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않는 출산만 줄여도...전세계 탄소발자국 크게 감축"

김나윤 기자 / 기사승인 : 2022-07-22 17:05:37
  • -
  • +
  • 인쇄
IPCC 보고서, 피임 등 가족계획 언급회피
'원치않는 임신' 매년 전세계 1억2100만건


피임을 통한 원치않는 임신 및 출산방지가 기후변화 해결안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관점이 제기됐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비영리 성건강연구단체 구트마허연구소(Guttmacher Institute)는 원치않은 임신 및 출산에 따른 탄소배출량이 기후변화 문제에서 간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에 따르면 매년 전세계 임신 중 1억2100만건이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며 모든 출생의 약 10%가 성폭행 등 강압적으로 이뤄진 원치않는 임신이다. 원치않는 임신은 피임에 대한 접근성 부족, 비용, 피임실패, 성폭행 및 폭력, 강제결혼, 종교적 반대, 임신중절금지법, 성교육 부재, 화학피임 부작용에 대한 우려 등 무수한 원인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원치않는 출산만 방지해도 인권과 자유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인구를 줄이고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피임과 임신중절(낙태) 접근성을 확대해 원치않는 출산을 방지하면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확대하는 동시에 출생률을 크게 줄여 장기적으로 인간의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80억명에 이르는 전세계 인구 가운데 10%가 감소할 경우 연간 36억톤의 탄소가 감축된다. 이는 독일, 일본, 브라질, 터키, 멕시코 그리고 호주의 총 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양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및 해결책을 평가하는 세계 최고의 연구단체인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조차 이 문제는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다.

IPCC는 1992년 '기후변화에 관한 기본협약(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에서부터 최근까지 나온 일련의 보고서에서 피임, 임신중절 또는 가족계획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IPCC가 최근 발표한 '영향·적응·취약성(Impacts, Adaptation and Vulnerability)' 보고서에는 피임이나 임신중절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여성과 자녀의 건강과 안녕을 증진하는 맥락에서만 '생식건강 및 가족계획'을 언급하고 있다.

자발적 가족계획은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UN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서 '성 및 생식 의료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국가전략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1월 열린 글래스고 기후회담(COP26)에서도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이 회담에서 나온 300개 이상의 유엔 보도자료 중 피임이나 가족계획 관련 표제는 단 1개도 없었다.

유엔, 세계보건기구, 게이츠재단, 미국 국제개발처 등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기관 중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임신방지가 기후에 미치는 이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유엔 경제사회부의 2019년 '데이터 소책자'(Data Booklet) 또한 '여성과 소녀의 권한부여'를 강조하지만 원치않는 임신 방지에 따른 기후혜택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금기는 역사적 맥락에 따른 것이다. 나치는 인종에 기반해 인구를 통제했으며 아메리카에서도 우생학자들이 우생학을 강하게 밀어붙여 우월하다고 판단되는 특정 인종의 번식과 열등하다고 판단되는 인종의 불임을 추진했다. 당시 미국의 30여개 주에서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강제로 불임시키는 법을 통과시켰다.

우생학 운동이 붕괴한 후에도 빈곤지역을 중심으로 국가적 차원의 출산율 제한이 이뤄졌다. 그 결과 인구통제에 대한 인식이 추락했다. 글로벌 정책기구의 초점은 인구통제에서 생식 건강으로 옮겨갔고 양성평등, 교육, 여성의 권리에 중점을 두었다. 가족계획 부문 글로벌 기금은 그 이후로 감소해왔다.

피임이 간과된 또다른 이유로는 피임 및 임신중절기술을 탄소를 감축할 기술로써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 IPCC는 대기 중 탄소가 인간의 건강과 복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인간의 생식기술 및 그에 따른 생식자유가 총 탄소배출량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하고 있다.

가령 IPCC의 특별조사위원회보고서III(Working Group III)에서는 수백 가지의 기후변화 완화방안이 상세히 기술돼 있지만 이 중 어느 것도 생식의 자유 확대를 통한 기후이익 산출 방안에 대해 탐구하지 않았다. IPCC가 2021년 발표한 특별조사위원회보고서I(Working Group I) 또한 기후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을 고려하면서 인간의 생식행동은 완전히 무시한다. 보고서에는 '인간의 영향'이 435회 언급되지만 생식 및 피임, 임신중절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인구는 총 배출량의 동인으로 취급되지만 '기후변화를 제한할 방안'으로는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인구는 원인없는 부동의 배출원인으로 취급되는 셈이다.

또 다른 장벽은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피임과 임신중절을 제한하거나 금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여성의 37%만 임신중절이 가능한 나라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약 92%의 여성이 임신중절이 제한된 법률 아래 살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그 비율이 97%에 가깝다. 이러한 대부분의 임신중절 규제는 과거 유럽 국가들에 의해 강요된 식민지 시대의 잔재다.

국가소득별 신생아의 탄소발자국도 다르다. 세계은행(the World Bank)에 따르면 고소득국가 거주자는 연간 평균 10톤의 탄소를 배출하는 반면 저소득국가 거주민은 평균 0.2톤의 탄소만을 배출한다. 이는 고소득국가의 피임이 빈곤국에서의 피임보다 탄소감축량이 더 크다는 의미다. 부룬디, 에티오피아, 파푸아뉴기니의 총 인구는 미국과 거의 동일하지만 전세계 탄소 배출량의 15%를 차지하는 미국에 비해 이들은 총 배출량의 약 1%만을 배출한다. 한 연구는 영국 신생아가 방글라데시 신생아보다 35배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분석했다.

고소득국가 사이에서도 피임 및 임신중절 접근성에 차이가 난다. 가령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피임이 일반적인 보건서비스의 일부이며 임신중절도 쉽게 가능하다. 반면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피임 비용이 많이 들고 임신중절이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미국과 같이 1인당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높은 국가에서 생식 의료서비스 요구를 충족시키면 가족계획 및 기후완화에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원치않는 임신 및 출산 방지가 탈탄소화의 완전한 대안이나 대체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화석연료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감축이며 다른 모든 정책은 이 목표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탈탄소화가 이뤄지기까지 보다 효과적인 해결안을 인식하고 모두가 함께 돕는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생식 기술 부문을 포함해 기후완화에 대해 더욱 폭넓게 생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족계획이 기후변화 해결에 도움이 되도록 확대될 필요가 있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KT 새 대표이사 후보군 33명...본격 심사 착수

KT의 대표이사 후보 공개모집이 마감되면서 차기 대표이사 후보군이 33명으로 확정됐다.KT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4∼16일 진행한 대표이사 후보

전북도, 다회용기 민간사업자 모집

전북특별자치도가 '2026 다회용기 사용 촉진 지원사업'을 수행할 민간 사업자를 오는 12월 24일까지 모집한다고 18일 밝혔다.이는 자원 순환을 목표로 도

삼성중공업, 선박 폐열회수 발전시스템 해상실증 나선다

삼성중공업이 선박 폐열회수 발전시스템 해상실증 나선다.삼성중공업은 독자 개발한 '유기랭킨사이클(ORC:Organic Rankine Cycle) 기반 폐열회수 발전시스템(

쿠팡 '못난이 채소' 새벽배송 3년...직매입 물량 8000톤 돌파

쿠팡은 최근 3년간 전국 농가에서 직매입해 새벽배송으로 선보인 '못난이 채소' 누적 규모가 8000톤을 돌파했다고 18일 밝혔다. 쿠팡은 지난 2023년부터

[ESG;스코어] 韓 해운사 탄소효율…벌크선사 팬오션이 '꼴찌'

팬오션, 현대글로비스가 우리나라 해운사 가운데 '탄소집약도지수'(CII) 위험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현대LNG와 코리아LNG, KSS해운은 CII 위

카카오 '장시간 노동' 의혹...노동부, 근로감독 착수

카카오가 최근 불거진 장시간 노동 문제를 두고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을 받게 됐다.고용노동부 관할지청인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은 이달초

기후/환경

+

한국 '탈석탄동맹' PPCA 합류...호주 에너지전환까지 촉진?

한국이 '국제탈석탄동맹(PPCA:Powering Past Coal Alliance)'에 가입함으로써 호주의 화석연료 산업을 쪼그러뜨리고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분석이

전기차 충전시설, 28일부터 지자체 신고·책임보험 의무화

이달 28일부터 건축물 주차장에 전기자동차 충전시설을 설치하려면 지자체에 신고하고 책임보험도 가입해야 한다.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같은 내용을

[COP30] 교황의 묵직한 경고..."기후위기 대응, 더는 미룰 수 없다"

교황 레오 14세가 세계를 향해 "기후위기 대응을 즉각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묵직한 경고를 날렸다.교황 레오 14세는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는 제30차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앞으로 '1000년' 이어진다

탄소중립을 달성해도 산업화 이후 오른 지구의 평균기온이 최소 1000년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17일(현지시간) 21세기 호주 연방산업연구기구(CSIRO)

[COP30] "이건 생존이다!"…기후 취약국들 COP30에서 '절규'

기후취약국들이 "기후위기는 생존 문제"라며 선진국의 실질적 감축과 재정지원 확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17일(현지시간)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

지역마다 제각각 풍력·태양광 '이격거리'...기후부, 규제 합리화 추진

지역마다 제각각인 태양광과 풍력의 이격거리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규제 합리화를 추진한다.기후에너지환경부는 서울 영등포구 한국에너지공단 서울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