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과 플라스틱 베이커리, 폐 병뚜껑 재활용
전세계가 플라스틱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배출한 플라스틱 쓰레기는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88kg이다. 이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어디로 갈까? 이 가운데 재활용되는 비중은 10% 남짓이다. 대부분의 플라스틱 쓰레기는 매립되거나 소각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플라스틱에서 비롯된 미세플라스틱 오염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청정지역인 알프스에서부터 심해에 이르기까지 지구 곳곳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고, 심지어 사람의 혈액과 폐속에서도 검출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인 유럽에서는 플라스틱 생산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99%가 화석연료로 만드는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재활용 비중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이에 국내에서도 리사이클과 업사이클 분야가 새로운 추세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뉴스트리는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쓰는 업사이클 기업을 직접 방문해봤다.
◇ 라디오비: 인테리어 자재로 재탄생하는 폐플라스틱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라디오비'는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콘크리트와 섞어 벤치와 화분, 스툴 등을 만들고 있다.
이 회사의 심준보 대표는 "미세먼지 저감버스 정류장 등 친환경관련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우연히 뉴스에서 국내 폐플라스틱 처리가 어렵다는 보도를 접하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라디오비를 창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실제로 본 라디오비의 업사이클 제품들은 폐플라스틱을 섞어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독특하고 예쁜 것들이 많았다. 심 대표는 "폐플라스틱으로 업사이클 제품을 디자인할 때 가장 먼저 고려했던 것이 오래 사용할 수 있고 실용적인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그러다보니 실용성과 디자인을 갖춘 벤치와 스툴, 화분 등을 만들게 됐다는 것이다.
라디오비가 제작한 벤치는 기본 재료인 콘크리트에 잘게 조각낸 폐플라스틱을 섞어 만든 것이 특징이다. 벤치에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조각들이 박혀있다. 심 대표는 "벤치에는 폐플라스틱이 약 20% 함유돼 있다"며 "3인용 벤치 무게는 약 150kg인데 폐플라스틱의 양은 30kg"이라고 설명했다. 2리터짜리 페트병을 600개 합친 무게다.
지난해 라디오비는 초등학교와 손잡고 벤치제작 활동도 했다. 심 대표는 "초등학생들 모은 폐플라스틱으로 벤치를 만들어 그 학교에 설치했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에게 재활용의 중요성을 인식시키주기 위한 교육활동이다. 실제로 어린이들은 자신이 모은 폐플라스틱이 벤치로 재탄생한 것을 보고 몹시 흥미를 느꼈다고 했다. 심 대표는 "직접 체험하면서 폐플라스틱에 대해서 배우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들과 협업한 사례도 있다. 심 대표는 "지난해 울산시 우가 어촌마을에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벤치와 조형물 등으로 쉼터를 조성했는데 이 과정에서 울산시민 720여명이 참여해 폐플라스틱 수거작업을 함께 했다"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많은 시민들이 버려지는 플라스틱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됐다"며 뿌듯해 했다.
라디오비는 최근들어 큰 화분과 스톨 등을 제작해 백화점에 납품하는가 하면, 화장품 브랜드 록시땅과 손잡고 매장에서 배출되는 플라스틱 화장품 용기로 인테리어용 자재를 만들어 제공하기도 했다. 록시땅 코엑스점과 하남점이 라디오비가 제작한 업사이클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라디오비는 제작한 업사이클 제품을 다시 재활용하고 있다. 심 대표는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 때 화학적 가공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제품을 분해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다"면서 "분쇄한 콘크리트에 폐플라스틱을 다시 섞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심 대표는 "업사이클을 통해 재활용율을 높이려면 정부가 안전성 기준을 마련해줘야 한다"면서 "라디오비에서 만든 업사이클 벤치의 안전성을 인증받을 수 있는 기준이나 절차가 없다보니 자체적으로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는 형편"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업사이클 제품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명확하게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이렇게 해야 업사이클 시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원점: 업사이클링 체험공간 운영
서울 성동구에 있는 제로웨이스트샵 '원점'은 매장 한편에 플라스틱 재활용을 체험할 수 있는 코너가 있다.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열쇠고리나 휴대폰 케이스, 스툴, 지비즈 등 다양한 제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이정태 원점 대표는 제주도에서 거주하는 3년동안 환경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고,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한 끝에 '원점' 창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제주도에서 스노클링을 할 때 바다 속에 너무 많은 쓰레기가 버려진다는 걸 알게 됐다"며 "그때 처음으로 주운 쓰레기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 문제에 대해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고, 생분해 플라스틱·폐플라스틱 등 플라스틱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표는 "공부하면서 깨달은 점은 생각보다 폐플라스틱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생활속에서 플라스틱 문제를 직접 접할 수 있도록 체험공간을 만들겠다는 결심했다"고 업사이클링에 뛰어든 동기를 설명했다.
이 대표는 "체험을 통해 플라스틱 쓰레기가 어떻게 재활용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며 "뿐만 아니라 재활용 안되는 플라스틱 재질이 무엇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직접 병뚜껑으로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어봤다. 먼저 하얀색 병뚜껑을 분쇄기에 넣고 잘게 조각낸 다음, 원하는 색깔의 플라스틱 조각과 혼합해 25g 용량의 컵에 담았다. 이 컵을 플라스틱을 녹이는 사출기에 넣었다. 10분 정도 기다렸다가 레버를 온힘을 다해 누르니 작은 구멍으로 플라스틱이 치약처럼 흘러나왔다. 이 구멍에 거북이와 돌고래 모양의 금형 틀을 맞추고 녹은 플라스틱을 채웠다. 5초 후 금형틀 뚜껑을 열어보니 여러 색이 섞인 거북이와 돌고래 모양의 열쇠고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 대표는 "열쇠고리 하나 만드는데 병뚜껑 약 20개가 사용된다고 보면 된다"면서 "스툴같은 경우는 700~1000개의 병뚜껑이 사용된다"고 말했다. 병뚜껑 조달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이 대표는 "체험용으로 사용되는 병뚜껑은 물량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넉넉한 편"이라며 "주로 인근 상인들과 주민들이 가져다주신다"고 말했다. 병뚜껑을 가져오면 제로웨이스트 제품으로 교환할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한다.
업사이클링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은 PP랑 PE만 사용한다. 안전성 때문이다. 이 대표는 "PVC같은 플라스틱들은 가공할 때 암을 유발하는 화학물질이 많이 배출된다"며 "PE나 PP는 비스페놀A가 검출되지 않아 환경호르몬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업사이클링 체험시 남는 부산물은 다시 녹여 새로운 업사이클링 제품에 섞을 수 있다.
이 대표는 "플라스틱의 다회용과 일회용 기준은 우리의 소비와 생활방식 문제"라며 "플라스틱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플라스틱 베이커리: 병뚜껑을 굽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플라스틱 베이커리'는 오븐에 빵대신 플라스틱을 굽는다.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주로 오브제를 제작한다. 실제로 밀가루로 베이킹하듯, 와플 기계와 오븐을 이용해 플라스틱 조각을 굽는다. 명함꽂이, 코스터, 그릇, 인센스스틱 홀더 등을 만들 수 있다.
플라스틱 베이커리의 박형호 대표는 처음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지 않았다. 그는 "플라스틱 문제가 이렇게까지 외면받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그러다 병뚜껑으로 오브제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서 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을 점차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제작되는 오브제는 크기에 따라 13~130개의 플라스틱 병뚜껑이 사용된다. 한달 평균 1~2kg의 병뚜껑이 업사이클링된다. 이곳에서 쓰이는 병뚜껑은 환경단체나 중구 재활용센터에서 제공받고 있다.
박 대표는 "이곳에서는 버려지는 플라스틱이 없다"면서 "제작한 오브제는 가장자리를 다듬지 않기 때문에 플라스틱 잔해물이 배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수로 작업을 플라스틱이 타는 경우에는 다시 분쇄해 다른 오브제를 만들 때 첨가하고 있다.
플라스틱 베이커리는 플라스틱 외에 재활용 되지 않는 소재들도 발굴하고 있다. 박 대표는 "왕겨는 연료로 사용되기엔 열 변환율이 낮고 가축 사료로도 쓰이지 않아서 결국은 소각된다"며 "버려지는 왕겨를 자연소재랑 섞어서 인테리어 타일이나 화분 등 생활용 오브제를 만들기 위해 실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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