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관리 중요한데...8년간 전수조사·시정명령 '0'
절수형 양변기를 포함한 절수설비의 '등급표시제'가 의무화됐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기존 법안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원인 해결과는 동떨어진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18일 환경부는 변기, 수도꼭지와 같은 절수설비에 절수등급 표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수도법'과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이 시행된다고 밝혔다. 이날 이후 제조·수입되는 절수설비는 가전제품에 에너지소비효율등급 라벨이 붙듯이 반드시 절수설비의 성능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절수등급을 표시해야 한다.
일례로 양변기는 1회 물사용량을 기준으로 절수등급을 구분한다. 1등급(4리터 이하), 2등급(5리터 이하), 3등급(6리터 이하) 등 3단계로 구분된다. 절수등급을 표시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표시한 경우 300만원, 절수형 양변기 자체를 설치하지 않을 경우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번 개정안은 양변기에 절수등급 표시를 의무화하는 조항, 위반 횟수에 따른 가중 처벌 조항 등이 골자다.
환경부는 1등급 변기가 전국에 약 2300만대 보급될 경우 연간 약 1억5000만톤의 수돗물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수돗물 평균 생산원가를 적용하게 되면 연간 약 1490억원을 절약할 수 있다. 또 수돗물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도 함께 절약되어 해마다 내연기관 차량 1만7000대를 전기 자동차로 대체하는 효과와 같은 이산화탄소 약 1만3700톤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과연 이번 개정안으로 1등급 변기 보급이 크게 늘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기존 수도법이 있었음에도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사후 감독이 이뤄지지 않아서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이에 대한 내용은 빠진 채 라벨 부착 의무화 등만 손본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절수설비의 경우 사후관리가 훨씬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양변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변기의 물사용량을 측정할 때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변기 샘플을 제출하고, 그에 따른 성적서를 기반으로 등급이 정해지게 된다"며 "건설사가 임의로 절수형이 아닌 양변기를 사용하더라도 전수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짚었다.
실제로 지난달 한국YMCA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신축건물은 1회 물사용량이 6리터 이하로 3등급에 해당하는 절수형 양변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돼 있었지만 이를 지킨 건설사는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건축물마다 수압 차이가 있어서 최대 8리터까지 물사용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고, 검사기관 인증뒤 부속품으로 물사용량을 조절하는 사례도 있어 2020년 5월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부속품을 활용해도 6리터를 초과할 수 없도록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2020년 10월 사용승인이 난 인천 연수구에 현대건설이 지은 아파트단지에 설치된 양변기 물사용량은 7리터가 넘어 이같은 해명을 무색하게 했다. 게다가 한국YMCA 조사는 수압에 따라 물사용량이 달라지는 '직수형 양변기'가 아닌 '물탱크형 양변기'만을 대상으로 했다.
이렇게 처벌 대상이 버젓이 드러났음에도 1건의 시정명령이나 전수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환경부는 "사후관리에 대한 별도의 논의사항이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양변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처벌 기준이 아무리 강화돼도 실제로 집행이 돼야 의미가 있다"며 "지난 8년간 아무런 페널티가 없었는데 이번에 의무화된 등급제도 얼마나 진정성 있게 진행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수도법 개정안 알리기도 소홀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환경부는 "개정안 시행일 하루전 변기·수도꼭지 업계 관련 조합 및 협회 관계자를 모아 간담회를 진행했다"며 "나머지 업체들에 대해서는 환경산업기술원에 등록된 업체 명단을 통해 연락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등급제 시행일 이전에 등급 검사가 끝났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시행령 개정안이 처음 고시된 것은 지난해 8월인데 시행일 1달전까지도 인증기관을 선정하지 않더니 이제껏 정확한 테스트 기준도 전달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서울 을지로 세운상가에서 30년간 세라믹 욕실용품을 판매한 한 업체 대표는 "1등급에 해당하는 4리터 이하 양변기를 판매하는 업체는 5곳에 불과하고, 그 가운데 잔변이 남지 않고 제대로 처리되는 경우는 2곳 남짓인데, 가격도 비싸다"며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변기를 1등급으로 교체해 수도요금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건 기만이고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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