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규격화하고 사용줄여야 할 때"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거리마다 나부끼던 선거 현수막은 이제 애물단지가 됐다. 대부분 재활용할 수 없는 소재여서 쓰레기로 매립 또는 소각될 처지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 쓰인 현수막은 13만8100개. 무려 9220톤에 이른다. 오는 6월 있을 지방선거에서도 이에 버금가는 폐현수막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폐현수막을 재활용하는 곳이 있다. 2018년 지방선거 현수막 가운데 33.5%인 3093톤이 재활용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재활용하는 곳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녹색발전소'가 대표적이다. 제역할을 다하면 쓰레기가 돼버리는 현수막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시민단체로 출발한 이곳은 수익보다 현수막으로 인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년째 폐현수막 재활용 사업을 하고 있다.
실제로 기자가 직접 찾아가 눈으로 확인한 '녹색발전소'의 창고는 알록달록한 현수막이 천장에 닿을만큼 쌓여있었다. 직원들의 손길도 분주했다. 현수막을 하나씩 꺼내 긴 책상에 펼친뒤 지지대 역할을 하는 나무막대기와 노끈을 분리하는 작업부터 했다. 창고 한켠에는 분리한 나무막대기가 가득했다. 나무막대기와 노끈이 제거된 현수막은 재단실로 옮겨 알맞은 크기로 자르고 재봉질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현수막이 '에코백'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재봉질 몇번에 튼튼한 에코백이 하나씩 만들어지는 것이 신기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에코백은 3000원에 판매한다.
녹색발전소는 폐현수막으로 에코백 외에도 산업용 폐기물 마대, 수방용 및 제설대책용 모래주머니 등을 만들고 있다. 주로 공공기관이나 관공서, 기업 등지에서 주문을 하지만 개인들의 주문도 꽤 있다고. 어떤 공공기관은 폐현수막으로 만든 에코백을 무상으로 나눠주기 위해 주문제작을 의뢰하기도 하고, 어떤 관공서는 우유팩이나 페트병을 담는 용도로 폐현수막으로 만든 마대를 주문하기도 한다. 현수막에 사용된 노끈도 버리지 않고, 다시 녹이고 잘라서 수출한다.
김순철 녹색발전소 대표는 "여기 들어오는 현수막의 90% 이상은 재활용돼 다른 곳에서 재사용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선에 쓰인 현수막도 300개 정도 들어왔다. 김 대표는 "녹색발전소는 서울 종로구에 걸려있던 현수막만 수거했다"면서 "현수막과 지지대까지 해서 대략 2톤 정도 된다"고 말했다.
종로구 한곳만 300개의 현수막이 설치됐으니 전국적으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양의 폐현수막이 이번 대선에서 쏟아진 것이다.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에 따르면 20대 대선에 사용된 현수막은 총 10만5090장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2017년 19대 대선 때 쓰인 현수막은 총 5만2545장으로 집계됐다. 2018년 선거법이 개선되면서 현수막 개제 제한이 읍·면·동 당 1장에서 2장으로 개정됐기 때문에 2배로 증가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도 폐현수막이 매립되거나 소각되는 비중을 낮추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다. 이번 대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 13일, 행정안전부가 폐현수막 재활용 사업을 하는 22곳을 선정해 최대 10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현수막 재활용율은 33.5%에 불과하다. 절반 이상의 현수막들이 쓰임새를 다하면 일반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버려지는 현수막들이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선에 쓰인 현수막 가운데 33.5%만 재활용된다고 보면, 나머지 6만9000여개에 달하는 현수막은 그냥 소각된다고 볼 수 있다. 대략 460톤 정도된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가 현수막 처리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을 여기에 대입하면 20대 대선 폐현수막을 처리하는데 배출되는 온실가스(CO2e)는 607톤에 이른다.
김순철 대표는 "폐현수막을 소각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현수막을 규격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대 대선용 현수막은 폭 1m 20cm, 길이 8m다. 김 대표는 "매우 길고 두꺼워 재사용하려면 특수처리를 해야 해서 불편하다"며 "선거현수막의 재질, 유성·수성 사용여부 등이 통일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수막을 재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저하게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현수막은 옮겨가면서 달 수 있기 때문에 각 동에 1개씩만 걸어도 충분하다"고 했다. 게다가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요즘은 굳이 현수막으로 홍보하는 것보다 스마트폰으로 홍보하는 것이 시대에 더 맞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번 쓰고 버려야만 하는 현수막, 그 효용성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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