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각국 철강업 탈탄소 발벗고 나서 '대조'
탄소배출량이 가장 많은 철강업의 탈탄소를 위해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30조원을 투입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업계의 1조원 지원요청을 오히려 80% 삭감해 정부가 사실상 철강업의 탈탄소에 손을 놓은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0일 뉴스트리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철강산업의 탄소감축을 위해 2030년까지 2374억원의 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는 당초 산업통상자원부와 철강업계가 요청했던 1조원에서 무려 80%나 삭감된 금액이다. 일본이 철강부문 녹색전환 자금으로 2030년까지 3조엔(약 29조3552억원)을 쏟아붓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당초 산업통상자원부와 관련업계는 석탄 대신 수소를 촉매로 활용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수소환원제철' 설비의 기본설계와 설비구축, 실증사업까지 합쳐서 1조원을 신청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이 가운데 기본설계만 예산에 반영하며 신청금액의 80%를 삭감해버렸다. 민간투자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국비 지원은 1414억원이다.
문제는 8년간 2300억원으로 국가 배출량의 15%를 차지하는 철강업종의 녹색전환이 가능할 것이냐다. 철광석과 석탄을 반응시켜 쇳물을 만드는 철강산업은 철강 1톤을 생산할 때 이산화탄소가 2톤씩 발생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철강생산량은 6590만톤이었으므로, 지난해 철강업종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이보다 2배 많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국내 탄소배출 1위 기업인 포스코의 탄소배출량은 2021년 기준 7848만3858톤에 달했다. 같은해 현대제철은 2848만9305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두 회사의 탄소배출량을 합치면 1억697만3163톤에 달한다. 이는 같은 해 우리나라 총배출량 6억7960만톤의 15.7%를 차지한다. 우리나라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철강산업의 탄소감축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까닭에 각국은 탄소배출이 없는 수소환원제철 상용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9월 수소제철위원회를 결성하고 '제철 프로세스 수소 활용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여기에 1935억엔(약 2조원)의 예산을 할당했다. 유럽연합(EU)도 지난해 9월 철강을 비롯한 에너지집약 산업의 녹색전환을 위해 '유럽 주요 공동이익 사업'(IPCEI)을 통해 총 246억유로(약 36조원) 규모의 수소연구 보조금 지원계획을 승인했다. 자국 철강업종의 녹색전환을 위해 정부가 돈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반면 세계 철강생산 6위인 한국은 철강부문 탄소배출량이 전체의 15%가 넘는데도 2030년까지 철강의 녹색전환을 위해 고작 2300억원을 책정해놓은 상태다. 올해부터 2030년까지 이 자금이 투입된다고 보면, 연간 300억원도 안되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철강업계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수소환원제철의 상용화 시점은 빨라도 2040년 이후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이에 철강업계는 중간단계로 탄소배출량을 30% 저감할 수 있는 전기로로 대체할 계획이지만 치솟는 전기요금에 발목이 잡혀있다. 계속된 전기요금 인상으로 지난해 4분기 현대제철이 추가로 부담한 전기요금은 600억원에 달했다. 포스코도 광양제철소에 전기로를 2026년에 가동할 예정이지만 계속 인상되는 전기요금에 비용 부담감은 커지고 있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 차원에서 전력공급망 인프라 구축을 할 수 없지 않느냐"며 "재생에너지가 원활하게 공급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탄소중립 의무를 오롯이 기업에만 떠넘기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결국 국가 차원에서 재생에너지가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전력망을 구축하는 것과 동시에 기업들이 지속가능하게 사업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독일은 철강기업의 전기요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지난 5일 철강 등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산업이 전기요금 폭등으로 '공평한 경쟁'을 할 수 없고, 나아가 '존립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며, 이들 산업에 대한 전기요금을 최대 80%까지 보조하는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철강업계 또다른 관계자는 "전기요금 조정이 아니더라도 지원과 규제 성격을 동시에 갖춘 '탄소차액계약제도'를 도입하면 기업에 투자유인을 제공하고, 실질적인 탄소저감 성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탄소차액계약제도는 정부와 기업이 탈탄소사업에 대한 탄소배출권 고정가격을 정하고, 계약이 만기됐을 때 탄소배출권의 시장가격과 고정가격의 차이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통상 20~30년 단위로 계약하기 때문에 가격변동성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 기존 설비를 걷어내고 새로운 설비에 대규모로 투자해야 하는 철강산업의 경우 이 제도가 저탄소 전환을 이룰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아직 정부 정책이 선언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같다"며 "조만간 탄소국경조정제도까지 시행되면 철강업계 부담은 더욱 가중돼 저탄소 전환은 사실상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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