국내 재생에너지 수요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국내기업 재생에너지 수요는 157.5~172.3TWh로 전망됐다.
현재 기업들은 부족한 재생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 '녹색 프리미엄 제도'에 의존하고 있다. '녹색 프리미엄 제도'는 실제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일반 전기요금에 웃돈을 얹어 재생에너지 사용실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녹색 프리미엄 제도를 이용해 재생에너지 사용비율을 2021년 4%에서 2022년 29.6%로 올렸다.
RE100 기업들은 궁여지책으로 현재 '녹색 프리미엄 제도'를 활용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이를 계속 활용하기는 어렵다. 녹색 프리미엄 제도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기여하는 바가 가장 적고, 탄소저감 실적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RE100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전세계 RE100 기업 가운데 녹색 프리미엄 제도를 활용한 비중은 19%에 불과했다. 반면 국내 RE100 기업의 녹색 프리미엄 제도를 활용한 비중은 80%에 달했다.
이에 산업계에서는 RE100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해외로 사업장을 이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면서 원전 신규 증설을 통해 탄소없는 에너지를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RE100 기준에서 원전은 재생에너지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기업들 입장에서는 재생에너지를 해외에서 구해야 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때문에 우리나라가 산업 공동화 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면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하는 수출기업들은 마냥 정부만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연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전세계 주요 국가들이 재생에너지 목표를 높이기 위해 전폭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없이 화석연료 기반으로 글로벌 탄소 무역장벽에 대응한다는 것은 사실상 힘들기 때문에 산업경쟁력 차원에서라도 정부는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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