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인 협력체계 세워야 기후위기 제때 대응
전세계 과학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저나오고 있다. 과거 식민지배를 받았던 국가들은 과학연구 영역에서 여전히 배제당한 채 연구정보를 찬탈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계의 이같은 식민주의적 잔재는 정보유통을 가로막아 기후위기 대응에도 차질을 빚게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독일 프리드리히 알렉산더대학교의 누사이바 라자(Nussaïbah Raja) 연구원과 영국 버밍엄대학교 에마 던(Emma Dunne) 박사가 주도한 국제연구팀은 "화석 데이터의 97%가 북미나 서유럽 데이터베이스(DB)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고생물학 지식생산에 대한 독·과점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러한 지식의 불균형은 서구권 과학자들이 식민주의적 태도를 버리지 못한 까닭이라고 비판했다. 과학자들이 타국에서 조사를 진행한 뒤 그 결과물을 본국의 연구소로 가져가 버리면 정작 연구가 진행됐던 곳의 시민들은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연구팀은 무장공비처럼 별안간 들이닥쳐 조사결과를 가로채고 사라지는 과학자들을 더러 '낙하산 과학자'로 명명했다.
낙하산 과학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물의를 빚고 있다. 특히 호박 속에서 발견되는 화석이 풍부한 미얀마나 도미니카공화국, 척추동물 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모로코 등지는 서구권 연구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이 한곳으로 몰리면서 특정지역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많은 연구결과가 기술되거나 특정 연구분야에 지나치게 많은 지원자금이 몰리고, 연구 샘플을 독점하기 위한 화석 밀매까지 성행하면서 법적 문제나 인권침해가 빈번히 발생하기도 한다.
이번 연구논문의 공동저자 누사이바 라자 연구원은 특히 본인의 연구분야인 산호초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산호초는 지구온난화로 조만간 99%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바닷물의 수온이 상승하고, 이산화탄소 흡수 용량이 초과되면서 해양 산성도는 역대급으로 높아졌다. 이 때문에 산호초가 하얗게 변하면서 죽어가는 '산호 표백' 현상이 일어난다. 모든 해양 생물종의 3분의 1은 산호초에 의존해 살아가며, 전세계 5억명 이상이 관광과 어업 등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산호초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는 산호초 서식지 환경의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 그리고 그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산호초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같은 상황에 이르게 됐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 연구의 기반이 되는 산호초 화석에 대한 정보가 편향되거나 유통이 제한되면서 연구결과를 도출하는 시간이 지연된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도출된 연구결과마저 왜곡될 수 있다.
과학관련 정보를 담는 언어도 문제시되고 있다. 국제논문이나 과학서적이 영어로 기술되는 탓에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 출신의 연구자들이 이득을 보는 경우가 많아 정보 불균형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유럽의 식민지배를 당한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에 서식하는 조류는 대부분 유럽식 성씨를 따 이름붙여졌다. 이에 최근 노예제를 옹호한 이들의 이름을 딴 150개 조류종의 명칭을 개정하자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연구팀은 현재 과학계의 관행이 "지속가능하지 않고, 연구결과를 왜곡시킨다"면서 "윤리적인 협력체계를 세워야할 필요가 있다"며 소외당한 현지 연구자들이 학계에 발붙일 수 있는 경로나 자금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해당 연구논문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태와 진화'(Nature Ecology and Evolution)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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