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이 동물'에게 배워야 할 것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3-04-19 11: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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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선생으로 삼으면 배울 것 많아
심리적 투사를 넘어 주체적 삶을 봐야

정신분석가 프로이트가 이런 말을 했다. "고양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다."
철학자 데리다는 샤워를 하고 나오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시선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원하거나 알기도 전에, 나는 발가벗은 채 수동적으로 내보여진다. 나는 발가벗은 채로 보여진다. 심지어 고양이에 의해 보여지는 나 자신을 보기도 전에 말이다. … 내 스스로를 내보이기도 전에 고양이에게 먼저 내보여진다." 고양이의 주체적 시선을 경험하고 사유한 것이다.
자기 존중에 대한 책을 쓴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은 이렇게 말한다. "동물들은 자기 존중을 가르치는 선생들이다. 자의식 없이 자신감이 넘치며, 철저하게 본래의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상가나 현자, 어른이나 지식인에게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다른 종에게서도 배울 수 있다. 과거 이솝 우화나 여러 가르침에서 동물을 의인화하거나 은유해 교훈을 펼치기도 했다. 20세기 후반 이래 동식물에게 배우라는 메시지가 두드러지게 흔해졌다.

◇ 늑대처럼 야성과 지혜를

지난 수십 년간 서구에서 인간이 본받아야 동물 1순위가 늑대(wolf)로 꼽혔다. 융 심리학 전문가이자 시인인 글라리사 에스테스(Clarissa Pincola Esthés)는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성들>에서 여성들이 본래 지녔던 야성적 직관적 본능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늑대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

늑대는 야성의 상징이다. 여하한 인간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는다. 늑대는 곧 자유로운 영혼을 뜻한다. 아울러 늑대는 직관이 뛰어나고 지혜롭다. 포악하지만 용맹하고 때로는 귀엽기도 하다. 에스테스는 인간 특히 여성은 늑대를 선생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늑대는 온갖 것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야성, 자기의 영역을 정하고 보호하는 영역 주권, 무리를 찾고 어울리는 지혜, 자기 신체에 대한 자신감과 자긍심을 간직하는 위엄, 조심하고 위험을 인지하고 경계하는 센스, 직관에 의존하는 감각, 넘어졌을 때 품위 있게 다시 일어서는 기세, 강한 연대를 형성하고 협업하는 법 등. 특히 늑대는 생명을 위해 짝짓기를 하고 자기 새끼들을 맹렬하게 보호한다. 아울러 인내력과 회복탄력성과 자기 보존의 기술도 가르쳐 준다. 에스테스는 우리의 야성과 본래적 영혼을 되찾도록 내면의 늑대와 재접속하라고 강조한다.

늑대전문가인 엘리 H. 라딩어(Elli H. Radinger)의 <늑대의 지혜; 늑대들의 협력과 사랑, 치열한 삶에 대하여>에서는 보다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늑대 가족은 끈끈한 정과 연대로 함께 살아간다. 나이든 가족을 방치하거나 홀대하지 않고 무리의 일원으로 돌보고 정중하게 대접한다. 나이든 늑대가 있는 늑대 무리는 그로부터 지혜를 배우기 때문에 사냥에도 능숙하고 생존력도 더 높은 편이라고 한다. 라딩어는 널리 알려진 늑대 세계의 위계질서나 힘 센 우두머리의 신화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다.

늑대 무리는 좀처럼 서로 싸우는 경우가 드물고 뛰어난 의사소통 기술로 서로 협업해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행동과 사냥법을 짜낸다고 한다. 아울러 늑대들은 놀이를 즐긴다. 이들에게 놀이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사회적 학습의 현장이 된다. 라딩어가 소개하는 늑대(wolves)는 굉장히 지혜롭고 사회적이고 조화로운 무리 공동체다. '양과 늑대'라는 고전적 도식이나 '남자는 늑대'라는 은유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난폭하고 잔인한 포식자 이미지와 달리 늑대는 우리 인간에게 유익하고도 지혜로운 선생이라는 것이다.

◇ 고양이처럼 홀로서기

인간이 본받아야 할 또하나의 동물은 고양이다. 프랑스 작가 스테판 가르니에(Stéphane Garnier)가 쓴 <고양이처럼 살기로 했습니다>는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국내 독자들도 많다. 가르니에는 옛날부터 인간이 고양이에게 매료됐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고양이에게 배울 수 있는 레슨들을 말한다. 가르니에에 의하면 고양이들은 많은 시간을 안락함과 쾌락을 추구하는데 사용한다. 언제나 외모를 깔끔하게 가꾸고, 느긋하게 잠자고, 다리를 쭉 뻗고 스트레칭을 하며, 일광욕과 놀이를 즐긴다. 게다가 일상의 변화를 매우 싫어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고 지극히 독립적이다. 가르니에는 고양이를 자율성, 자기 관리, 자기 충족적인 삶의 모델로 그려낸다.

본질적으로 고양이들은 쾌락주의자이며 독립적인 웰빙주의자다. 그 삶은 자기 충족적이다. 오로지 자기 행복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이 주어져 있다. 이러한 성향이 바로 고양이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부러움을 사는 이유다. 고양이 스타일의 사람의 매력은 자기 신뢰에서 기인하는 자율성이다. 고양이는 타자를 신경 쓰지도 않고 의존하지도 않는다. 가르니에는 이렇게 단언한다. "우리가 고양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가르니에는 동물행동학자가 아니라 작가다. 그래서 고양이를 인간의 정서과 감각으로 파악해 자율적 행복주의자로 묘사했다. 다분히 이기적이고 나르시시즘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고양이에게서 윤리적 교훈을 찾아낸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고양이와 교감하고 매료되는 이유를 재미있게 짚어낸 것 같다.

◇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늑대와 고양이에 이어 가장 최근에는 나무늘보가 집중적으로 조명받고 경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무늘보를 캐릭터로 한 인형이나 상품, 나무늘보를 이름으로 하는 숙소나 호텔은 나무늘보의 인기를 잘 보여준다. 나무늘보 동영상이 미디어 매체와 온라인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는 아마 열대우림 숲속의 세계를 촬영한 네셔널지오그래픽 영상 덕분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나무늘보의 길(道)'을 예찬하고 나무늘보의 삶을 살라고 외치고 있다.

나무늘보는 지구상에서 가장 느린 포유동물이다. 이동 속도가 1분에 5m를 미치지 못한다. 이들은 종일 나뭇가지에 매달려 흔들거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하루에 10~18시간씩 잔다. 신진대사도 매우 느리다. 한번 섭취한 나뭇잎을 다 소화하는데 한 달이 걸린다. 귀가 작고 청력이 약해 외부 변화에도 둔감하다. 그래서 위험천만하고 소란스런 정글에서도 태연하고 편안하다. 포식자의 접근을 알아채기 힘들고 몸도 느려 오래 생존하지 못할 것 같지만 나무늘보는 멸종되지 않고 수백 만 년 동안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 움직이지 않고 설치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늘보는 혼자서 서성거리며 놀거나 잠만 자는 행복한 내면주의자 이미지를 풍긴다. 마음챙김의 구루들은 나무늘보를 관조적이고 유유자적하며 느긋한 삶의 모델로 그려내기도 하고, 혹자는 미니멀리즘의 삶의 모델로 흠모하기도 한다. 즉 지금 이곳의 삶을 향유하기 위해 긴장을 완화하고, 속도를 늦추고, 서두르지 않고 게으르게 사는 것이 최적의 삶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독수리와 사자가 영광과 힘의 상징으로 추앙됐다. 한때 고래가 자아내는 신비한 이미지나 비둘기의 평화 상징도 유행했다. 이제 늑대가 잃어버린 야성적 본능과 사회적 연대의 스승으로, 고양이는 이기적 쾌락주의자의 모델로, 나무늘보는 미니멀리즘과 느린 삶의 캐릭터로 주목받고 있다. 늑대는 길들여진 개가 아니다. 고양이는 무리지어 생활하는 양떼나 쟁기를 지고 일만 하는 황소와 다르다. 나무늘보는 종일 분주하게 움직이는 개미와 벌떼와는 다른 삶을 산다.

현대인들은 왜 이 세가지 동물을 추앙하고 클로즈업할까? 그것은 온갖 문화적 억압으로 길들여져 원하는 것을 행하지 못하는 갑갑한 삶을 벗어나고픈 욕망을, 자기 존중과 배려를 젖혀두고 역할 게임만 하며 살아온 묶인 삶에 대한 회의감을, 경쟁이 격화되고 불확실성이 높아진 자본주의 정글로부터 탈주해 안식하고픈 심정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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