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8시간씩 정전으로 구리 생산량 급감
전세계 구리공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남부 아프리카 지역은 엘니뇨 현상으로 극심한 가뭄이 닥치면서 농산물뿐만 아니라 주요 수출품인 구리 생산까지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UC산타바바라 기후위험센터(UC Santa Barbara Climate Hazards Center, CHC)가 최근 발표한 예비평가 데이터에 따르면, 올 2월 잠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등 남부 아프리가 대부분 지역은 1981년 관측 이래 가장 적은 강우량을 기록했다. CHC는 "이번 예비평가는 위성기반 강우량 추정치를 토대로 실시한 것"이라며 "다음주에 더 많은 관측자료를 토대로 최종평가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CHC는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가뭄은 선진국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월등히 적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더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빈도도 점점 잦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me, WFP)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농촌인구의 약 4분의 1이 올 1분기에 식량부족에 시달릴 전망이다.
극한가뭄에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도 재난상황을 선포하는 등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다.
지난주 하카인데 히칠레마(Hakainde Hichilema) 잠비아 대통령은 "주요 작물인 옥수수가 한창 자라는 시기에 재배면적의 45%가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가뭄으로 국가재난을 선포했다. 짐바브웨 농부들은 수확을 포기한 농작물들을 소먹이로 줄 정도로 가뭄이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를 흐르는 잠베지강의 수량은 1년전에 비해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히칠레마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장기간의 가뭄으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면서 "2월 옥수수 가격이 1년 전보다 평균 76% 급등했고 일부지역에서는 3개월만에 가격이 2배로 뛰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웃국가 짐바브웨의 곡물 가격도 12월 이후 비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짐바브웨 정부도 "2024년 수확량이 지난해의 절반에 그칠 수 있다"며 "이에 내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남미에서 110만톤의 옥수수를 수입할 계획"이라는 대응책을 내놓기도 했다. 또 보츠와나 기상청은 "평년보다 강우량이 훨씬 낮은 수준"이라며 "보츠와나 대부분 지역이 엘니뇨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나미비아의 경우도 수돗물을 공급하는 주요 저수지의 수위가 11%만 차있다. 이조차도 가뭄에 점점 떨어지고 있다.
남부 아프리카는 가뭄으로 전기공급도 차질이 예상된다. 이 지역은 대부분 수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잠비아는 전력 생산의 약 85%를 수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는데, 수력발전소가 있는 세계 최대의 인공 담수호 카리바호의 수위가 저장용량의 15%까지 떨어지면서 전력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잠비아는 11일(현지시간)부터 매일 8시간동안 정전을 실시하고 있다. 짐바브웨는 이미 순환정전을 실시하고 있다.
문제는 잠비아가 콩고민주공화국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두번째로 큰 구리 생산국이라는 점이다. 전력이 부족하면 구리 생산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잠비아 정부는 부족한 전력 때문에 광산의 전력사용량도 25%까지 줄일 계획이다. 콩고 광산도 잠비아 전력공급에 의존하고 있어 아프리카에서 생산하는 구리의 공급량이 급감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처럼 가뭄으로 농업과 주요 수출품이 타격을 입으면서 해당 국가들의 재무상황은 악화일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가뭄으로 인해 잠비아의 자금 조달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며 "이미 잠비아는 3년 넘게 복잡한 채무 재조정 과정을 겪고 있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Bloomberg Economics)의 아프리카 이코노미스트 이본 망고(Yvonne Mhango)는 "2024년 가뭄으로 인한 식량 공급 제약은 이 지역의 인플레이션을 가져올 것"이라며 "이는 더 오랫동안 높은 금리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한편 세계기상기구(WMO)는 "현재 엘니뇨는 역대 가장 강력한 '5대 엘니뇨' 중 하나"라며 "남부 아프리카 일부 지역은 더 건조하고 더워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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