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법재판소 "기후위기 대응 안하면 국제법 위반"

김나윤 기자 / 기사승인 : 2025-07-24 1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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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섬나라 키리바티 (사진=연합뉴스)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국제법 위반일 수 있다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단이 나왔다.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은 나라가 선진국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의견도 냈다.

ICJ는 2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법정에서 발표한 권고적 의견(advisory opinion)에서 "기후위기는 모든 생명과 지구 자체의 건강을 위협하는 존재론적 문제"라며 "기후변화 협약은 각국에 엄격한 의무를 부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제법상 불법 행위의 법적 결과에는 피해 국가에 대한 완전한 배상이 포함될 수 있다"며 국가 사이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ICJ는 '깨끗하고 건강하며 지속가능한 환경'이 인권에 해당한다고도 선언했다. 

ICJ는 국가간 배상을 '불법 행위와 피해 사이에 충분히 직접적이고 확실한 인과관계가 제시되는 경우'로 한정했다. 배상의 한 방식으로 제시한 복원(restitution)에 대해서는 "손상되거나 파괴된 인프라를 재건하고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을 복구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ICJ는 또 현재 및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 국가들이 문제 해결을 주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후단체 플랜1.5는 ICJ의 권고에 따르려면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60% 이상 감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해당 수치는 1.5℃ 목표 달성에 필요한 전세계 평균 감축률이다. 우리나라는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OECD 5위, 1990년 이후 누적 배출량 전세계 15위다. 

ICJ가 기후위기에서 국가의 책임에 대한 판단을 내놓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유엔 헌장에 따라 설립된 유엔 최고 사법기구이자 '세계법원'인 ICJ는 국가 사이 국제법상 분쟁에 대한 판결뿐 아니라 조언 요청을 받으면 권고적 의견을 낸다. 권고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판결에 준하는 권위를 인정받으며 각국 정부 정책과 법원 판결, 국제법 해석과 외교 협상에서 중요하게 고려된다.

영국 그랜섬 기후변화·환경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약 60개국에서 3000건 가까운 기후소송이 제기됐다. 바누아투 환경장관인 랄프 레겐바누는 "기후 대응에 획기적 이정표"라며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와의 대화에서 '당신들은 우리를 도울 법적 의무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ICJ에 법적 판단을 구하자는 아이디어는 국가 전체가 수몰 위기에 처한 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의 로스쿨 학생들이 냈다. 유엔 총회는 2023년 3월 ICJ에 기후변화의 법적 책임에 대한 권고적 의견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ICJ는 지난해 12월 심리를 열어 98개국 정부와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12개 국제기구의 의견을 들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국가와 국제기구가 참여한 것이다.

쟁점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국가의 의무'로, 현재·미래 세대를 보호하기 위해 국제법 관점에서 각국이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지금까지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한 산업 국가들은 기후변화 피해국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다뤘다.

선진국들은 대체로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과 이를 구체화한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파리협정)을 넘어서는 법적 의무를 지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태평양 섬나라와 개발도상국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구속력 있는 조치가 필요하고 선진국들이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파리기후변화협정은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2도 이내로 제한하고, 1.5℃ 이내로 낮추기로 노력한다는 추가 목표를 정했다.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5년마다 제출하기로 약속했으나 잘 지키지 않고 있다. 중국과 함께 양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은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파리협정에서 탈퇴했다.

하지만 최근 여러 국제사법기구에서는 국가의 기후대응 의무를 강조하는 흐름이다. 작년 5월 국제해양법재판소는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로부터 해양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주인권재판소는 이달 발표한 권고적 의견에서 각국은 탄소예산과 같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감축목표를 설정해야 하며 온난화를 1.5℃로 제한하는 것은 최대한이 아닌 최소한의 목표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법'에서 2031년 이후 감축량을 설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국회는 내년 2월까지 2031~2049년 장기 감축경로를 설정해야 하는 과제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올해 중 유엔에 '2035 NDC'를 제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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