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현지 농가를 가다
기후변화로 농작물 재배지가 북상하고 작물의 생산량이 줄면서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농작물 가격인상이 오롯이 기후변화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에 본지는 기후위기가 밥상물가와 식량안보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데이터분석과 현장취재를 통해 사실여부를 검증해보고자 한다. [본 기획물은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의 팩트체킹 취재보도 지원사업 기금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기후변화, 밥상물가를 흔든다?] <2편> 커피·카카오·올리브 가격인상...기후변화 탓일까?'에서 이어집니다.
"폭염이 와도 가뭄이 들어도, 가격은 우리가 정할 수 없어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현지에서 만난 농민들은 한결같이 이런 푸념을 했다. 생산량이 줄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도 농가소득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생산량이 줄면 농가소득은 그만큼 줄고, 소비자의 장바구니 물가는 이보다 훨씬 더 올라갈 뿐이다.
작물은 기온과 강수에 따라 수확량이 달라지고, 품질이 판가름이 난다. 그만큼 기온과 강수는 작물의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요소다. 그러나 생산량이 회복된 이후에도 가격은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 생산량 변화와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커피와 카카오, 올리브유의 국제 거래가격 흐름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본지는 생산량과 가격의 상이한 흐름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농가들을 직접 찾아가 현지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국내뿐 아니라 이 지역 농민들도 그들에게 가격결정권이 없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작물 생산량이 들쭉날쭉하면서 발생하는 손실은 오롯이 농민들의 몫이었고, 직접 생산을 하지 않는 중간상인들이 생산량 변동으로 발생하는 이윤을 모두 독점하고 있었다. '기후변화'는 그들에게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 인도네시아|쌀과 살락 농가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1시간 남짓 이동해 도착한 족자카르타 지역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논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글거리는 뙤약볕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농부들은 해를 등지고 허리를 구부린 채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이 지역 대부분의 농가들은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일일이 모를 심고 있다고 동행한 가이드 수시야띠(Susiyati)가 귀띔했다. 논과 논 사이에 이랑을 따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 진흙이 밀려나갔다.
인도네시아와 같은 아열대 지역은 한해 두세 차례 벼농사가 가능하다. 한쪽 논에서 수확을 하면 다른 쪽 논에는 모내기를 하는 식이다. 수확을 마친 논 옆에서 농부들이 다시 모내기를 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모내기 채비를 하던 엘팡훈(Elpanghun)씨는 "최근 몇 년동안 기온이 올라가면서 벼가 빨리 익고 병해도 늘었다"며 "수확량이 예전만 못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18년째 쌀농사를 짓고 있다는 그는 "예전에는 계절 흐름이 어느 정도 예측됐는데, 이제는 언제 비가 쏟아질지, 더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전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날씨를 예측할 수 없다보니 농작물 관리도 그만큼 힘이 든다. 수해가 발생하면 수확량이 확 줄어들고 병해충도 많이 발생한다. 벼농사에 들어가는 비용이 그만큼 늘어나지만 이 비용은 고스란히 농가의 몫이다. 엘팡훈 옆에 있던 농민은 "농사를 짓기전에 쌀 중간상인들과 계약을 하기 때문에 수해나 가뭄으로 피해를 보게 되면 모두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쌀 수확량이 줄면 더 비싸게 팔아야 하는데 농민들에겐 그럴 권한이 없다. 중간상인들과 계약하면서 이미 매입가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쌀 생산원가보다 낮은 매입가에 쌀을 내주면서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까지 떠안아야 했다. 그래서 현지에서 만난 농민들은 "결국 우리만 손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결국 이상기후는 고스란히 농가 소득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수확량이 줄면 판매물량 감소로 소득이 줄고, 병해 방제나 추가 노동으로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열대과일 '살락' 농가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살락'을 재배하는 한 농민은 "비가 너무 많이 오거나 기온이 높아지면 살락이 쉽게 물러져서 수확량도 떨어지고 상품성도 나빠진다"면서 "작황이 나빠져도 이미 계약서에 정한 가격대로 중간상인에게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도네시아 열대과일 유통업체인 자바프레시(JavaFresh) 대표 마가레타는 "농산물의 가격은 농민이 아니라 유통단계에서 결정된다"면서 "이상기후가 발생하면 생산농가에서 많은 손해가 발생하지만 누구도 이를 보전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실제 생산 감소의 규모보다 가격이 훨씬 크게 움직인다는 데 있다. 중간 상인들은 농가에서 비교적 낮은 가격에 물량을 확보한 뒤, 가격이 낮을 때는 판매를 늦추고 시세가 오를 때 시장에 내놓는 매점매석 방식으로 폭리를 취한다. 생산량이 아니라 판매물량 조절을 통해 시장가를 올리는 식이다. 그러니 생산량이 회복돼도 가격은 쉽게 하락하지 않는 것이다.
◇ 베트남|달랏고원 커피 농가
베트남 중부 고원지대 달랏 외곽에 위치한 커피 농가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봉고차는 시내를 벗어나자 이내 나타난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렸다. 그렇게 약 2시간을 달린 끝에 우리는 다시 트랙터를 갈아탔다. 더 이상 차가 갈 수 없는 길이었다. 붉은 흙길로 이어진 산비탈을 따라 1시간쯤 올랐을 무렵, 커피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언덕이 펼쳐졌다.
리얼빈커피(Real Bean Coffee) 농장이었다. 커피나무 사이에서 일하던 농부는 우리를 발견하곤 반갑게 맞았다. 모자를 벗으며 땀을 훔친 그는 "예전보다 낮 기온이 훨씬 높아졌다"며 "밤에도 더위가 잘 가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커피 꽃이 피는 시기에 계속 더우면 열매가 제대로 맺히지 않는다"며 "커피나무는 비가 많이 와도 기온이 많이 높아도 수확량과 품질이 떨어진다"고 했다.
베트남 커피농가 역시 인도네시아처럼 날씨로 인해 작황이 달라지더라도 가격은 정해진대로 납품한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커피를 재배·유통하는 리얼빈커피의 로안(Loan) 대표는 "우리는 날씨를 보고 농사를 짓지만, 가격은 국제시장을 본다"며 "수확이 나빠져도, 수확이 좋아져도 농가가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농작물 가격은 국제 선물시장이나 수출이 기준"이라고 했다.
실제 농산물의 국제가격 흐름도 작황이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았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아라비카 커피 국제가격은 2020년 1kg당 3.32달러에서 2022년 5.63달러까지 급등했다. 2023년 수확량이 일부 회복되면서 4.54달러로 내려갔지만, 2024년 다시 5.62달러로 올랐다. 생산량 회복이 가격인하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카카오와 올리브유 역시 생산이 회복된 시점 이후에도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현지 농가를 통해 확인한 것은 기후변화가 농산물 가격변동의 원인이긴 하지만 소비자물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량 감소는 농산물 가격을 즉각 인상시키지만, 한번 인상된 가격은 좀처럼 쉽게 내려오지 않는 것은 시장원리가 아닌 유통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농산물 가격은 기후변화보다 농가와 중간상인의 계약, 유통구조, 국제거래시스템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다. 그래서 한번 오른 가격은 쉽게 내려오지 않고, 이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일본 치바대학교의 타이가 사사카와 박사는 뉴스트리와의 인터뷰에서 "중요한 것은 기후변화 그 자체보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누가 짊어지게 되느냐다"라며 "농산물 가격은 생산량 변화보다 계약 방식과 유통 과정, 국제거래 환경이 더 크게 좌우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기후변화를 명분삼아 유통업자들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밥상물가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그들이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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