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원의 ESG 인사이드] 美캘리포니아 '기후공시 3법'의 위력

뉴스트리 / 기사승인 : 2025-11-12 08: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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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언스플래시)

최근 글로벌 ESG 공시 지형이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후공시 규칙이 무력화됐고, 유럽연합(EU) 역시 옴니버스 패키지 제안을 통해 공시 수준 완화의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ESG 공시의 큰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하고 있다.

이미 2025년 상반기에 EU 선도기업 700여곳이 ESRS(유럽지속가능성보고기준) 기반으로 2024년 회계연도 지속가능성보고서 의무 공시를 완료했다. 또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기준은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37개국이 도입을 완료했거나 향후 1~2년 내 도입을 앞두고 있어서 글로벌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의 기준선으로서의 위상을 갖춰가고 있다. ESRS와 ISSB을 중심으로 한 ESG의 재무공시, 의무공시, 통합공시라는 거대한 흐름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새 정부 역시 그동안 지연돼온 ESG 공시 의무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복잡한 흐름 속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미국 캘리포니아주(州)가 2023년과 그 이후 제정·발효한 '기후공시 3법'이다. 글로벌 공시 메가트렌드가 유럽 중심으로 진행중인 가운데, 미국에서 주(州) 단위로 이러한 강제 공시체계를 도입했다는 것은 한국기업 등 글로벌 진출기업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캘리포니아는 연방정부의 움직임과 관계없이 세계 5위권 경제 규모를 바탕으로 사실상의 '표준'을 만들어내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최근 3개의 법(SB 253, SB 261, AB 1305)을 통해 기업의 기후관련 정보 공개를 전방위적으로 의무화했다.

첫번째 법은 '기후기업 데이터 책임법'(CCDAA-SB 253)이다. 스코프(Scope) 1, 2, 3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는 이 법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사업을 영위하며 연매출 10억달러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공시는 GHG 프로토콜 등 국제기준을 따라야 하며, 당장 2026년(FY2025)부터 스코프 1, 2 보고를 해야 한다. 2027년부터는 스코프3 보고를 해야 한다. 이 법의 특징은 강력한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스코프1, 2는 2026년부터 제한적 검증, 2030년부터 합리적 검증을 요구하며(스코프3는 추후 요건 결정), 미보고시 최대 50만달러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두번째 법은 '기후관련 재무위험법'(CRFRA-SB 261)이다. 이 법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사업을 영위하며 연매출 5억달러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 기업은 기후관련 재무위험(물리적 위험 및 전환 위험)과 이에 대한 대응조치(감축·적응)를 TCFD 권고안이나 ISSB 기준(IFRS S2) 등 고도화된 요건에 따라 공시해야 한다. 2026년 1월 1일까지 첫 보고를 시작으로 2년마다 보고해야 한다. 보고 시한이 사실상 올해말까지이기 때문에 대상 기업들은 공시를 서둘러야 한다. 준비가 덜된 경우 불완전 보고, 즉 모든 요구사항 충족 못할 시, 최선을 다해 공시하고 누락 사유 및 향후 보완 계획 설명이 필요하다. 미준수시 연간 최대 5만달러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세번째 법은 '자발적 탄소시장 공시법'(VCMDA-AB 1305)이다. 이 법은 캘리포니아주에서 탄소배출권을 판매 또는 구매하거나 '넷제로' '탄소중립' 등 기후관련 주장을 하는 기업에 공시 의무가 부과된다. 이는 자발적 탄소시장(VCM)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법으로, 상쇄(Offset) 프로젝트의 상세 정보(위치, 프로토콜, 감축량 등) 공시를 요구한다. 또한 캘리포니아주에서 '넷제로' 또는 '탄소중립' 주장을 하는 경우, 그 산정 근거와 제3자 검증 여부 등을 2025년 1월 1일까지 웹사이트에 공개해야 한다. 이는 '그린워싱'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법으로, 위반시 일일 최대 2500달러, 최대 누계 50만달러까지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이 3가지 법률을 가리켜 '캘리포니아 기후공시 패키지'(Climate Disclosure Package)라고 부른다. 캘리포니아주 내에서 사업을 영위하거나, 본사가 캘리포니아에 위치해 있거나, 캘리포니아 소비자·투자자와 거래 관계가 있는 기업들은 이 법률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캘리포니아주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과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 3가지 관점이 중요하다.

우선 첫째는 글로벌 공시 레벨업 신호로 봐야 한다. 유럽 중심으로 ESG 공시체계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연방 차원에서는 아직 이에 상응하는 의무공시 체계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상태다. 이 상황에서 캘리포니아주가 주(州) 차원에서 강제 공시체계를 도입했다는 것은 '미국 안에서도 공시 강화를 향한 물꼬가 터졌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 유럽뿐 아니라 미국 시장·공급망 등 글로벌 생태계에서 요구될 수 있는 공시 요건을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둘째 강력한 파급력이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 최대 경제규모의 주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거대한 시장이다. 캘리포니아의 기준은 사실상 미국의 표준, 나아가 글로벌 표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법안들은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기업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을 영위하는(doing business in)'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이는 캘리포니아에 물건을 수출하거나 현지법인을 둔 수많은 한국 기업이 실제적·잠재적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도미노 효과'다. 이미 뉴욕주, 일리노이주, 워싱턴주 등 다른 주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발의되고 있고, 이는 그 외의 주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캘리포니아의 입법은 미국 전역의 'ESG 공시 평준화'를 가속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캘리포니아는 가장 민감한 영역인 스코프3 배출량과 TCFD 기반의 재무 위험공시를 법제화했다. 이는 지금은 무력화된 연방정부의 최종 규칙보다 훨씬 강력한 수준이며, 향후 정치 지형 변화에 따라 다시 가동될 가능성이 있는 연방정부의 최종 규칙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캘리포니아 3법은 더 이상 ESG 공시, 특히 기후 공시를 미룰 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캘리포니아주 기후공시 3법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이 고려해야 할 주요 준비 항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적용대상 여부를 신속하게 파악해야 한다. 우리 기업이 캘리포니아주 매출기준(10억달러 또는 5억달러) 및 '사업 영위' 기준에 해당하는지 내부 법무팀이나 외부 전문가와 함께 검토해야 한다. 또 캘리포니아주에서 '넷제로' 등 기후 관련 마케팅을 하고 있다면 이미 금년 초부터 VCMDA(1305) 적용 대상이다.

또 스코프1·2·3 배출량 측정 및 검증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스코프1·2 배출량은 대체로 내부 데이터로 산출 가능하지만 스코프3는 공급망·사용 후 배출까지 포함되므로 데이터 수집 범위가 넓다. CCDAA(SB 253)가 스코프3까지 요구하고 있으므로 선제적 준비가 필요하다. 즉, 데이터 수집체계 구축, 내부 거버넌스(책임부서 지정 등), 외부 검증(신뢰성 확보) 등을 고려해야 한다.

기후관련 재무위험(물리적/전환 위험) 평가 및 공시도 필요하다. CRFRA(SB 261)는 기후위험을 TCFD나 ISSB 기준에 맞춰 보고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기후시나리오 분석을 바탕으로 물리적 위험과 전환 위험을 식별하고, 이를 재무제표에 연계하며, 실제 감축 및 적응 조치를 이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업의 전략과 리스크 관리체계 내에 기후관련 시나리오 분석, 리스크 매핑 등을 포함시켜야 하며, 공시 보고서 및 웹사이트 공개 요건이 있으므로 적절한 공시 체계 디자인이 필요하다.

아울러 '그린워싱' 리스크에 대해서도 점검해야 한다. VCMDA(AB 1305)는 '주장'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따라서 자사의 '탄소중립' 선언이나 사용 중인 탄소배출권(Offset)이 명확한 근거와 데이터를 갖추고 있는지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ESG 공시 환경은 여러 변수 속에서도 '더 투명하게, 더 정확하게, 더 통합적으로'라는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3법은 그 흐름이 얼마나 강력하고 구체적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강행 규범((Mandatory Regulation)의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기업들은 '캘리포니아주 사업·거래관계 진단'을 실시해 적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공시·데이터·거버넌스 인프라 구축은 물론, ESRS/ISSB 대응 공시 및 전략 컨버전과 연계한 공시 체계의 글로벌 일관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기후공시 대응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리스크 관리'와 '경쟁력'의 척도가 됐다. 기후위험과 기회를 재무적 의사결정에 통합하는 것은 이제 규제 대응을 넘어 기업가치 창출의 핵심 전략이다. 캘리포니아 3법은 ESG 공시의 미래가 '의무'인 동시에 '경쟁력'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다.



글/ 손기원

대주회계법인 부대표 / ESG TF 리더
공인회계사·철학박사 / kiwon.son@kr.g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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