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수립 주춧돌 역할한 '예관 신규식'

뉴스트리 / 기사승인 : 2021-07-31 08:00:03
  • -
  • +
  • 인쇄
[독립운동가 이야기] 생의 마지막 남긴 말 '정부..'
상하이 망명해 순국할 때까지 수많은 업적남겨
예관 신규식(申圭植) 선생은 중국에서 우리 임시정부가 독립투쟁을 계속할 수 있도록 외교적으로 노력한 주역이다. 국력 배양과 민중 계몽 등 자립기반 확충운동을 총체적으로 전개한 인물이기도 하다.

1879년 1월 13일 충북 문의군(현재 청원군)에서 중추원 의관을 역임한 신용우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신규식 선생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신채호'(申采浩), '신백우'(申伯雨)와 함께 '산동삼재'(山東三才)라고 불렸다. 17세 때 신학문에 뜻을 세우고 상경해 관립한어학교를 거쳐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해 무덕(武德)을 쌓게 됐다.

▲예관 신규식 선생
신규식은 한학 등 구학문에 능통하고 문학에도 탁월한 자질을 지녔지만 기울어가는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국력배양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육군참위(參尉)로서 지방군대와 연계, 대일항전을 계획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13도 유생들이 조약 철회를 상소하고, 장지연은 황성신문에 피를 토하듯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 放聲大哭)을 썼다. 민영환과 조병세, 홍만식 등은 자결했다.

신규식 선생도 을사늑약 체결 후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려다 나철에 의해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약 기운이 번진 오른쪽 눈은 시신경을 다쳐 애꾸가 됐다. 거울을 들여다본 신규식은 냉소를 지었다. "애꾸, 그렇다. 이 애꾸눈으로 왜놈들을 흘겨보기로 하자. 어찌 나 한 사람만의 상처이겠는가. 우리 민족의 비극적 상징이다." 이때부터 청년 신규식은 흘겨볼 예(睨)자, 볼 관(觀)자를 써 '예관'(睨觀)으로 자호를 삼아 끝까지 사용했다.

26살의 당시 신규식은 '죽음은 거름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내 한 몸 거름이 되어 무수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훗날 그의 생각은 '치욕을 알면 피로써 죽음을 할 수 있고, 치욕을 씻으려면 피로써 씻어야 한다'라는 투쟁신념으로 바뀌었다. 그의 목숨을 구한 홍암 나철 선생의 영향을 받아서다. 신규식 선생이 대종교에 입교한 것은 당연했다.

이후 선생은 문동학원, 덕남사숙을 설립하고 지원했다. 또 중동(中東)학교장에 취임하는 한편 공업전습소생들을 중심으로 한 '공업연구회'를 조직했다. 월간 '공업계'를 창간하기도 했다. 윤치성, 민대식 등 퇴역장교를 규합해 황성광업(廣業) 주식회사를 설립한데 이어, 분원자기공장도 설립해 고려자기 재현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선생은 1911년 상하이로 망명해 순국할 때까지 약 12년동안 여러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첫째, 당시 세계정세를 능동적으로 이용하면서 독립운동의 2대 조류인 외교중심론과 무장투쟁론이라는 두 가지 운동노선을 접목시켰다. 혁명가적 열정과 선각자적 혜안을 함께 갖춘 선생은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 송교인(宋敎人), 진기미(陳其美), 손문(孫文) 등과 교류하며 중국신해혁명에 외국인으로 참여해 나중에 중국국민당정부와의 항일연계투쟁의 기틀을 마련했다.

1911년 여름 어느 날 선생은 손문과 함께 자리했다.

"예관선생이 우리 동맹회를 도와주신 것은 참으로 장한 일이십니다."
"바로 중국혁명운동이 한국독립에 직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양국 사이는 순치(脣齒)의 관계였습니다만 중국이 우리를 속국시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혁명이념으로 볼 때 과거 우리에게 진 묵은 빚을 청산해주리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듣던 대로 훌륭한 논객이요, 애국자이십니다."
▲신규식 선생이 남긴 저서 '한국혼'

신규식 선생과 손문의 혁명적 동지애는 변함없이 지속됐다. 이 우정을 바탕으로 선생은 손문의 도움을 얻어 많은 우리 젊은이들을 적성에 따라 교육시켰다.

둘째, 3․1독립운동과 상해 임정수립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선생은 1917년 조소앙(趙素昻), 박용만 등 13명의 독립운동가와 함께 선포한 '대동단결선언'을 통한 핀란드 및 폴란드 등 당시 피압박민족의 독립을 열거하며 이는 좋은 징조이므로 우리나라도 통일된 최고기관 즉 정부의 조직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 동제사를 설립해 국내와 일본등에 동지들을 밀파, 2․8독립선언에 영향을 끼쳤다.

1919년 3․1운동이 터졌고 상하이에서 선생은 프랑스 조계 내에 독립임시사무소를 개설, 정부수립을 추진했다. 언론인이며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1명인 오세창은 "3․1운동은 예관에 의해 점화되었다"고 단언했고, 당시 일경(日警) 비밀정보도 "소요를 유발시킨 데에는 상해 거주 불령선인들의 선동에 크게 힘입었다"라고 썼다.

임시정부를 수립하자, 신규식 선생은 그해 5월에 손문 등 중국 광동정부로부터 국가승인을 얻어내는 외교적 성과도 거뒀다. 그러나 정부수립 후 고질적 파벌의식과 출세욕 등이 뒤엉켜 1921년 4월 이후 임정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선생은 병원에 누워 의정원 회의 참석을 거부했다. 4월 10일 소위 '재미파'(在美派) 이승만이 내각수반이 됐다. 이듬해까지 병석에 누운 선생은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한국인들이 단합되지 않는 것을 통탄하면서 25일동안이나 불식(不食), 불언(不言), 불약(不藥)을 고집했다.

1922년 9월 25일. 선생은 마지막 남은 숨을 호흡단절법으로 끊고 이승을 버렸다. '정부… 정부…' 희미한 소리가 숨을 거두는 그의 목에서 새어나왔다. 단식 25일만에 처음 나온 말은 선생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다.

신규식 선생이 남긴 명저(名著) '한국혼'(韓國魂)은 이렇게 시작된다.

'마음이 죽어버린 것보다 더 큰 슬픔이 없고, 망국(亡國)의 원인은 이 마음이 죽은 탓이다.…우리의 마음이 곧 대한의 혼이다. 다 함께 대한의 혼을 보배로 여겨 소멸되지 않게 하여 먼저 각자 자기의 마음을 구해 죽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이 글에 담긴 선생의 철학은 목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소신에 찬 행동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지난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글/ 민인홍
   법무법인 세종 송무지원실 과장  
   대종교 총본사 청년회장
   민주평통 자문위원(종로구협의회)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수자원공사, 재난구호용 식수페트병 '100% 재생원료'로 전환

한국수자원공사(K-water)가 재난구호용으로 지급하는 식수페트병을 100% 재생원료로 만든 소재를 사용한다고 23일 밝혔다. 수자원공사가 제공하는 이 생

친환경 사면 포인트 적립...현대이지웰 '그린카드' 온라인으로 확대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의 토탈복지솔루션기업 현대이지웰이 녹색소비생활을 촉진하기 위해 친환경 구매시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그린카드 적립서비스

SK AX, ASEIC과 51개국 제조업 탄소중립 전환 나서

SK AX가 'ASEIC'과 손잡고 국내외 51개국 중소·중견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공급망 탄소관리, 기후공시 등 탄소중립 전환을 돕는다. SK AX은 ASEIC(아셈중

쿠팡 '비닐봉투' 사라지나?...지퍼 달린 다회용 '배송백' 도입

쿠팡이 신선식품 다회용 배송용기인 프레시백에 이어, 일반 제품 배송에서도 다회용 '에코백'을 도입한다.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인천, 부산, 제

삼성, 수해 복구에 30억 '쾌척'…기업들 구호손길 잇달아

삼성그룹은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집중호우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해 30억원을 21일 기부했다. 기부에는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 삼

삼성전자-LG전자, 침수지역 가전제품 무상점검 서비스

삼성전자서비스와 LG전자가 집중호우 피해지역을 대상으로 침수된 가전제품 세척과 무상점검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삼성전자서비스는 지난 18일부

기후/환경

+

100년 넘은 시설인데 관리예산 '삭둑'...美 오하이오주 댐 '붕괴 위험'

트럼프 정부가 댐 관리인력과 예산을 줄이면서 100년이 넘은 미국 오하이오주 댐들이 붕괴 위험에 처했다. 앞으로 30년동안 1만8000개 주택이 홍수 피해

가자지구 폭격 잔해 처리에서만 온실가스 9만톤 배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남겨진 가자지구의 잔해를 처리하는데 9만톤 이상의 온실가스가 배출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영국 옥스포드와 에든버러

이란, 50℃ 넘는 폭염에 가뭄까지…물 아끼려고 임시공휴일 지정

이란 당국이 50℃를 넘는 기록적인 폭염과 물 부족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물소비 제한령을 내렸다. 일부 지역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임시공휴일

두산에너빌리티, 국내 최초 10MW 해상풍력 국제인증 획득

두산에너빌리티는 자사가 개발한 10메가와트(MW) 해상풍력발전기가 국제인증기관 UL(Underwriters Laboratories)로부터 형식인증을 취득했다고 23일 밝혔다. 국

햇빛 이용해 탄소배출 없는 '그린 암모니아' 생산기술 개발

국내 연구진이 태양광 시스템을 활용해 폐수 속 오염물질을 고부가가치 에너지원인 암모니아로 바꾸는 기술을 개발했다.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

기후변화로 美 북동부 폭풍 '노이스터' 위력 17% 증가

지구온난화로 미국 북동부 지역의 폭풍 위력이 증가하고 있다.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기후학자 마이클 만 박사 등이 참여한 연구팀은 1940년 이후 올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