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이 오는 2028년부터 판매되는 모든 의류에 '내구성'과 '정보제공' 기준을 의무화하고, 섬유를 사용한 제품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체 이력을 추적하는 디지털제품여권(DPP)를 시행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류 폐기물과 재활용 집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마우로 스칼리아 유럽섬유의류산업연합 지속가능경영 국장은 3일 서울 코엑스마곡에서 열린 '한-EU 에코디자인 포럼'에서 섬유제품에 대한 EU의 '지속가능제품 에코디자인 규정(ESPR)'을 소개하면서 "지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며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예고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유럽연합(EU) 대표부 공동주최로 열린 이날 포럼의 섬유세션에서는 유럽과 한국 발표자들이 참여해 각 국가와 기업의 현황 그리고 대응 방향을 공유했다.
DPP는 모든 브랜드가 공급망 전 단계의 정보를 보유하도록 의무화한다. 스칼리아 국장은 "어떠한 기업이든 데이터 없이는 제품을 팔 수 없다"며 "데이터 호환성, 접근 권한 조정, 신뢰성 확보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품의 정보가 세관·감독기관 등 모든 관련 기관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구축돼야 하고, 섬유의 1차 생산부터 모든 기록이 담길 것"이라고 밝혔다.
제도가 시행될 때까지 DPP를 위한 정보공유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냐는 뉴스트리의 질문에 스칼리아 국장은 "법안은 2026년 마무리될 예정이고, 그후 18개월동안 산업계가 준비할 기간이 있을 것"이라며 "추가적으로 준비할 기간이 더 필요할 수 있지만, 현재 추진되고 있는 진행상황을 보면 우리는 잘 마무리 될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스칼리아 국장은 EU의 탄소발자국 측정방식 통합계획도 언급했다. EU는 프랑스 등 일부 국가별로 상이하게 적용되던 방식 대신, 하나의 탄소 단일 측정법으로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스칼리아는 "향후 모든 제품은 동일한 방식으로 탄소발자국을 측정하게 될 것"이라며 "소비자 비교 가능성과 기업의 법적 안전성을 모두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코디자인 규정은 의류 산업에 대한 규제도 소개됐다. 내년부터는 재고 제품 보고 의무화 및 소각금지 조치가 적용되고, 2028년부터는 내구성과 정보제공 요건이 본격 적용될 예정이다. 스칼리아 국장은 "EU는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U와 달리, 한국 섬유산업계의 지속가능 대응수준은 아직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재훈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전문위원은 "국내는 산업계 준비가 부족하고, 시스템과 이해당사자 조정 모두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은 국내에서 폐기물과 재활용 통계조차 불완전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2023년 기준 국내 섬유폐기물은 63만톤, 재활용 가능량은 약 16만톤으로 추산되는데, 이마저도 "정부가 '현재 수치는 정확하지 않다'는 입장"이라고 언급했다. 정 전문위원은 "수치가 맞다는 가정하에 봐도 산업계 전체 섬유 생산과 폐기량이 거의 1대1 수준"이라며 "정밀한 데이터 설계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재활용 기술도 한계가 있다. 화학물질 재활용은 산업화되지 않았고, 고순도 폐섬유 수요와 공급 사이의 접점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는 "수요기업은 원료를 원하지만, 공급체계는 폐기물로 본다"며 "가격과 품질기준이 충돌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2026~2030년 기계적 선별·분리 기술 국책과제를 추진해 고순도 섬유원료 확보를 위한 기술·정책 기반 마련을 목표로 하지만, 정 위원은 "결국 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위기의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의 정책적 토대와 인프라도 마련이 되어 전체적인 협업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 북유럽에서 운영되고 있는 기업 대상의 순환디자인 전환교육 프로그램도 소개됐다. 파울라 폰텔 에티카(Ethica) 대표는 "유럽 기업들도 규제 대응을 위한 준비가 절실했다"며 "한국 기업도 지금 시작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8개월 과정으로, 순환 전략·제품 설계·가치사슬 혁신 등을 다루며 북유럽 4개국이 공동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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