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산시설 턱없이 부족...가격 부채질
한번 생산되면 사라지는데 500년 이상 걸리는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 참혹하다. 대기와 토양, 강과 바다. 심지어 남극과 심해에서도 플라스틱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 지구를 뒤덮고 있다. 이에 본지는 국제적인 플라스틱 규제가 마련되려는 시점을 맞아, 플라스틱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보고 아울러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기업을 연속기획 '플라스틱 지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투명페트병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분리배출을 시작한지 3년이 지났지만, 실제로 수거된 투명페트병이 새로운 페트병 제작에 사용된 비중은 1%에 훨씬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지난 2020년말부터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제도를 시행했다. 페트병을 다시 페트병으로 만드는 '보틀투보틀' 재활용을 활성화해 생산-소비-폐기의 '선형경제'에서 벗어나 투입된 물질을 유용한 자원으로 반복사용하는 '순환경제'로 거듭나기 위한 초석을 닦기 위해서다.
'보틀투보틀' 방식은 페트(PET) 재질의 투명페트병만 별도 수거하기 때문에 다른 재질과 섞이지 않아 여러 차례 재사용할 수 있는 고품질의 재생원료를 확보할 수 있다. 탄소배출을 유발하는 플라스틱 신재 생산량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폐페트병이 그대로 새로운 페트병을 만드는 데 투입되기 때문에 오염물질의 유출을 최소화할 수 있어 '순환경제'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제도 시행 3년이 지났음에도 페트병에 투입되는 재생페트는 1200톤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2021년 국내 출고·수입된 투명페트병이 30만4699톤인 것에 비춰보면 0.4% 수준에 불과하다. 환경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식품용기에 쓸 수 있는 폐페트병의 제조시설과 품질기준을 마련한 시점은 2022년. 이 기준을 통과한 곳은 현재 알엠의 화성공장 단 1곳뿐인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페트 재생원료의 양이 연간 1200톤인 것이다.
◇기껏 선별수거해놓고···90% 이상 '다운그레이드'
그렇다면 페트병으로 재활용되지 못한 30만3500여톤의 폐페트병은 어디로 갔을까.
환경부 내부자료에 의하면 2022년 기준 수거된 폐페트병의 70%는 노끈이나 솜 등 중저급 단섬유로 재활용됐다. 26%는 과일을 담는 시트류나 의류에 쓰이는 고급 장섬유로 재활용됐다. 문제는 이렇게 재활용된 폐페트병은 1회 이상 재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순환경제'로 볼 수가 없다.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제도가 시행된 이유는 '순환경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인데 기껏 분리수거한 페트병이 고품질 재생원료가 아닌 다운그레이드된 원료로 사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원인은 여러가지로 지목된다. 환경부의 '재활용 지침'에 따르면 현재 국내 플라스틱 재생원료 목표비중은 3%다. 이마저도 페트 1만톤 이상을 생산하는 원료기업에게만 부과되는 '권고'일 뿐 강제성이 없다. 게다가 페트 원료로 완제품을 제조하는 최종생산자 기업에는 권고조차 없다. 기업들은 사용할 의무도 없고, 재생원료 가격이 신재보다 비싸 채산성도 맞지 않는데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다. 이렇다 보니 재생원료를 찾는 기업도 없고, 수요가 없으니 공급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악순환인 셈이다.
이에 관련업계는 "재활용 시장의 수요를 창출하려면 결국 정부가 규제를 통해 시장을 여는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해외 선진 각국은 정부가 규제를 통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유럽은 2025년부터 모든 음료 페트병에 재생원료 비중을 25% 사용할 것을 의무화했고, 플라스틱 폐기물 1kg당 0.8유로(약 1130원)의 세금을 부과하는 '플라스틱세'도 시행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플라스틱 용기를 생산할 때 재생원료를 15% 이상 사용할 것을 의무화했다. 이 비중은 2025년부터 25%, 2030년부터 50% 이상 높아진다.
매년 폐페트병이 30만톤씩 쏟아져 나오는데도 대량생산을 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정부 인증을 받은 생산시설이 국내에 달랑 1곳에 불과하다보니 재생원료인 펠렛의 가격은 1kg당 1880~2000원에 이른다. 신재 페트 레진이 1kg당 1450~1550원하는 것과 비교하면 너무 비싸다. 친환경 이니셔티브를 내세운 극소수의 기업만 재생원료 펠렛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국내 재활용 시장은 거의 불모지다.
◇ 국내유일 인증공장마저 원료부족에 '껐다, 켰다'
한국코카콜라는 국내 최초로 '보틀투보틀' 방식으로 재생페트 10%가 사용된 제품을 출시했고, 코카콜라의 글로벌 목표를 맞추려면 2030년까지 모든 용기를 100% 수거해 재생원료 비중을 50%까지 늘려야하는 상황이다. 한국코카콜라 관계자는 "재생원료 비중을 늘려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려면 일단 재생원료 공급량이 많아야 하는데 아직 국내에서 식품용기 기준을 통과한 재생페트를 생산하는 공장은 1곳뿐이다보니 리스크가 크다"면서 "이마저도 원료가 일정량이 모여야 가동할 수 있는 자동화 공정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원료가 투입돼 공장을 돌리지 않으면 효율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나 국제플라스틱 협약 등 국제적인 추세에 따르면 재생원료 투입없이 플라스틱 제품을 팔지도, 해외에서 플라스틱 폐기물을 사들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재활용이 무조건 가야만 하는 길이다"며 "특정 공급처에서 값싼 재생원료가 풀리면 경쟁사들이 동시에 달려들 정도로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국제적으로 플라스틱 오염과 플라스틱 폐기물의 이동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고 있어 전세계에서 3번째로 큰 프랑스 해운업체 'CMA CGM'은 선제적으로 플라스틱 폐기물의 운송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환경부 스스로도 2030년까지 모든 폐기물의 수입금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국내 재생원료 수요가 급증할 것을 감지한 국내 재활용업체들이 환경부로부터 식품용 재생원료 생산인증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유일산업, 해동무역, 두산이엔티, 준영, 새롬이엔지, 디에이치원 등 다수의 재활용업체들이 시설을 앞다퉈 구축하고 인증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면서 "국제적인 흐름과 업계의 요구를 반영해 재생원료 의무화 비중에 대한 적정 수치를 마련하는 등 로드맵을 제시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추진중인데 내년께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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