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조금 제도는 '국산·외산 무차별'
"한시적이라도 '상호주의 원칙' 검토해야"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자국의 전기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고 나서면서 국내 전기차 보조금 제도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전기차 보조금 제도는 생산지 등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국내 산업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지적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6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서명으로 공포된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한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들은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법안 취지는 '기후변화 대응과 인플레이션 억제'다. 하지만 전기차와 배터리와 관련된 내용을 보면 원료부터 제조까지 이르는 산업 생태계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 중심으로 끌고가겠다는 속내가 담겼다.
미국 에너지부는 미국 최종 조립 조건에 부합하는 차종 명단을 발표했다. 2022~2023년식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총 31종이다. 미국 기업 차종이 23개다. 제너럴모터스(GM)·포드·지프 등 미국 대표 완성차 기업과 테슬라를 필두로 한 리비안, 루시드 등 신생 전기차 기업이 포함됐다. 외국 기업은 BMW·아우디·벤츠 독일 3사와 닛산, 볼보 등이 생산한 차종 8개에 그쳤다.
우리나라 현대차와 기아는 모두 빠졌다.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는 모두 한국 공장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미국 전기차 시장 확대를 노리는 현대차그룹은 타격을 입게 된다. 보조금이 적용되는 다른 차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국 배터리를 탑재해야만 보조금을 지급한다. 중국 시장에서 수입차 브랜드가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에 판매하는 모델과 달리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해야 한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사실상 무역장벽을 높이면서 우리나라도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 전기차 보조금 제도는 국산과 수입산에 대한 '무차별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가격에 따라 보조금 지원 여부가 나뉠 뿐 생산지에 대해서는 제한이 없다.
올해부터 우리나라는 차값이 5500만원 미만인 전기차에 대해 최대 700만원, 5500만~8000만원에 대해 최대 35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전기 버스는 최대 7000만원, 전기 화물차는 최대 14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으로 브랜드별 전기차 점유율은 현대차가 44%, 기아차가 23.7%, 테슬라가 14.2% 수준이다. 다른 곳들은 1% 미만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글로벌 브랜드들이 다양한 전기차 제품을 한국에 속속 내놓으면서 전기차 선택의 폭이 커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고가제품 판매에 집중하던 폭스바겐그룹 등이 중저가 모델까지 라인을 확장할 태세다.
중국산의 국내 공세도 거세질 전망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최근 발표한 '2022년 상반기 자동차 신규 등록 현황 분석'에 따르면 중국산 전기상용차(버스·화물) 판매는 지난해 상반기 159대에서 올해 상반기 1351대를 기록하며 749% 증가했다. 중국산 전기버스는 상반기에만 436대를 판매해 시장점유율이 48.7%에 달했다.
게다가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와 1위 자리를 두고 싸우고 있는 중국의 BYD(비야디)도 내년에 한국 시장에 전기차를 판매할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상용차 판매에 집중해 오다가 본격적으로 시장 확대를 위해 승용차 시장까지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관련 조직을 꾸렸고, 여러개의 상표도 출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외산차에 대한 보조금 차별이 없는 한국 시장은 수입 전기차들의 격전장이 돼 가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조금을 차별하는만큼 우리 정부도 자국 기업보호를 위해 보조금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수입산과 국내산의 무차별 원칙은 지키되 국산과 외산간에 차별 대우를 하는 일부 국가에 대해서는 상응하는 대책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관련해서는 한·미FTA의 내국인 대우원칙에 의거 한국산 무차별 대우를 지속적으로 요청하면서, 필요할 경우 한시적이라도 우리의 상호주의 원칙 적용 여부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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