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을 살리자⑥] '양봉강국' 뉴질랜드를 가다...'마누카 꿀' 성공비결은?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2-10-17 0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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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항균효과로 200g에 200만원 호가
검증·분업 통한 '깐깐한' 품질관리 최우선

올초 국내에서 약 100억 마리의 꿀벌이 집단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꿀벌 개체수 감소는 양봉농가 피해에 그치지 않고 농산물 수확량 감소로 이어진다. 이에 본지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을 짚어보고, 꿀벌을 살리기 위한 대응방안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뉴질랜드 양봉농가 벌통에서 직접 파낸 마누카 꿀 ©newstree 조인준 기자


<이 기사는 [꿀벌을 살리자 5편: 꿀벌 혹사시키는 '사양꿀'...이대로 좋은가?]에서 이어집니다>

'액체로 된 황금'(liquid gold)으로 불리는 '마누카 꿀'이 세계 벌꿀 시장을 제패한 배경에는 '소비자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 뉴질랜드 정부와 양봉업자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1인가구와 노령인구의 증가,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맞물리며 기능성 양봉산물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수요에 힘입어 전세계 양봉시장 규모는 연평균 3.6%씩 성장하며 2026년에 11억8000만달러(약 17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꿀벌의 화분매개를 통해 실현되는 공익적 가치는 직접생산의 60배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양봉은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런 양봉 시장에서 가장 돋보이는 국가는 '마누카 꿀'을 앞세운 뉴질랜드다. 탁월한 면역증진 효능을 가진 마누카 꿀은 3m 높이의 뉴질랜드 자생관목 마누카 나무의 꽃에서 1년에 약 12일동안만 채집할 수 있다. 희소성과 향균효과를 인정받은 마누카 꿀은 230g 꿀단지 하나가 200만원을 호가할 정도이며, 전세계 벌꿀 시장에서 '액체로 된 황금'으로 통한다.

연평균 2만톤의 천연꿀을 생산하는 뉴질랜드는 매년 3억4000만달러(약 4856억원)의 흑자를 기록하며 천연꿀 수출액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국내 양봉업계는 침체를 거듭하며 지난 5년간 국산 천연꿀 수출량은 90% 이상 감소했다. 수출액은 5년전 5억1600만원에 비해 77.3% 줄어든 1억1800만원으로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이로 인한 천연꿀 무역수지 적자는 지난해 217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양봉농가 수 2만7464호의 절반도 안되는 뉴질랜드(1만509호)가 성공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뉴스트리가 뉴질랜드 양봉농가를 직접 찾아가봤다.


◇ 벌통 1개만 있어도 양봉업자로 등록해야


▲뉴질랜드 북섬 북동부의 타우랑가 시에 위치한 한 양봉장 ©newstree 조인준 기자


뉴질랜드는 1993년 세계 최초로 '생물보안법'을 시행했다. 자국내 농업과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제정한 법이다. 이 법에 따라 뉴질랜드의 모든 양봉업자들은 우리나라의 농림축산식품부에 해당하는 '1차산업부'(MPI·Ministry for Primary Industries)에 양봉사업자로 의무등록해야 한다.

벌통 1개만 있어도 양봉업자로 등록해야 한다. 등록서에는 아주 세세한 내용까지 모두 기재하도록 돼 있다. 양봉장의 위치, 봉군의 규모는 물론 꿀벌의 공급처, 양봉장 내부의 벌통 위치까지 써야 한다. 심지어 벌통의 위치는 소수점 6번째 자리까지 나타나는 위도와 경도로 세밀하게 기입해야 한다. 변조꿀을 추적하고, 병해충 피해 발생시 빠르고 정확하게 조처하기 위한 방편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꿀벌 감염병은 미국부저병(American foulbrood)이다. 이 세균성 질병으로 뉴질랜드 양봉농가는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이에 뉴질랜드 당국은 양봉업자들에게 매년 검역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당국은 미국부저병 발생확률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되는 양봉업자들에게만 검역면제권을 주고, 이들이 나머지 양봉업자들의 벌통 상태를 검사하도록 한다.

양봉업자들은 관리 및 검역의 편의를 위해 장애물이나 시야가 차단되는 장소에 벌통을 두면 안 된다. 또 벌통은 검역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이동이 가능한 구조여야 한다. 만약 미국부저병이 발생하면 반경 2km 이내 관련 장비를 모두 소각 처분해야 하고, 7일 내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수출업자로 등록할 경우 절차는 더 까다로워진다. 양봉업자는 '수출용 양봉산물을 위한 채밀 신고서'를 작성해 고유식별번호를 등록하고, 제품에 라벨을 부착해 항상 추적이 가능하도록 조처해야 한다. 신고서에는 밀원지 정보와 채밀일시를 기입해야 한다. 당국은 수출용 채밀량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 밀원지가 부족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한다.

▲타우랑가 시에서 봉군 500개 규모의 양봉장을 운영하는 캐머런 제프리스 씨는 "벌집 1통을 키우더라도 해당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newstree 조인준 기자


뉴질랜드 북섬 북동부의 타우랑가 시에서 봉군 500개 규모의 양봉장을 운영하는 캐머런 제프리스(Cameron Jefferies) 씨는 "벌집 1통을 키우더라도 해당 절차에 따라야 한다"면서 "정부는 키위, 아보카도 등의 화분매개와 원예산업까지 미칠 충격을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한 것이고, 이 덕분에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식물병해충이나 가축전염병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강조했다.

제프리스 씨는 이어 "여러 불확실성을 배제하고 확실하게 관리하면 양봉업자들은 지속가능한 수입이 보장된다"며 "그러면 벌꿀 고도화에 투입할 수 있는 여유자본이 생기면서 소비자 신뢰를 얻게 되고, 이는 더 많은 수익으로 이어지면서 단단한 선순환 구조의 기반이 구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깐깐한 품질관리···기준 충족해야 정품인증

양봉업자로 등록만 한다고 해서 모두가 '마누카 꿀'을 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품에 '마누카 꿀'이라는 라벨을 붙이려면 벌꿀의 성분이 1차산업부(MPI)가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뉴질랜드 정부가 선정한 인증기관은 여러 측정을 거친 다음 기준을 충족하는 마누카 꿀에 대해서만 정품 인증서를 발급한다.

마누카 꿀은 80종 이상의 슈퍼박테리아에 관한 항균작용뿐만 아니라 박테리아 내성을 억제하는 작용도 한다. 마누카 꿀의 주요 항균성분 중 하나는 메틸글리옥살(MGO)이라고 불리는 화합물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이런 성분을 분석해 마누카 꿀의 효능을 평가하는 척도를 관리하고 있고, 이를 '마누카 고유 효능요소'(UMF·Unique Manuka Factor)라고 한다.

UMF를 측정하려면 인증기관에 벌꿀제품의 샘플을 보내 4가지 화학물질에 대한 실험을 거쳐야 한다. 또 꽃가루 DNA 테스트도 거쳐야 한다. 이 테스트에서 해당 제품이 변조꿀인지 마누카 꿀인지 판별된다. 또 단일꽃꿀인지 마누카 꿀을 포함한 잡화꿀인지도 분석되며, 제품의 신선도와 효능도 파악된다.


일반적으로 'UMF 5+' 등급부터 마누카 꿀로 인정된다. 수치가 오를수록 약리작용이 강하다고 판단돼 더 높은 가격을 쳐준다. 마누카 꿀은 상하지 않지만, 2년여의 숙성기간을 거치면 그 효능이 극대화되다가 특정 시점이 지나면 이 수치가 감소한다. 검증을 마치면 출하되는 제품에 UMF 등급 수치와 함께 품질유지 기한이 명시된다.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꿀의 70%를 검사하는 정부 인증기관 애널리티카연구소(Analytica Laboratories)의 매튜 루이스(Matthew Lewis) 사업개발 담당자는 "2013년 벌꿀 검사서비스를 시작했고, 2011년~2016년 사이 뉴질랜드 마누카 꿀 수출량은 무려 3배나 급증했다"며 "뉴질랜드 정부의 인증 표시가 있는 한 마누카 꿀이 진품이라는 사실을 전세계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생산·유통·관리···정부와 민간 철저한 분업화
▲벌꿀 유통업체 마누카 오차드(Manuka Orchard)의 벌꿀 저장시설. 마누카 오차드의 저장시설에는 뉴질랜드 전역에서 온 300여톤의 벌꿀이 들어차 있다. ©newstree 조인준 기자

뉴질랜드의 양봉산업은 정부뿐 아니라 민간영역의 활약으로 한층 더 도약하고 있다. 벌꿀 유통업에 뛰어든지 4년차인 '마누카 오차드'(Manuka Orchard)의 로건 보이어 대표(Logan Bowyer)는 현재 150여명의 양봉업자들과 손잡고 있다. 보이어 대표는 "항상 바깥에 나가 꿀벌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꿀을 거둬들이는 양봉은 바쁜 직업이다"며 "여기에 지친 양봉업자들이 제품을 제대로 관리하고 판매까지 나설 여력이 없기 때문에 마누카 오차드는 소비자와 생산자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누카 오차드는 양봉업자들로부터 소정의 수수료를 받고, 벌꿀의 숙성, 품질개선, 판매, 수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마누카 오차드의 저장시설에는 뉴질랜드 전역에서 온 300여톤의 벌꿀이 들어차 있다. 저장돼 있는 벌꿀은 온라인을 통해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각 제품들은 밀원의 종류, UMF 수치, 가격대 등 소비자가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분류돼 있다.

마누카 오차드는 정부와 양봉업자들의 연결고리 역할도 한다. 일례로 새로운 양봉관련 법령이 고시되면 마누카 오차드가 이를 거래처에 알린다. 정부가 양봉업자들에게 일일이 개정된 법령을 전달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는 것이다. 또 벌꿀이 중앙유통망을 통해 검증기관으로 직접 연결되면 검증기관 입장에서도 체계적이고 간소화된 절차로 한꺼번에 벌꿀 샘플을 확인할 수 있다. 양봉업자들은 벌꿀제품의 관리나 저장을 위한 기반시설 구축에 신경 쓸 필요 없이 꿀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다.

보이어 대표는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일 때 수출길이 틀어막히면서 마누카 꿀 제품 수출량이 하락했다"며 "마누카 꿀은 기온이 20℃ 수준일 때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는데, 모든 화물선이나 비행기들이 냉장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보니 재고를 마냥 쌓아둘 수 없는 영세 양봉업자들은 마누카 오차드의 저장시설을 이용해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마누카 오차드에 등록된 양봉업자들의 벌꿀 샘플을 풍미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는 로건 보이어 대표는 "마누카 꿀을 고급 포도주나 위스키처럼 브랜드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newstree 조인준 기자


"결국 어떤 산업이든 소비자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보이어 대표는 "분업을 통한 효율화로 비용을 줄여야 적정 가격을 유지할 수 있고, 적정 가격으로 판매량을 확보해야 양봉업자들의 수익도 보장된다"면서 "그래야 양봉업자들이 여유자본으로 다시 투자하면서 제품을 고도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제품의 품질이 유지되어야 소비자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이것이 브랜드로 이어지면서 단단한 선순환 구조로 자리잡게 된다"고 힘줘 말했다.

보이어 대표는 마누카 오차드의 온라인 플랫폼을 확장해 벌꿀 제품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일례로 뉴질랜드 양봉업자들은 벌통 하단에 전자장비를 부착해 인공위성과 연결하고, '하이브마인드'(hive mind)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벌통의 무게, 습도, 날씨, 온도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그는 "각 양봉장마다 다른 풍토를 가지고 있어 같은 마누카 꿀이라도 풍미가 조금씩 다르다"며 "이같은 정보를 기반으로 각각의 양봉장의 이야기를 담아 고급 포도주나 위스키처럼 다양한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브랜드화해 나갈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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