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정원부터...시민들이 꾸민 정원까지
6만평에 달하는 뚝섬한강공원이 '대정원'으로 변신했다.
뚝섬한강공원에서 펼쳐지는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지난해보다 규모가 더 커졌고 개최기간도 10월 8일까지 길어졌다. 개막 당일인 16일, 직접 방문한 박람회 현장은 어린이부터 어르신들까지 아침부터 꽃구경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비온 직후여서 그런지, 하늘도 구름 한점없이 맑고 미세먼지도 없는 깨끗한 공기가 사람들을 반겼다.
시민들은 예쁘게 꾸며진 정원 한가운데 들어가 마음껏 인생샷을 남기고 있었다. 기자도 한걸음마다 멈추고 꽃 사진찍기 바빴다.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 느긋하게 거니는 어르신들.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나온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박람회장은 평평하고 턱이 없는 '무장애길'로 조성돼 있어, 거동이 불편해도 정원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실제로 공원 곳곳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시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만큼 안전상의 이유로 자전거 출입은 제한하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자전거 제한구역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간혹 이를 무시하고 자전거를 버젓이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박람회장을 둘러본 시민들은 "아무것도 아닌 곳이었는데 몰라보게 변했다"며 놀라워 했다. 또다른 시민은 "앞으로 잘 가꿔서 (꽃들이) 활짝 피어나면 더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지친 일상에 가족들과 손을 꼭 잡고 정원박람회 나들이 어떨까? 정원을 보면 우울감이 20% 해소된다고 하니, 이번 주말 나들이 장소로 제격인 것같다.
◇ 6만평 대단지 정원···쉬면서 둘러보자
서울국제정원박람회를 가려면 자양역 2번 출구에서 내려야 한다. 지하철 출구를 나오면 거대한 '해치 프렌즈'의 포토존이 가장 먼저 반긴다. 서울시의 새로운 마스코트다. 서울정원박람회는 지하철역을 나오는 순간부터 곳곳에 포토존이 마련돼 있어, 언제든 편하게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6만평 규모로 조성된 정원은 정원전문가와 기업·기관, 학생·시민·외국인이 가꾼 76개 정원으로 나눠져 있어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특히 기업·기관·시민들과 함께 세계적인 작가와 기획자들이 모여 조성한 정원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수준이 높아 보였다. 박람회 관계자는 "웬만한 대기업 회장님 저택보다 더 수준 높은 정원"이라며 "아름다운 정원의 밤과 낮을 이곳에서 모두 감상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정원 곳곳에는 사람들이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의자가 배치돼 있었다. 쉬엄쉬엄 둘러보라는 뜻인가 싶었다. 사실 정원 그 자체가 거대한 쉼터같은 느낌이었다. 누구나 정원에 파묻혀 쉬어갈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앉아있으면 마치 정원의 일부가 된 기분이다. 야외박람회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앉을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인데, 이곳 박람회에서는 돗자리를 따로 챙겨가지 않아도 앉아서 쉴 곳이 많아 부담없이 정원을 둘러볼 수 있었다.
주최 측 관계자는 뚝섬한강공원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장소인 데다, 한강에 위치한 공원 중 유일하게 물에 잠기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물에 잠기지 않는 장소이니만큼 한시적 전시에 그치지 않고, 정원을 계속 유지해 3년 후 국가정원 지정을 목표로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시민들이 만든 정원
"한 할머니가 정원에 버려진 쓰레기를 보고 화를 내셨어요. 하필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직접 꽃과 나무를 심고 있던 곳이어서, 공들여 가꾼 정원에 누군가 함부로 쓰레기를 버린 것에 화가 나셨던 거죠. 자신이 손수 가꾸게 되면 그만큼 애정이 더 가기 마련입니다."
서울시의 이수연 푸른도시여가국장은 지역주민들이 박람회 정원을 조성하는데 함께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이같은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실제로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전국에서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엄마와 딸이 함께, 혹은 3대 가족이, 동네 친구·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만든 정원들이다. 120다산콜센터 직원들이 만든 정원도 있다. 이에 대해 관계자는 "개인화되면서 각박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정원을 계기로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것으로 보여 의미가 더 남다르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참여해 조성한 정원도 있었다. 서울시는 '사계절 매력정원'을 주제로 '학생동행정원' 10개소를 선정했다. 구조물보다는 자연식생을, 한철 피고 시드는 꽃보다는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관목을 위주로 선정했다고 한다. 다문화가족이 직접 조성한 '글로벌가든'은 아이가 집에서 피규어를 가져와 꾸민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원의 전체 디자인도 색달랐다. 간이화장실 외벽은 박람회장 안내지도가 됐고, 하얀색이었던 도로가림막은 미대생 자원봉사자들의 2주간에 걸친 노고 끝에 거대한 그림으로 변신했다. 놀이터, 운동기구 주변에도 정원을 조성해놔서 마치 숲속에서 운동하고 뛰노는 느낌이 들도록 해놨다. 정원은 다년생 식물 위주여서 유지·관리가 수월해보였다. 이 식물을 심는데만 한달이 걸렸다고 한다. 서울시 직원들과 자원봉사 시민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정원도시 서울'과 올해 '매력가든·동행가든 프로젝트'를 연이어 발표하고 정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정원박람회는 서울 전역을 돌아가면서 개최하고 있다. 지역 리모델링을 통해 지역주민이 즐길 수 있는 시민친화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박람회는 시민들에게 강과 정원이 어우러진 여가공간을 제공해 행복감을 증진시키는 것이 핵심이라고 관계자는 덧붙였다.
◇ 작가와 기업들이 조성한 테마정원 '볼거리'
여러 나라의 전문가들이 꾸민 정원을 한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지난해 조경상 대상을 수상한 '앉는정원'을 주제로 만든 정원에 앉아있으니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이 경치를 감상하던 시민들은 "한강이 다 보인다"며 감탄사를 자아냈다. 국내 공모 당선작인 차용준 작가의 '호미정원'은 지난해 가드닝 도구로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켰던 호미를 콘셉트로 조성돼 있었다. 정원 한가운데 거대한 호미가 드리운 모습이 인상적이다.
중국 작가가 만든 '바이올로지컬 셀프'(Biological Self)는 균류의 생태를 재해석해 중국 남방 분위기의 정원으로 꾸몄다. 어른과 아이의 동선을 따로 만들고, 그네 타는 푸바오 조형물도 만들어놨다. '섹션가든'(Section Garden)에서는 기존에 있던 나무를 그대로 살리면서 습지 및 초·화류 정원을 조성해놨다. 여기에 유리벽으로 토양 단면을 드러내 땅속 세계를 훤히 볼 수 있도록 해뒀다. 방글라데시 작가가 만든 정원 'Bebored 1 Meditate 1 Appreciate'은 시야를 모두 차단한 것이 멍 때리기 좋은 장소같았다. 이곳에서 명상 프로그램도 진행될 예정이다. 태국 작가의 '나비효과정원'(Butterfly Effect Garden)에 설치된 거대한 나비 조형물 앞에는 한 마리의 나비가 마치 '내가 진짜'라는 듯 날아왔다.
17개 기업들이 참여해 꾸며놓은 정원도 있었다. 기업들은 ESG경영의 일환으로 이번 박람회에 참여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조성한 '도심 속의 보석' 정원은 반듯하게 꾸며진 정원 안 직사각형의 유리온실이 돋보였다. 삼성물산의 조경전문계열사인 에버스케이프가 만든 '시간을 초월한 풍경' 정원은 붉은 전망대에 올라 탁트인 공원 전경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놨다.
NH농협손해보험과 동양생명은 지압로만 덩그러니 있던 빈공간을 정원으로 재탄생시켰다. 동양생명이 만든 어린이 정원은 기존의 지압로를 활용해 미로를 연출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KB증권은 황금을 테마로 '깨비정원'을 만들었다. 식물도 황금색 식물을 위주로 식재했다. 월트디즈니코리아는 오는 6월 개봉하는 영화 '인사이드아웃2'를 홍보하듯 정원을 꾸며놨다.
서울식물원의 '내 손으로 만드는 정원'은 맨땅에 잡초뿐이었던 공간을 다채로운 정원으로 재탄생시켰고, 서울대공원이 조성한 정원은 대공원 40주년을 기념해 사람과 동물, 식물의 공존을 주제로 '세대공감 40+ 정원'을 구성하고 거대한 철골 호랑이를 세웠다. 이 호랑이 구조물은 철골 밑에 식물을 심어 식물이 구조물을 뒤덮게 만드는 토피어리로 만들어,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수연 푸른도시여가국장은 "올해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기업, 기관, 시민이 함께 만든 박람회라는데 의의가 있으며 정원이 시민의 행복을 증진하는 하나의 사회적 정책솔루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3년 내 매력가든·동행가든 정원을 1000개로 조성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1만개가 넘을 것"이라며 "정원문화·산업 확산에 초점을 맞춰 서울 전역 곳곳에, 시민들 가까이에 정원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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