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말모이' 주도했던 한글학자 '이극로'

뉴스트리 / 기사승인 : 2021-11-27 0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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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야기] 한글학자이자 대종교인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살이...한글보급에 앞장
▲ 영화 '말모이'의 한 장면

영화 '말모이'는 194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일제의 감시를 피해 우리 말과 글을 지켜내기 위해 주시경 선생 사망 후 중단된 우리말 사전을 만들어가는 내용이다. 당시는 우리말이 금지된 일제 강점기였다. 영화는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 분)이 중심이 돼 우리 말을 모으는 '말모이' 작업을 진행하는 내용이다. 사실 영화의 주인공 류정환은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고루 이극로' 선생을 실존모델로 했다. 다만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에서 류정환은 부유한 친일파의 아들로 나오지만, 이극로 선생은 가난한 농가의 아들이었다.

이극로 선생은 독립운동에 나서면서 대종교단의 지원으로 독일 유학을 했고, 1923년 유럽 최초로 프리드리히 빌헬름대학(현재는 훔볼트대)에 한국어강좌를 개설한 인물이다. 그는 '나의 이력서 -반생기'에서 밝혔듯이 '고루' '물불' '동정'(東正) 등의 별호가 있다. 이런 호칭들은 그의 됨됨이를 오롯이 보여준다. '물불'은 불굴의 의지와 강한 추진력을 드러내며, '고루'는 세상을 고르게 하고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한글학자 '고루 이극로'
이극로 선생이 주도한 조선어학회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조선어 철자법 통일안)(1933)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 △외래어표기법 통일안(1941) 등 민족어의 3대 규범집을 완성했다. 선생은 나라없는 시기에 독립의 준비물을 만들어둔 것이다. 이 규범집은 해방 후 남북한에서 국어규범집으로 자리잡았다. 1936년 3월부터 조선어사전편찬회로부터 사전편찬의 업무를 인계받은 조선어학회는 이극로 선생을 중심으로 사전편찬을 완수했다. 특히 일제가 일본어로 해설해 간행한 '조선어사전'(1920)보다 약 3배 많은 16만개에 달하는 우리말 어휘를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 위원들이 수집·주해했다.

그러나 사전편찬 작업은 1942년 일제 탄압으로 중단됐다. 이극로 선생은 대종교 활동에도 전념했는데 1942년 6월 10일 '한얼노래'를 발간했다. 사실 조선어학회 사건도 이극로가 대종교 종사 윤세복이 '단군성가'(檀君聖歌) 작곡을 의뢰하는 편지를 받고 '널리 펴는 말'이라는 답장을 보낸 글 때문에 일어났다. 이로 말미암아 1942년 10월 이극로를 비롯해 대종교 간부 20여명이 검거됐다. 이를 '임오교변'과 '조선어학회 사건'이라고 한다.

이극로는 조선어학회 사건의 주모자로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했다. 1945년 광복을 맞아 감옥에서 풀려난 이극로는 한글운동과 병행해 대종교 활동을 했다. 1945년 9월 조선어학회 간사장에 선출된 그는 10월에 '한글노래'를 작성해 한글날 기념식을 거행했다. 1946년 6월에는 이승만의 남조선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건민회를 조직해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또 그는 1947년 '조선말 큰사전'과 '고투 40년'(苦闘 四十年)을 발행했으며, 1948년 3월 한글문화보급회를 조직해 위원장에 취임했다.

1948년 4월 '남북 재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참석차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평양에 갔다가 북한에 잔류했다. 당시 북한에 있던 백연 김두봉은 남측으로 돌아가려는 이극로를 찾아와 북에 남아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보게 고루..남에는 외솔(최현배)도 있고 가람(이병기)도 있네. 여긴 나 혼자일세. 여기 남아 같이 한글을 연구하세" 이렇게 해서 북에 남게된 이극로는 남측 한글학자들과 서신을 교류하며 한글연구를 하게 됐고, 그것이 현재까지 남과 북이 말과 글로 어렵지 않게 소통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됐다. 그러나 고루 선생은 북한에 잔류했다는 이유로 독립투쟁가로서 서훈을 받지 못했다.

고루 이극로 선생은 대종교인으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는 대종교 경의원 참사로 활동하면서 1942년 6월 10일에 대종교의 교가(敎歌)인 '한얼노래'를 펴냈다. 대종교총본사에서 발행했다. 편집인은 이극로, 발행인은 안희제였다. 판권에는 표지와 달리 책이름을 '한얼노래'(神歌)라고 적었다. '한얼노래'는 이극로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될 때 분실됐다가, 광복 이후 어느 민가에서 수백권 발견됐다. 그래서 1969년 발간된 '대종교경전'에 합철됐던 것이다.

아래는 이극로가 1942년 3월 3일 '한얼노래' 창작배경과 구성에 대해 적은 '머릿글'이다.

한얼 노래는 대종교의 정신을 나타내어 믿는 마음을 굳게 하며 사는 기운을 펴게 하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노래다. 이 노래는 원도와 함께 믿는 이에게 큰 힘과 기쁨을 주는 것이다.

한얼 노래는 돌아가신 스승님들이 지으신 것을 본을 받아 새로 스물 일곱장을 더 지어 보태어, 번호를 매지 아니한 얼노래 한 장을 빼고 모두 서른여섯장으로 되었다. 이것으로도 신앙과 수양과 예식에 관한 여러 가지 노래가 다 갖추어 있다. 노래 곡조는 조선의 작곡가로 이름이 높은 여덟 분의 노력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진실로 그 예술의 값은 부르는 이나 듣는 이의 마음의 거문고를 울리어 기쁘고 엄숙하고 원대한 느낌을 준다.
'한얼노래'는 다음과 같다.


한얼 노래(神歌), 한풍류(천악), 세얼(三神歌), 세마루(三宗歌), 개천가(開天歌), 삼신의 거룩함, 어천가(御天歌), 성지태백산(聖地太白山), 중광가(重光歌), 한울집(天宮歌), 한얼님의 도움, 믿음의 즐거움(樂天歌), 죄를 벗음, 가경가(嘉慶歌), 삼신만 믿음, 희생은 발전과 광명, 한길이 열림, 사람 구실, 한결같은 마음, 힘을 부림, 사는 준비, 미리 막음, 대종은 세상의 소금, 사랑과 용서, 교만과 겸손, 봄이 왔네, 가을이 왔네, 아침 노래, 저녁 노래, 끼니 때 노래, 승임식(陞任式) 노래,상호식(上號式) 노래, 영계식(靈戒式) 노래, 조배식(早拜式) 노래, 혼례식(婚禮式) 노래, 영결식(永訣式) 노래, 추도식(追悼式) 노래


이 가운데 '얼노래'는 고구려에서 군가로 쓰였던 신가(神歌) 4장의 고본을 홍암대종사 나철이 창가로 번역했고, <한풍류> <삼신가> <세마루> <어천가> <중광가>는 홍암대종사 나철이 작사했으며, <가경가>는 백포 서일종사, <개천가>는 육당 최남선, <성지 태백산>은 정열모, 나머지 28곡은 이극로가 작사했다.

'한얼노래' 책자에는 작곡가의 이름이 빠져 있다. 이극로가 '머릿말'에서 '노래 곡조는 조선의 작곡가로 이름이 높은 여덟 분의 노력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고 언급했듯이, 이들 노래는 채동선(蔡東鮮, 1901-1953)을 비롯한 7명의 국내 저명 작곡가에게 위탁했던 것이다. 아마도 이 8인의 작곡가들은 평균 4장의 노래에 곡을 붙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극로의 한글 연구와 조선어학회 활동 그리고 그것을 통한 항일독립투쟁의 배경에는 대종교 신앙이라는 정신적 가치가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극로의 나라사랑 정신과 우리말과 글에 대한 애착 그리고 우리 민족의 이상 실현을 위한 포부는 대종교와의 인연에서 비롯됐던 것이다. 결국 이극로의 대종교 관련 행적은 일제강점기와 광복기에 걸친 근대 지식인의 전형으로 설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글/ 민인홍
    법무법인 세종 송무지원실 과장  
    대종교 총본사 청년회장
    민주평통 자문위원(종로구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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