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가 습지의 탄소저장량을 늘려주는 존재로 확인됐다. 최상위 포식자가 생태계 유지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중요한 탄소순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크리스토퍼 머레이(Christopher Murray) 미국 사우스이스턴루이지애나대학 생태학 교수가 이끈 연구팀은 미국 남동부 해안가에 있는 습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악어가 많이 서식하는 습지일수록 토양에 저장된 탄소의 양이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머레이 박사는 "악어 개체수가 많은 습지일수록 탄소격리량이 높았다"며 "소규모 개체군부터 대규모 개체군까지 일관된 양의 상관관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습지는 물에 잠긴 산소 부족 환경 덕분에 유기물이 쉽게 분해되지 않고 축적돼 이른바 '블루카본'이라고 불리는 막대한 탄소저장고 역할을 한다. 반대로 습지가 배수되거나 훼손되면 축적된 탄소가 이산화탄소 형태로 대기 중에 방출될 수 있다.
그동안 과학계는 식생과 퇴적물의 중요성에 주목해 왔지만, 포식자와 먹이그물 같은 생물학적 상호작용이 탄소 저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머레이 교수 연구팀은 스미소니언 협회의 '연안 탄소 네트워크' 자료를 활용해 13개 주(州) 조간대 습지에서 채취한 토양 시료 649개를 분석했다. 여기에 각 주 야생동물 관리기관과 장기 모니터링 프로그램이 축적한 악어의 분포, 밀도, 둥지 자료를 결합해 비교했다.
그 결과, 악어의 자연 분포 지역에서는 표층 10㎝ 토양에서 평균적으로 ㎠당 0.16그램 더 많은 탄소가 저장돼 있었다. 이 층은 지난 약 60년간 축적된 비교적 최근의 탄소를 반영하는데, 이는 1966년 멸종위기종보호법 이후 악어 개체수가 회복된 시기와 겹친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을 악어가 만들어내는 '영양단계 연쇄효과(trophic cascade)'와 생태계 공학적 역할의 결과로 해석했다. 최상위 포식자인 악어가 초식동물을 억제해 식생 훼손을 줄이고, 더 촘촘한 식물 군락과 토양 안정화를 유도해 탄소 매몰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굴을 파고 수로를 만들며 작은 웅덩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수문 구조가 바뀌고 퇴적물과 영양분이 재분배되면서 탄소가 축적되기 좋은 미소 서식지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다만 대륙 전체 규모로 범위를 넓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악어 존재 여부에 따른 탄소 저장량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식생, 지형, 먹이그물 등 지역별 생태적 차이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머레이 교수는 "처음에는 예상 밖의 결과였지만, 더 들여다보니 해당 지역에서는 다른 최상위 포식자가 역할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악어의 고유 분포권으로 범위를 좁히자, 악어가 있는 습지가 일관되게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하는 경향이 다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인과관계를 확정짓는 것은 아니며, 악어를 인위적으로 배제하는 장기 실험 등을 통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머레이 교수는 "포식자 복원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그동안 보전 정책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며 "악어같은 최상위 포식자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지구 생태계 기능을 떠받치는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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