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도서국 제안...미국은 지지국서 빠져
기후위기 대응에 관한 국가의 책임을 국제법적으로 명시하도록 하는 유엔결의안이 채택됐다.
29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기후위기 직격탄을 맞고 있는 오세아니아의 섬나라 바누아투를 필두로 한 결의안이 120여개국의 지지를 받아 채택됐다. 결의안은 각국의 기후위기 대응 의무와 무대응시 처벌규정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ICJ)의 법률의견을 묻도록 하고 있다.
ICJ는 결의안에 따라 "온실가스의 인위적 배출로부터 기후변화와 다른 환경분야를 보호하기 위해 각 나라가 국제법에 따라 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 등을 규정하게 된다. 결의안은 또 선진국들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2020년까지 해마다 1000억달러(약 130조원)의 기금을 내놓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성실한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이번 결의안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바누아투의 법과대학생들이다. 바누아투는 기후위기로 인해 국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지난달 2개의 4등급 허리케인이 72시간 터울로 바누아투를 강타하면서 식수와 전력 공급이 수일간 끊어졌다. 4등급 허리케인의 풍속은 시속 209~251km에 달한다.
바누아투 법과대학생들은 지난 4년간 선진국들이 유발한 기후위기 책임에 대해 ICJ의 법률 의견을 요구해왔고, 이같은 움직임은 바누아투와 마찬가지로 수몰 위기에 처한 18개국 태평양 도서국가들의 청년연합으로 확대됐다.
ICJ의 법률 의견은 실질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명목상 모든 유엔회원국의 최고 법원인만큼 상당한 법적·도덕적 비중을 차지해 각국 법원이 판결에서 고려하기 때문에 기후소송에 있어 법적인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특히 최근 급증하는 기후위기 관련 소송에서 유력한 판단기준이나 증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현재 기후위기 관련으로 제소된 소송은 전세계적으로 2000건이 넘는다. 환경법 전문가인 마이클 제라드 컬럼비아 로스쿨 교수는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은 기후변화 관련 재판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ICJ의 권고는 막대한 영향력을 가졌고, 유엔 총회와 유엔 회원국들로 하여금 더 강력하고 과감한 기후행동에 나서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미국은 결의안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날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이날 멕시코만에서 7300만에이커(약 30만㎢) 규모의 해상 석유·가스 시추 경매를 시작했고, 지난 13일에는 대선 공약을 파기하고 알래스카 국립석유보호구역(NPR)에 대한 대규모 유전 개발 사업인 '윌로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미국은 "국제사법체제가 아니라 외교가 기후변화 대응에 효과적이라고 믿는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기후위기는 사람, 문화, 국가, 세대간 협력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기후부정의를 계속해서 악화시키면 분열을 낳고 기후행동을 마비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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