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의 강한 반발과 로비 영향?
유럽연합(EU)이 자동차 회사들의 압박과 로비에 못이겨 배기가스 오염규정인 '유로7(Euro7)'을 완화할 예정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환경 및 보건전문가들은 "오염규정이 완화되면 약 1000억유로(약 139조5730억원)의 보건 및 환경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U집행위원회 산하 민간연구기관 CLOVE 컨소시엄(Consortium for Ultra-low Vehicle Emissions)은 "EU국가들은 이산화질소 규제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며 "유로7로 인한 기후관련 재정절감 효과의 절반가량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산화질소는 디젤 엔진에서 배출되는 독성 배기가스로, 지난해 EU에서 4만9000만명을 조기사망하게 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에 그동안 CLOVE 컨소시엄은 "이산화질소의 배출 허용량을 대폭 줄이고, 신모델 승인시험에서 실제 주행시 발생하는 이산화질소의 양을 엄격하게 측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자동차 공학전문가들도 "지금의 주행시험은 구형 차종, 추운 날씨, 시내 주행 등 실제 도로 주행 환경에서 배출되는 이산화질소를 측정하지 못한다"며 시험조건 강화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최근 EU 27개국이 합의한 내용에 따르면 이산화질소 허용량과 주행 시험 강도는 이전 규정인 유로6과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자동차업계의 강한 반발로 이산화질소 규제를 강화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그동안 자동차업계는 "환경적 혜택은 작은 반면 회사와 고객은 이 규제에 대한 부담을 고스란히 져야 한다"고 반발해 왔다. 하지만 CLOVE 컨소시엄의 주장에 따르면 친환경차를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은 약 300억유로인 반면 도로 오염을 규제하는데 따른 이익은 1820억유로에 달해 업계의 주장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CLOVE 컨소시엄의 지시스 사마라스(Zissis Samaras) 교수는 "우리의 비용편익 분석은 투명한 분석과 자동차 제조업체 및 공급업체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와의 대화를 기반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EU집행위원회 위원들에게 유럽자동차공업협회(European Automobile Manufacturers’ Association, Acea)의 막대한 로비자금이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됐다. 지난해 6월 EU 시장담당 집행위원 티에리 브르통(Thierry Breton)과 올리버 집세(Oliver Zipse) 당시 Acea 회장 겸 BMW CEO간의 비밀회동에서 집세 회장은 "엄격한 이산화질소 배출량 제한에 반대하고 승인 시험을 느슨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티에리 브르통 집행위원이 "위원회는 강력하지만 실현 가능한 규제를 설정할 예정"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후 2022년 11월 EU집행위원회는 CLOVE 컨소시엄 권고안이 아닌 자동차 업계가 주장한 배기가스 배출 제한 요구안을 채택했다. 더구나 EU집행위원과 Acea 회장간 회담은 공개가 의무화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개 투명성 자료에 실리지 않았다. 이에 EU집행위원회는 "행정적 감독으로 인해 회의가 제때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업계 한 관계자들은 "2035년까지 전기차로 완전히 전환하는 것에 있어서 자동차 업계의 지지는 필수적"이라며 "따라서 내연기관 오염 규제 철회라는 '당근'을 제시한 것같다"고 추정했다. 실제 마티아스 요한슨(Matthias Johansson) 볼보 마케팅 이사는 "유로7 초안대로 엄격하게 규제한다면, 볼보를 비롯한 우리 자동차 회사들은 불과 몇 년 후에 쓸모없게 될 내연기관 기술에 돈과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들은 "유로7 규제완화는 제2의 디젤게이트"라며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유럽운송환경연합(Transport & Environment)은 "배기가스 규제강화에 대한 업계 반발은 2015년 디젤게이트에서 제조업체들이 소프트웨어 속임수를 사용해 배기관 배기가스 규제를 회피한 일을 연상시킨다"고 밝혔다.
유럽운송환경연합(Transport & Environment)의 안나 크라진스카(Anna Krajinska) 차량 배기가스 담당은 "2035년까지 유로7 인증을 받은 신차가 9500만대 판매될 예정"이라며 "배기가스 배출을 줄이는 규제가 없다면, 이러한 차량 중 상당수는 2050년까지 WHO 기준을 초과해 공기를 계속 오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로7은 결국 그린워싱된 유로6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크라진스카 담당은 "몇몇 자동차 제조업체가 10억달러를 벌 때마다 유럽 시민들은 병에 걸리고 수십억 달러를 잃게 될 것"이라며 "자국민의 건강보다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EU집행위원회 대변인은 "이번 유로7 규제완화는 일부의 의견만 들은 것이 아닌 모든 이해관계자와 매우 폭넓은 협의를 거쳐 신중한 검토를 거친 결과"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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