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을 외쳤던 세계 주요 은행들이 개발도상국의 화석연료 산업에 수조달러씩 쏟아붓고 있다.
최근 반-빈곤 국제단체 액션에이드(ActionAid)가 국제무역 컨설팅회사 프로푼도(Profundo)와 공동작성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2022년까지 세계 주요 은행들이 화석연료 산업에 약 3조2000억달러를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금은 대부분 개발도상국의 화석연료 사업에 투입됐다. 보고서는 "개발도상국은 기후위기 최전선에 있는 경우가 많지만 기후행동계획을 수립할 자원이 부족하다"며 "따라서 개발도상국은 탈탄소화와 온난화 대응을 위해 수조달러의 원조가 필요한데 금융회사들은 이런 국가들이 반대 방향으로 나가도록 돕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미와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에게 화석연료를 탐사하고 채굴하도록 자금을 지원한 곳은 중국공상은행을 비롯해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 체이스 등이다. 이 주요 은행들은 아람코(Aramco)와 엑손(Exxon)같은 글로벌 거대 석유기업들을 통해 자금을 제공했다.
이 은행들은 화석연료뿐만 아니라 대규모 산업화 농업에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HSBC은행과 미국 은행들은 ADM, 카길(Cargill), 켐차이나(ChemChina) 등 거대 농업기업에 최소 3700억달러를 대출해주거나 보증해줬다.
문제는 이들이 자금을 지워한 산업화 농업은 환경오염의 온산이라는 점이다. 화학비료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오염, 축산으로 인한 메탄 배출, 녹지 개간 등 수많은 환경오염을 야기하고 있다. 산업 농업은 두번째로 지구온난화에 기여한다. 액션에이드 기후정의 담당 테레사 앤더슨(Teresa Anderson) 이사는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에 대한 금융권의 그린워싱을 잘 보여준다"며 "은행들은 종종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지만, 화석연료와 산업 농업에 대한 지속적인 자금조달 규모는 놀라울 정도다"고 비판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이 은행들은 앞다퉈 기후공약을 발표했다. 시티은행은 지난해 에너지금융에 대한 배출량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2025년까지 농업 대출에 대해서도 비슷한 목표를 설정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HSBC은행도 지난해 12월에 에너지 금융정책을 갱신했다.
당시 지나 바틀렛(Gina Bartlett) HSBC은행 대변인은 "이번 에너지 정책은 HSBC가 더이상 새로운 유전 및 가스전 또는 환경적으로 중요한 지역의 무분별한 개발을 위해 새로운 금융 또는 자문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며 "HSBC는 산림 벌채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나아가 산림 벌채에 관련된 고객을 대상으로 한 금융서비스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이 그동안 발표했던 기후공약들은 모두가 공수표였다는 것이 이번 보고서를 통해 들통났다.
게다가 선진국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개발도상국에 원조한 금액보다 이 은행들이 투자한 금액이 훨씬 많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실제로 2016년~2022년까지 세계 주요 은행들은 화석연료와 산업 농업에 연평균 5130억달러씩 투자했다. 반면 선진국들은 매년 평균 222억5000만달러씩 개발도상국에 원조했다. 보고서는 "전세계 선진국들이 배출량을 줄이고 기후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도상국에 지원한 금액은 턱없이 작다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녹색투자 연구단체 오일 체인지 인터내셔널(Oil Change International)의 론 스톡맨(Lorne Stockman) 선임연구원은 "이 보고서는 아주 중요하다"며 "많은 화석연료 프로젝트는 금융기관 지원없이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근본적으로 투자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투자 및 개발에 대한 논의는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보고서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세계 각국 정부의 재생에너지, 저탄소 재생농업, 빈곤국의 기후적응 계획에 대한 공공보조금 확대, 오염 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줄이기 위한 금융부문 규제강화'를 제시했다. 니란잘리 아메라싱헤(Niranjali Amerasinghe) 액션에이드 전무는 "은행들은 기후파괴에 대한 자금 지원을 즉각 중단하고, 각국 정부는 신속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자금을 제공할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정책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 바사브 센(Basav Sen) 기후정책 이사는 "부유국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는지를 계산할 때 이러한 왜곡된 금융흐름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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