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투자비중 높아 녹색전환 걸림돌
한국전력공사의 비정상적인 사업구조가 국내 재생에너지 전환을 저해하고, 반대로 재생에너지 전환은 한전을 압박하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예상 영업손실액이 30조원으로 전망된 한전의 문제는 한전 사업구조의 근본적인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한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당장의 파산에서 벗어났을지 모르지만 아무 해결책 없이 이같이 조치한 것은 문제를 뒤로 미룬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28일 한국전력 회사채(한전채) 발행 한도를 기존 2배에서 최대 6배까지 늘려주는 한국전력공사법(한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한전채 발행량을 늘리지 않으면 전력공급이 중단돼 국가가 경제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는 한전의 경고를 국회가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한전채 발행 누적액은 69조원에 달했다.
문제는 지속적인 한전채 발행이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공마불사'의 믿음으로 한전은 낮은 이자비용의 '특수채'를 발행하고 있다. 저금리 특수채를 과도하게 발행하면 투자자들의 쏠림현상이 발생하고, 재무적 곤경상태에 있는 한계기업들은 파산하게 된다. 이에 따라 시장 불안이 고조되면서 다시 특수채 쏠림이 반복되고, 재차 한계기업들을 솎아내면서 시장 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이 부담은 물가상승으로 나타나 사회 전체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고, 수출경쟁력도 약화시킬 수 있다. 심하면 자본시장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FT는 한전채 발행이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유동성 경색에 상당부분 일조했다며 한전의 부채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한전의 사업구조는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FT는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중국보다 3배 이상 높은데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은 중국 기업들보다 전기요금을 적게 낸다"고 꼬집었다. 전기수요는 높아지고, 전기발전에 필요한 에너지 가격도 높아지는데,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기요금으로 적자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 FT는 우리나라의 저조한 녹색전환 실적의 원인을 한전으로 지목했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이슈를 다루는 영국의 비영리 민간연구기관 엠버(Ember)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기준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재생에너지 점유율이 낮은 국가였다. 이는 국내 전력판매시장을 독점한 한전의 그릇된 투자관행에 의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2021년 기준 한전의 투자현황을 보면 발전자산의 43%가 석탄이고, 원자력은 38%, 액화천연가스(LNG)가 15%, 수력발전 및 재생에너지는 3%에 불과했다.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의 크리스티나 응(Christina Ng) 선임연구원은 "한전은 영업이익의 상당부분을 결정하는 석탄과 LNG 가격이 변동폭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가 명확한데도 화석연료에 몰두했다"면서 "지난 10년간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아 반복적인 영업손실이 발생했고, 이미 과도하게 적자가 누적된 상태에서 부채가 꾸준히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기후솔루션 김주진 대표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한전은 소유한 6개 발전자회사로부터 69.4%의 전력을 수급하고 있고, 이를 발전원별로 따져보면 원자력 100%, 석탄발전 90%, 가스발전 30%를 의존하고 있다"면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0%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어 "이는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90%가 한전이 소유하지 않은 민간발전사에 의한 것이라는 이야기"라면서 "결국 한전 입장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에 투자한다는 것은 내부시스템으로부터 바깥으로 돈을 유출하는 일이기에 한전이 소유하지 않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 대해 징벌적 발전비용을 부과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FT는 이같은 실정이 삼성전자와 같은 한국 기업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공급사로서 RE100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전 시스템에 갇힌 전력시장 구조로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쉽사리 늘지 않아 절대적인 발전량 확보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반대로 만약 국내 기업이 자체적으로, 혹은 다른 민간 사업자들과의 계약을 통해 재생에너지 전환에 성공한다면 화석연료 투자 비중이 높은 한전이 공급하는 전력에 대한 수요는 더 떨어지기 때문에 한전 입장에서는 위기다.
김 대표는 "수년간 한전의 사업구조는 한국의 녹색전환을 위협했다"면서 "이제는 한국의 녹색전환이 한전의 사업구조를 위협하는 형국"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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