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은 거리 분위기는 코로나19 사태로 어느 때보다 침울하지만 서울 영등포 '신세계' 백화점의 웅장한 자태는 여전했다. 백화점 안팎에서 울려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뒤로한 채, 백화점 화물주차장을 끼고 모퉁이를 돌면 서울의 마지막 남은 집창촌이 강물처럼 펼쳐진다. 바로 그 건너편에 쪽방촌이 있다.
영등포 쪽방촌은 1970년대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밀려난 도시빈곤층이 대거 몰리면서 형성됐다. 쪽방은 단열과 단음, 난방, 위생, 화재, 범죄 등 모든 면에서 취약한 주거환경이다. 부엌도 화장실도 없는 6.6㎡(2평) 이내의 좁은 공간. 올해도 어김없이 쪽방촌에 겨울이 찾아왔다.
올겨울 쪽방촌은 유난히 더 춥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그나마 지급되는 물품이나 배식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하루평균 500여명에게 점심을 무료 배식하던 '토마스의 집'은 운영을 잠정 중단한 상태. 쪽방촌 인근에 있는 '광야교회'가 그 빈자리까지 도맡아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22일 방문한 광야교회의 '홈리스복지센터'는 저마다 음식을 포장하느라 움직임이 분주했다. 포장된 음식들은 거동이 불편한 쪽방촌 주민들에게 일일이 배달하고 있다고 한다. 왕석진 광야교회 집사는 "지금은 65세 이상 주민들만 복지센터에서 돌보고 있다"며 "코로나19로 교회 안에서 배식할 수 없다보니 이렇게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화장실이 없는 주민들은 교회 샤워실이라도 이용해야 할텐데, 코로나 때문에 교회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으니 걱정"이라며, 쪽방촌 주민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걱정을 한움큼 토해냈다.
광야교회가 매년 11월 둘째주 토요일에 열던 '광야인의 날' 행사도 코로나 때문에 차질을 빚었다. 11월 14일 예정돼 있던 행사날에 쪽방촌 주민들에게 월동점퍼 1800벌을 나눠줄 예정이었지만 방역수칙에 따라 행사가 축소되면서 실제 배부된 점퍼는 수백벌에 그쳤다는 것.
광야교회의 지원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고 있는 쪽방촌 사람들에겐 사실 더 큰 걱정거리가 있다. 유일한 터전인 쪽방이 곧 철거될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도시환경정비사업'에 따라 2021년말이면 임대주택이 착공된다. 예전처럼 막무가내로 주민들을 내쫓고 철거하지는 않지만 대다수 쪽방촌 주민들은 이주하기를 꺼리고 있다.
쪽방촌에 들어설 임대주택은 월 3만원 정도만 내면 되지만 입주할 때 161만원씩 내야 하는 보증금을 마련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쪽방촌 주민 정모(63)씨는 "살 날도 얼마 안남았는데 이사하는 것도 버겁다"면서 "이사를 안 가려면 보증금을 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다"고 긴 숨을 내쉬었다.
기초생활수급비로 매월 70여만원을 받으면 이 중 23만원을 월세로 낸다. 나머지 돈으로 한달 식비와 생필품, 약값 등으로 쓰고 나면 여윳돈이 있을 리 없다. 이들에게 보증금 161만원은 거머쥘 수 없는 목돈인 게 현실이다.
쪽방촌 철거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 이르자, 주민들의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주민 윤모(81)씨는 "시민단체와 지자체 동의를 얻어 진행되는 것이라는데 난 여지껏 쪽방촌 정비사업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며 "그러니 쪽방촌 재개발 사업에 동의한 적도 없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광야교회에서 사역활동을 하는 김모씨는 "주거환경 개선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오랜기간 무너져내린 주민들의 마음을 다잡아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며 "쪽방촌 주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당장 올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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