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인줄 알고 썼더니…'미생물 음식물 처리기'의 민낯

조인준 기자 / 기사승인 : 2024-11-13 08: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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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식 음식물 처리기 내부, 하얀 알갱이들은 담체다.(사진=음식물처리기 홈페이지 캡처)

여름철에 음식물 쓰레기를 하루만 방치해도 지독한 냄새가 나자, 주부 A씨는 큰 마음을 먹고 싱크대 하단에 설치하는 음식물 미생물처리기를 구매했다. 편의성과 친환경적이라는 광고문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용한지 며칠이 지나자 냄새가 나기 시작하더니 기어코 싱크대가 막혔다. 미생물이 분해한 줄 알았던 음식물 찌꺼기가 슬러지 상태로 하수도로 그대로 떠내려가던 것이다.

친환경을 장점으로 내세우던 '미생물액상발효방식 음식물처리기'가 성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판매되고 있어, 오히려 수질오염과 하수도 막힘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생물액상발효방식'(미생물식)은 미생물로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한 다음, 남은 찌꺼기를 물과 함께 하수구로 흘려보내는 방식의 음식물처리기다. 남은 찌꺼기를 따로 회수할 필요가 없다는 편리함 때문에 음식물처리기 시장점유율이 24~28%에 이른다. 또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위해 별도로 운송하지 않아도 되므로 그만큼 탄소배출량을 감축시킬 수 있기도 하다. 이같은 이유로 음식물쓰레기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대부분의 급식소와 음식점 등에서 액상발효식 처리기를 사용한다.

문제는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 음식물 슬러지가 물과 함께 하수도로 흘러나가기 때문에 음식물을 제대로 분해됐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미생물식 처리기는 음식물 쓰레기가 투입된 후 분해가 완료되면 물과 함께 미세입자화된 음식물 슬러지를 하수도로 배출한다. 육안으로 보면 투입된 음식물 쓰레기가 마법처럼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13일 뉴스트리가 조사한 결과, 미생물식 처리기를 사용중이거나 이용해본 적 있는 10개 식당과 급식소 가운데 6곳이 처리기 이용 중 하수구 막힘과 역류 등을 겪었다. 조사에 응해준 영업장의 일일 평균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은 약 120㎏이었다.

중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조리사 임모(48)씨는 "넣는 음식물에 따라 분해되는 속도가 다른 것 같다"며 "기름기가 많은 급식이 나온 날에는 배출수가 좀 더 끈적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뷔페식당에서 일하는 유모(52)씨는 "처리기를 설치하고 몇 달이 지나자 하수관 쪽이 죽같은 형태의 음식물 찌꺼기로 막혀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같은 부작용을 경험해도 미생물식 처리기가 실제로 음식물을 분해하는지 아니면 죽처럼 녹여 하수도로 보내는 것인지 검증할 방법이 없다. 제조사는 기기에 문제는 없다며 처리하는 음식물의 종류나 투입량에 대해서 주의해달라고 요청할 뿐이었다.

만약 미생물식 처리기가 음식물 쓰레기를 단순히 슬러지 형태로 분해해 하수도로 밀어넣는 것이라면 여러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하수도를 통해 음식물 찌꺼기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면 하수도 역류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부유물질로 인한 하천오염 및 해양오염을 초래할 수 있다. 또 하수처리 과정에 유기물양이 증가하면서 폐수처리장치에 과부화를 일으키는 등 시스템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제주도에서는 미생물식 처리기가 유행하기 시작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하수관로 일일 공급 수돗물 양이 크게 늘었다. 수돗물 공급량이 증가하면서 오·폐수 처리량도 증가했다. 이는 하수종말처리장의 오폐수 처리비용을 증가시켰다. 이에 제주도청 환경관리과는 배출수를 하수관이나 오수처리시설로 보내는 미생물식 처리기 구입을 자제해달라는 공문까지 발송했다.

음식물 처리기 제조사 한 관계자는 "국내 음식물 처리기 시장규모가 1조원에 달하고 있지만, 제품에 대한 국가표준(KS)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제대로 된 검증과 생산 규제가 있었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세계적으로 음식물 쓰레기 자원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는만큼 우리나라도 음식물 쓰레기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음식물 처리기도 이에 걸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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