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대선후보 환경공약은 중요한 잣대
나는 집에서 분리수거 담당이다. 그러다보니 분리수거의 달인이 돼 가고 있다. 꼼꼼하게 분리 지침을 지키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귀찮고 때로는 곤욕스럽다. 종이 박스에 붙어있는 테이프는 일일이 제거해야 하고, 페트병의 라벨은 꼼꼼히 떼어내야 한다. 간혹 배달음식을 먹고나면, 음식담은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는 세척한 후 플라스틱 수거함에 넣어야 하고, 덮개로 사용된 비닐도 다 떼어내서 버려야 한다. 비닐도 작은 것은 종량제봉투에 버려야 하고, 쓸모있겠다 싶은 비닐을 한번 세척 후 차곡차곡 쌓아서 버려야 하니 일도 이런 일이 없다. 게다가 분리수거 지침은 수시로 바뀐다.
번거롭고 귀찮은 분리수거를 끝내면 간혹 스스로 위안하기도 한다. '지구를 위해 무언가를 실천했다'는. 그런데 이런 의구심도 든다. 우리가 기를 쓰고 하는 분리수거가 과연 지구환경을 깨끗하게 하고 지구온난화를 막는데 도움은 되는 것일까.
재활용품 처리공장의 재생 과정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시민들은 상당한 허탈감을 느낀다.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 양쪽에서 줄지어 선 작업자들이 각종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우리가 애써 분리수거한 재활용품들이 마구 뒤섞여 있고, 작업자들이 이를 다시 분리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헛짓을 한 것인가.
최근들어 환경문제 인식이 높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속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회용 비닐대신 에코백을 사용하고, 일회용컵 대신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 이같은 노력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소비자 실천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건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기업들이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기업들이 영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로 인해 다수가 피해를 입고 있어서다. 국가도 책임을 져야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국가와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으면 지구온난화 속도를 제어하거나 멈추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현재 전세계는 지구의 평균 상승온도를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로 합의도 했다. 많은 기업들도 기후변화로 지구 생태계가 파괴된다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없다는데 공감하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얼마전 대선토론을 계기로 이슈화됐던 'RE100'도 기후변화 대응차원에서 나온 기업들의 글로벌 협약이다. 2050년까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탄소배출이 전혀 없는 재생에너지로 만든 것을 사용하겠다는 협약인 것이다. RE100을 채택한 기업들은 자체 사용전력뿐 아니라 자사와 협력관계에 있는 파트너들까지 탄소중립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RE100은 한두 기업의 실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미줄처럼 얽힌 기업의 가치사슬 전체에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나 아직 상당수의 기업들은 이런 흐름을 외면하고 있다. ESG 흐름에 참여하고 있지만 진정성이나 실천의 강도가 충분하지 않은 곳들도 많다. 겉으로는 친환경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정반대의 행위를 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곳들도 적지않다. ESG경영에 동참하며 사업구조를 친환경으로 전환하는 것은 많은 비용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저 흉내내기에 그치는 것이다. 그래서 이같은 '그린워싱' 행위를 하는 기업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단 기업뿐이랴. '그린워싱'하는 국가들도 많다. 중국과 러시아, 인도 등은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소극적인 국가로 꼽힌다. 지구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내뿜고 있는 나라들인데 탄소중립 정책수립에 가장 미적거리고 있는 나라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화석연료에 의존해 경제성장을 해왔는데 이를 중단하게 되면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아직은 화석연료 에너지가 가장 값싸니까.
대통령선거는 환경문제를 이슈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다행히도 이번 대선에서는 저마다 환경문제에 대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등 환경공약을 즐비하게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여전히 환경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환경이슈를 공약으로 다루지 않으면 선거에서 참패하는 유럽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우리 사회는 민주화와 성평등을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한 적은 있어도 환경문제로 광장에 시민들이 대규모로 모인 적이 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촌의 경제활동이 왕성해지면서 환경문제가 곳곳에서 터졌다. 이를 '대가속(great accelation) 시대'라고 한다. 이 흐름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지구온난화의 눈금은 크게 치솟게 된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이를 막으려면 국가들의 탈성장 정책과 기업의 탄소저감, 지구 시민들의 정치적 실천과 공동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제 시민들이 소소한 생활속 실천을 넘어 대담한 행동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분리수거와 소비자 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구환경과 생태를 위한 노력이 단지 쓰레기와 폐기물 처리수준에서만 머문다면 이는 공허한 제스처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런 행동은 양심의 가책을 조금 덜어줄 수는 있지만 더 중요한 과제를 망각하게 하는 마취효과도 있음을 기억해야 하다.
시민들의 책임만 강조해온 정부와 지자체. 물건만 팔아먹고 책임을 지지 않은 기업들. 이제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시민들의 정치적 행동이 아닐까 한다. 차기 대통령이 지구온난화와 환경 재앙을 국가적 사회적 의제로 설정하고 정책적으로 추진하도록 말이다. 포괄적 정책과 기업의 참여없이는 공회전만 반복될 뿐이다. 이제 시민적 행동과 공공의 정책이라는 두 날개를 다 펼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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