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알록달록한 단풍이 사라졌다. 올해 유독 나뭇잎이 단풍으로 물들지 않고 그대로 떨어져버리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죽하면 '초록낙엽', '녹색낙엽', '푸른낙엽' 해시태그가 소셜서비스(SNS)에 등장할 정도로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25년 넘게 '나무의사'로 일하고 있는 김철응 월송나무병원 원장은 12일 뉴스트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기현상에 대해 "기후위기로 이상저온이 발생한 탓"이라며 "한창 단풍이 들어야 할 가을철에 하루 사이에 기온이 10℃ 이상씩 뚝 떨어지면 단풍이 들지 않게 된다"고 진단했다.
김 원장은 "단풍이 들려면 '떨켜'가 만들어지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떨켜'는 잎자루와 가지 사이에 형성되는 코르크 재질의 딱지다. '떨켜'는 기온이 10℃ 정도로 떨어지면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한다. 기온이 떨어지면 나무는 겨울을 나기 위해 잎에 있는 영양분을 흡수한 다음, '떨켜'로 잎자루에 있는 물관과 체관을 막아 잎으로 가는 영양분을 차단한다.
영양분 공급이 끊기면 잎속의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엽록소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노란색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또 나뭇잎의 '액포'라는 기관은 잎에 남아 있는 양분으로 붉은색 안토시아닌 색소를 뿜어낸다. 붉은색 색소는 동물들을 열매로 유인하고, 해충이나 다른 식물들이 유입되는 것을 막는 성분을 뿜어낸다.
그런데 올 11월은 하루아침에 기온이 급락하는 일이 잦았다. 11월 평균기온이 가장 높은 날과 낮은 날의 기온차는 무려 19.8℃. 기상관측 이래 등락폭이 가장 컸다. 김철응 원장은 "기온이 급락하면 떨켜가 생성되기도 전에 식물조직이 얼어죽는다"면서 "그러니 단풍이 제대로 들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우리나라에서 '단풍구경'이 옛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무들은 겨울을 맞이할 채비를 해야 이듬해까지 견딜 수 있다. 김 원장은 "나무는 이듬해 잎을 틔울 때 뿌리에 있는 양분을 다시 끌어올려야 하는데, 단풍이 제대로 들지 않아 흡수한 양분이 충분치 못하면 봄철 나뭇잎의 크기가 작아지거나, 꽃이 잘 피지 않게 된다"고 밝혔다.
잎의 크기가 작아지면 광합성을 더 적게 하면서 영양분 부족이 심해지고, 병해충에 약해지게 된다. 또 꽃도 잘 피지 않을 수 있다. 김 원장은 "꽃이 잘 피지 않으면 꽃가루받이도 잘 이뤄지지 않아 열매맺기가 어려워지고, 꿀벌처럼 꽃꿀에 의존하는 생물들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김 원장은 "나무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으면 나이테가 넓지 않고, 촘촘해지면서 목재로서의 가치도 떨어진다"면서 "꽃이 제대로 피지 않으면 양봉농가와 과수농가를 피해를 입기 때문에 농업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단풍이 제대로 들지 않는 나무는 이산화탄소 흡수보다 배출량이 더 많아져 기후위기를 더 악화시키게 된다. 김 원장은 "잎에도 탄수화물이 있어 분해될 때 탄소가 나오는데, 단풍이 들지 않은 낙엽은 양분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탄소를 오히려 배출하게 된다"면서 "올해 낙엽의 탄소량은 엄청날 것"으로 내다봤다.
김 원장은 "기후위기로 나무가 약해지면 나무의 탄소흡수력도 약해져 기후위기를 되레 부추기는 '되먹임' 현상이 일어난다"면서 "따라서 좁은 공간에 나무를 억지로 심기보다 나무의 생육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숲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토양과 생육환경만 바꿔줘도 나무가 튼튼해진다"면서 "튼튼한 나무는 떨켜가 자리잡을 확률이 높아지고 탄소흡수량도 1.5배 늘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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