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않는 임신' 매년 전세계 1억2100만건
피임을 통한 원치않는 임신 및 출산방지가 기후변화 해결안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관점이 제기됐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비영리 성건강연구단체 구트마허연구소(Guttmacher Institute)는 원치않은 임신 및 출산에 따른 탄소배출량이 기후변화 문제에서 간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에 따르면 매년 전세계 임신 중 1억2100만건이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며 모든 출생의 약 10%가 성폭행 등 강압적으로 이뤄진 원치않는 임신이다. 원치않는 임신은 피임에 대한 접근성 부족, 비용, 피임실패, 성폭행 및 폭력, 강제결혼, 종교적 반대, 임신중절금지법, 성교육 부재, 화학피임 부작용에 대한 우려 등 무수한 원인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원치않는 출산만 방지해도 인권과 자유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인구를 줄이고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피임과 임신중절(낙태) 접근성을 확대해 원치않는 출산을 방지하면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확대하는 동시에 출생률을 크게 줄여 장기적으로 인간의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80억명에 이르는 전세계 인구 가운데 10%가 감소할 경우 연간 36억톤의 탄소가 감축된다. 이는 독일, 일본, 브라질, 터키, 멕시코 그리고 호주의 총 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양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및 해결책을 평가하는 세계 최고의 연구단체인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조차 이 문제는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다.
IPCC는 1992년 '기후변화에 관한 기본협약(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에서부터 최근까지 나온 일련의 보고서에서 피임, 임신중절 또는 가족계획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IPCC가 최근 발표한 '영향·적응·취약성(Impacts, Adaptation and Vulnerability)' 보고서에는 피임이나 임신중절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여성과 자녀의 건강과 안녕을 증진하는 맥락에서만 '생식건강 및 가족계획'을 언급하고 있다.
자발적 가족계획은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UN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서 '성 및 생식 의료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국가전략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1월 열린 글래스고 기후회담(COP26)에서도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이 회담에서 나온 300개 이상의 유엔 보도자료 중 피임이나 가족계획 관련 표제는 단 1개도 없었다.
유엔, 세계보건기구, 게이츠재단, 미국 국제개발처 등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기관 중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임신방지가 기후에 미치는 이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유엔 경제사회부의 2019년 '데이터 소책자'(Data Booklet) 또한 '여성과 소녀의 권한부여'를 강조하지만 원치않는 임신 방지에 따른 기후혜택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금기는 역사적 맥락에 따른 것이다. 나치는 인종에 기반해 인구를 통제했으며 아메리카에서도 우생학자들이 우생학을 강하게 밀어붙여 우월하다고 판단되는 특정 인종의 번식과 열등하다고 판단되는 인종의 불임을 추진했다. 당시 미국의 30여개 주에서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강제로 불임시키는 법을 통과시켰다.
우생학 운동이 붕괴한 후에도 빈곤지역을 중심으로 국가적 차원의 출산율 제한이 이뤄졌다. 그 결과 인구통제에 대한 인식이 추락했다. 글로벌 정책기구의 초점은 인구통제에서 생식 건강으로 옮겨갔고 양성평등, 교육, 여성의 권리에 중점을 두었다. 가족계획 부문 글로벌 기금은 그 이후로 감소해왔다.
피임이 간과된 또다른 이유로는 피임 및 임신중절기술을 탄소를 감축할 기술로써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 IPCC는 대기 중 탄소가 인간의 건강과 복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인간의 생식기술 및 그에 따른 생식자유가 총 탄소배출량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하고 있다.
가령 IPCC의 특별조사위원회보고서III(Working Group III)에서는 수백 가지의 기후변화 완화방안이 상세히 기술돼 있지만 이 중 어느 것도 생식의 자유 확대를 통한 기후이익 산출 방안에 대해 탐구하지 않았다. IPCC가 2021년 발표한 특별조사위원회보고서I(Working Group I) 또한 기후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을 고려하면서 인간의 생식행동은 완전히 무시한다. 보고서에는 '인간의 영향'이 435회 언급되지만 생식 및 피임, 임신중절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인구는 총 배출량의 동인으로 취급되지만 '기후변화를 제한할 방안'으로는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인구는 원인없는 부동의 배출원인으로 취급되는 셈이다.
또 다른 장벽은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피임과 임신중절을 제한하거나 금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여성의 37%만 임신중절이 가능한 나라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약 92%의 여성이 임신중절이 제한된 법률 아래 살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그 비율이 97%에 가깝다. 이러한 대부분의 임신중절 규제는 과거 유럽 국가들에 의해 강요된 식민지 시대의 잔재다.
국가소득별 신생아의 탄소발자국도 다르다. 세계은행(the World Bank)에 따르면 고소득국가 거주자는 연간 평균 10톤의 탄소를 배출하는 반면 저소득국가 거주민은 평균 0.2톤의 탄소만을 배출한다. 이는 고소득국가의 피임이 빈곤국에서의 피임보다 탄소감축량이 더 크다는 의미다. 부룬디, 에티오피아, 파푸아뉴기니의 총 인구는 미국과 거의 동일하지만 전세계 탄소 배출량의 15%를 차지하는 미국에 비해 이들은 총 배출량의 약 1%만을 배출한다. 한 연구는 영국 신생아가 방글라데시 신생아보다 35배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분석했다.
고소득국가 사이에서도 피임 및 임신중절 접근성에 차이가 난다. 가령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피임이 일반적인 보건서비스의 일부이며 임신중절도 쉽게 가능하다. 반면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피임 비용이 많이 들고 임신중절이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미국과 같이 1인당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높은 국가에서 생식 의료서비스 요구를 충족시키면 가족계획 및 기후완화에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원치않는 임신 및 출산 방지가 탈탄소화의 완전한 대안이나 대체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화석연료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감축이며 다른 모든 정책은 이 목표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탈탄소화가 이뤄지기까지 보다 효과적인 해결안을 인식하고 모두가 함께 돕는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생식 기술 부문을 포함해 기후완화에 대해 더욱 폭넓게 생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족계획이 기후변화 해결에 도움이 되도록 확대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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