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수책위에 'ESG투자' 전문가가 없다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4-04-03 08: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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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운용 및 책임투자 현장 경력자 전무
수익률·독립성·의결권 '인적구성'에 달려


'ESG투자'를 원칙으로 하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에 'ESG투자' 전문가가 없다는 지적이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민연금 수책위원으로 활동하는 8명 가운데 교수가 2명, 변호사가 2명, 기관소속이 2명, 연구원이 2명이다. 이 가운데 ESG투자에 대한 실무경험을 갖추고 있는 위원은 단 1명도 없다. 

수책위원 8명은 △한석훈 법무법인 우리 선임변호사(위원장) △신왕건 한양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원종현 전 국민연금연구원 부원장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연임 금융투자협회 미래전략산업조정팀 부부장 △이상민 법무법인 에셀 대표변호사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연태훈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이들의 임기는 3년이다.

원래 국민연금 수책위원은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사용자단체를 대표해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상근 전문위원 1명, 비상근위원 1명을 추천하고, 근로자단체 대표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서 상근위원 1명과 비상근 1명을 추천한다. 그리고 지역가입자 대표로 한국공인회계사회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서 상근과 비상근 각 1명씩 추천하도록 돼 있다. 여기에 전문가단체가 3명을 위촉해 '9인체제'로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단체가 추천한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정치권에 입문하면서 사임하는 바람에 현재 수책위는 '8인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 8명의 수책위원들은 법조계와 회계사, 학계, 연구위원 출신으로, 자산운용, 책임투자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는 없다는 게 문제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뉴스트리와 통화에서 "지침에 따라 금융, 경영, 경제, 책임투자 등에서 5년 이상 경력있는 전문가를 수책위원으로 위촉하고 있지만, 현재 수책위원 가운데 자산운용이나 투자현장에서 직접 일했던 경험이 있는 분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실 국민연금은 이같은 비판을 의식해 지난해 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가 3명씩 추천하던 수책위원을 2명씩으로 줄이고, 대신 전문가단체가 3명을 추천하도록 바꿨다. 하지만 전문가단체가 추천한 위원들 역시 'ESG투자' 전문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기후위기 연구나 ESG 모니터링 등 ESG 관련 분야에서 종사한 전문가이긴 하지만 투자업계에서 일한 경험은 없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ESG투자는 어디까지나 '투자'이지 'ESG'가 아니다"며 "각계의 위촉을 받으면 이해를 대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기금을 어떻게 불려나갈 수 있을지 '투자' 관점에서 몰두할 수 있는 인적 구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분기를 25년으로 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기 ESG 투자전략을 가장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위원들은 ESG 기업컨설팅, 자산운용 등 산전·수전·공중전을 모두 겪은 ESG투자 전문가들로 채워져 있다. 위원회 11명 가운데 연차가 설명돼 있지 않은 2명을 제외하고는 적게는 15년에서 많게는 45년까지 관련업계에서 종사한 전문가들이다.

이는 장기적인 수익률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3~2022년까지 10년간 CPPI의 평균 수익률은 10.01%인데 비해, 국민연금 수익률은 4.70%에 그쳤다. 같은기간 해외 주요 연기금을 살펴봐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의 수익률은 6.7%, 일본 공적연금(GPIF)은 5.7%, 네덜란드 공적연금(ABP)은 5.1%에 달했다. 모두 국민연금보다 높다.


수책위는 전문적인 투자전략을 통한 수익률 극대화 뿐 아니라 기업경영에 의결권을 적극 행사해 투자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도 수익을 제고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이해관계자들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책임투자 원칙을 지킬 수 있는 독립성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투자전문가로만 구성되지 않으면 독립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비판도 따른다.

일례로 전문가단체의 위촉을 받은 강성진 전 위원은 여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임기 1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사임해버렸다. 이 때문에 현재 '8인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수책위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기도 어려워졌다. 수책위는 의결권 사항에 대해 전원합의를 원칙으로 하지만, 이견이 심할 경우 과반으로 결정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인원이 짝수일 경우 '4대4 동률'이 발생하면 결정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성과는 미미하다는 평가다. 지난 3월 31일까지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수책위가 의안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기업은 22곳인데, 이 가운데 수책위 의사에 따라 의안이 부결된 곳은 단 1곳도 없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세계 3위 연기금인 국민연금은 전세계 자본시장에서 어마어마한 큰손임에도 비전문가들이 상위에 포진해 있어 기업들의 ESG 경쟁력을 높여 수익을 내야 할 본연의 지렛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마치 성인이 됐는데 3~4살 아이의 옷을 입고 있는 격으로, 장기 투자관점에서 확실한 성과를 낼 수 있는 'ESG투자'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시급히 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현업 경력이 있으면서 기업과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인재 풀이 넓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며 "다만 수책위원들이 현직의 의견이나 실무자들의 의견을 볼 수 있도록 풍부한 참고자료를 전달하는 등의 방안을 병행하고 있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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