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니냐 온다더니 '기습폭우'...한반도 아열대화로 기후변화?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4-05-14 17:44:46
  • -
  • +
  • 인쇄
'봄철 폭우' 굳어져 농업재해 일상화 우려
농산물 수입량 늘리는 '땜질식 처방' 안돼
▲수확을 앞둔 귀리가 폭우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농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들어 때아닌 '봄철 폭우'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한반도 기후가 온대에서 아열대로 바뀌는 징조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5월들어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궂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일 어린이날 연휴에 이어 지난 주말에도 흡사 여름철 장맛비를 연상케하는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내렸다. 15일 '부처님 오신 날'에도 비가 예보돼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16일 목요일까지도 궂은 날씨가 이어진다는 예보다.

이번 '봄철 폭우'는 경작지가 많은 남부 지방에 집중되고 있다. 이 때문에 농작물 피해도 심각한 상황이다. 어린이날 연휴동안 전남지역에서 내린 비의 양은 평균 100.7㎜였다. 특히 5일 하룻동안 내린 비는 역대 5월 일평균 강수량 가운데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비로 수확을 한달여 앞둔 보리와 조생 벼는 비바람에 쓰러지거나 물에 잠겼고, 농경지 1723헥타르(㏊)가 피해를 입었다.

전남에서 40년동안 귀리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민은 하루에 내린 비로 귀리가 고꾸라지는 '도복 피해'를 입은 것은 난생처음이라고 했다. 통상 우리나라는 4~5월 건조하고 쾌청한 날씨가 이어지고 일조량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강한 비가 많이 내리고 있어, 농민들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극히 이례적"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봄철 폭우'가 엘니뇨 여파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우리나라 주변 바다의 온도상승으로 수증기가 많이 발생해 비구름도 그만큼 증가하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봄철부터 발달한 엘니뇨로 2023년 5월 강수량이 예년(79.3~125.5 mm) 기록을 훌쩍 뛰어넘은 191.3㎜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기상학자들은 올 4월부터 엘니뇨가 라니냐로 전환되는 시점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봄철 폭우'가 엘니뇨 여파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남재철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특임교수는 "세계기상기구(WMO)는 올 4~6월 엘니뇨가 점차 약화돼 '중립' 단계로 전환될 가능성이 80%라고 전망했다"면서 "라니냐로 전환하면 엘니뇨와는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강수량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5월에 비가 늘어나고 있어 지금까지 한반도 기상현상 추세와 들어맞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기상청은 2050년에 이르면 내륙 고지대를 제외한 한반도 남부지방 대부분이 아열대로 변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기상청이 10년 단위로 발간하는 '장마백서 2022'에서는 처음으로 '우기'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6월부터 5일 평균 강수량이 7㎜를 넘어서는 1차 우기인 '장마철' 외에 폭우가 쏟아지는 시기가 늘어나면서 8월초~9월초를 '2차 우기'로 정의한 것이다. 강수량이 많은 아열대 기후의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연중 날씨를 우기와 건기를 구분한다.
 
한반도의 '봄철 폭우'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는 징후라고 한다면 앞으로 농작물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기후변화연구원 한대건 부연구위원은 "이대로 가면 3차 우기, 4차 우기도 추가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이미 기후변화로 인해 지난 2022년 농가당 평균 농업소득이 전년대비 26.8% 감소한 949만원에 그쳤다는 연구결과도 나온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더 늦기전에 한반도 기후변화에 맞춰 농가에서 소득작물을 심을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농산물 피해가 극심해지고, 이는 고스란히 밥상물가 인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대건 위원은 "농업재해보험을 활성화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한편 기후변화에 맞춰 신소득작물을 기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특히 비닐하우스 등 농업시설을 스마트팜 등으로 현대화할 수 있도록 지자체들이 기술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재철 교수는 "온실가스를 줄이고 에너지를 효율화시키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면서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식량위기는 기후위기 대응의 또다른 중요한 축"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후위기 대응에 정부가 땜질식 처방을 하기보다 체계적인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신규 원전건설 백지화 시사한 환경장관 "탈원전은 아냐"

곧 출범할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이끌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새로운 원전을 짓는 데 대해 국민 공론화를 통한 재논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신규 원전을 추

"비용부담 커진다"vs"무상할당 안돼"...4차 배출권 할당계획 '대립각'

정부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적용할 '제4차 국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안'을 놓고 산업계와 시민단체들이 큰 의견차를 보이고 있다. 산업계

경기도주식회사, 탄소중립 실천 위한 '친환경 협업 기업' 모집

탄소중립 실천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경기도주식회사가 오는 10월 3일까지 '2025년 2차 기후행동 기회소득 사업 플랫폼 구축 및 운영' 협업 기업을 모

"철강·석유화학 배출권 유상할당 높여라...국제추세 역행하는 것"

환경부가 철강과 석유화학 등 탄소다배출 업종에 대한 4차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무상할당 비율을 종전대로 100%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자, 시민단

배출권 유상할당 20% 상향...상의 "기업 비용부담 커질 것" 우려

환경부가 2026년~2030년까지 기업들의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비중'을 현행 10%에서 15%로 올리는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에 대해 산업계가 비용부담

한은 "극한기후가 물가상승 야기…기후대응 없으면 상승률 2배"

폭우나 폭염과 같은 극한기후고 소비자물가에 단기적인 악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1년 넘게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기후변화

기후/환경

+

강릉에 '반가운 비'...폭우 쏟아졌지만 가뭄 해갈 역부족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강릉에 '단비'가 내렸다. 아직 가뭄이 해갈될 정도는 아니지만 간밤에 내린 비 덕분에 강릉 시민들의 식수원인 오봉저수지의

[주말날씨] 전국 이틀간 '세찬 비'...강릉에도 '가뭄에 단비'

이번 주말에는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강릉에 많은 비가 내린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 비는 중국에서 형성된 비구름대가 우리나라로 진입하면서

"환경장관 약속 못믿어"...세종보 천막농성 철회 안한다

4대강 보 철거를 요구하며 금강 세종보에서 500일간 농성했던 환경단체들이 농성을 중단하기로 했다가 이를 철회했다.11일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직접

화석연료 기업들 내뿜는 탄소...치명적인 폭염을 낳았다

엑손모빌 등 석유 대기업들의 탄소배출량이 2000년 이후 전세계에서 발생했던 수십건의 폭염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강릉 식수원 고갈 일보직전 '비소식'...이틀간 20~60㎜ 내린다

강릉 시민들의 식수원으로 쓰이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11일 오전 8시 기준 11.8%까지 낮아진 가운데 토요일인 13일 동해안에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다.

1.5℃ 임계점 넘었나?...전세계 산호 84% 하얗게 변했다

전세계 바다의 산호초 84%가 해양폭염으로 백화 현상을 겪는 등 최근 해양생태계가 전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지난 2일 발표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